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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COVID-19 시대 / 도시 ②] 국가만 재발견한 게 아니다, 우리는 동네도 재발견 했다

모종린(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2020.05.28 7678

“로컬은 과연 代案이 될 수 있는가?”

성수동(좌)과 익선동(우)의 모습(출처: 좌-동아일보, 우-wallpaper flare)

(재)여시재는 2015년 설립 때부터 ‘도시 문명의 위기’를 핵심 연구과제로 설정, 위기의 다양한 양상과 배경, 해결방안 등을 연구해왔다. 대도시는 지속가능 위기, 중소도시와 농촌은 소멸위기라는 것이 기본 문제의식이었다. ‘보아오포럼 2019’에서는 이를 주제로 독자 섹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 COVID-19 사태 이후 이 문제가 세계적 과제로 부상했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 중 일부를 네 번에 걸쳐 전한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대도시 문제(링크)
2. 로컬의 재발견, 과연 가능한가?
3. 로컬의 현장, 그 생생함
4. 도시의 미래, 분산

구청 홈페이지와 지역 맘 카페

COVID-19 위기 속에서 우리가 새로 발견한 것은 집, 일상, 거리, 동네였다. 그중 한국 사회 미래에 가장 중요한 변화는 ‘동네의 재발견’이다. 동네에 대한 관심은 방역 단계에서 시작됐다. 전국 상황보다는 우리가 사는 지역 상황이 궁금해진 사람들이 구청 홈페이지와 지역 맘 카페를 찾았다. 지역 방역의 중요성은 중앙정부와 광역시가 아닌 기초단체에서 보내는 휴대폰 재난문자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집 주변 지출 증가
여행도 동네 문화 중심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는 보다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왔다. 원거리 이동과 대형 실내공간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우리의 생활권이 실질적으로 동네로 좁혀졌고, 동네 가게, 거리, 상권이 우리의 관심사가 됐다. 실제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4월 전반적인 오프라인 소비는 줄었지만 집 주변에서 소비하는 홈 어라운드(Home Around) 지출은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여행을 떠나도 넓은 지역을 다니는 것보다 한곳에 머물며 그 동네의 문화를 현지인처럼 즐기는 여행자가 늘고 있다.

과연 로컬이 우리 생활의 중심이 될까? COVID-19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는 로컬에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 번째 의미가 현지 맛집이다. 로컬은 여행자가 현지 맛집을 찾을 때 사용하는 단어다.

두 번째 의미가 대안공간이다. 지역과 골목에서 개성 있는 가게와 공간을 운영하는 사업자와 이곳을 찾는 소비자가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을 로컬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로컬은 기성세대 문화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인 대안공간을 의미한다. 이제 로컬은 우리에게 생활권의 의미로 중요해진 것이다.

동네 일자리 창출이
포스트 COVID-19 경제의 숙제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서 우리가 생활권 중심으로 도시를 재구성한다면,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생활권 경제다. 동네가 진정한 의미의 생활권이 되기 위해서는 주민을 위한 충분한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생활권 경제의 정책은 산업사회와는 달라야 한다. 모든 지역이 국가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산업사회의 모델이었다면, 각 지역이 고유의 지역 산업을 개발해 지역에서 선순환하는 생활권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 포스트 COVID-19 경제의 숙제다. 포스트 COVID-19 시대에도 국가와 글로벌 산업은 존재한다. 과거와의 차이는 의존도다. 과거와 달리 지역의 지역 산업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생활권 도시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인구 감소를 겪는 산업도시가 흔히 상업과 주거 시설을 도심에 집중시켜 도시 환경과 고령 인구 복지를 개선하는 생활권 도시 사업을 추진한다. 글로벌 대도시도 생활권 활성화를 통해 주민 삶의 질을 높이려 한다. 최근 도시 어느 곳에서 살아도 자전거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안에서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획을 발표한 파리가 대표적 사례다. 그렇다면 한국은 포스트 COVID-19 시대의 생활권 도시를 어떻게 건설해야 하나?

A 도시 對 B 도시
두 도시 이야기

그 실마리는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진행되는 두 도시의 경쟁에서 찾아야 한다. 보편적인 모델은 기업과 오피스 중심, 자동차 중심, 재개발로 특징 지을 수 있는 모던 도시다. 한국에서 모던 도시와 경쟁하는 도시는 포스트모던 도시다. 포스트모던 도시의 키워드는 사람과 보행자 중심, 도시재생이다. 이 두 도시 중 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요구하는 생활권 도시를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건설할 지가 한국 도시의 미래, 개별 도시들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두 도시 사이의 선택은 기본적으로 라이프스타일의 문제다. 한국은 현재 신도시를 선호하는 세력과 원도심을 선호하는 세력으로 양분됐다. 한국적 맥락에서는 신도시가 모던 도시에, 원도심은 포스트모던 도시에 가깝다. 2010년대 이후 정부가 도시재생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한 도시, 한 동네 안에서 신도시와 원도심 세력이 충돌한다. 재건축조합이 신도시 세력을 대표한다면, 재건축을 반대하는 골목상권 건물주와 상인이 원도심 세력을 대표한다. 문제는 정부가 주민에게 한 번도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 질문을 하지 않는 데 있다. 기본을 토론하지 않고 한 지역 안에서 신도시와 원도심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불필요한 혼란이 많이 발생한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모던 도시를 A, 포스트모던 도시를 B로 지칭하자. A는 큰 건물과 큰 기업들이 모여 있는 도시이고, B는 상대적으로 작은 건물과 작은 사업체들이 모여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단순화하면 A는 여의도와 강남, B는 홍대나 이태원과 비슷하다. 도시 계획 차원에서 보면 A는 도시 재개발에, B는 도시재생 쪽에 가깝다. 우리가 도시재생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B 쪽으로 가고 싶다는 의미다.

A는 첨단 도시 인프라가 중요하고 대형 건물, 대형 단지, 대기업이 많이 있고, 비즈니스 중심적인 도시다. 이 도시는 스마트 도시나 이데아 도시로 발전해간다. B는 걷고 싶은 거리가 많고 개성 있는 마을들이 아기자기 모여 있으며, 새 건물도 있지만 작고 오래된 건물도 많은 도시다. 여기에는 작은 가게들, 소상공인, 도시에서 창의적인 일을 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있다. 이 도시는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가 말하는 창조 도시에 가깝고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 도시라고 할 수 있다.

cf. 리처드 플로리다
‘창조계급’이라는 용어를 창조해낸 경제학자이자 트렌드 분석가, 저술가, 연설가.
유서 있는 월간지 ‘The Atlantic’의 시니어 에디터이자, 미디어웹사이트인 ‘CityLab’ 공동 창업자다. ‘후즈 유어 시티(Who’s Your City?)’ 등 그가 책을 쓸 때마다 지식 세계의 흐름을 주도한다는 평을 듣는다.

밀레니얼 세대
B 도시에 더 친화적

전국 곳곳에서 우후죽순 늘어나는 신도시를 보면 한국 도시의 미래가 A에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를 보면 미래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는 오히려 B가 대세다. B가 그들의 로컬 지향에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로컬 지향은 다양한 형태로 지금 분출되고 있는데 가장 큰 변화가 골목길이다. 골목길, 골목상권은 2000년대 이후 부상했고 현재 오프라인 상권을 주도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강북의 골목길에 모이자, 언론에서도 '밀레니얼 세대는 왜 골목길에서 놀까?"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라이프스타일의 진화
신분과 경쟁에서 개성과 다양성으로

골목길 현상은 라이프스타일 변화의 일부분이다. 라이프스타일은 신분, 생존, 경쟁, 성실을 강조하는 물질주의에서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탈물질주의로 진화하고 있다. 탈물질주의 성향의 사람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이 압축되어 있는 B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밀레니얼의 로컬 지향도 주목받고 있다. 마쓰나가 게이코(松永 桂子)의 <로컬 지향의 시대>가 지적하듯이, 밀레니얼 세대는 장소 중심으로 살고 일하며 즐긴다. 스타벅스가 있는 동네에서 살고 싶어 하는 현상을 표현하는 스세권, 사람이 모이는 장소라는 의미의 핫플레이스, 슬리퍼를 신고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집 근처 상권을 말하는 슬세권이 로컬 지향 현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cf. 마쓰나가 게이코
일본 오사카시립대 교수. ‘로컬 지향의 시대’(2017)로 알려져 있다.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중소도시를 돌아다니며 작지만 강하게 성장하는 로컬의 전략을 담았다. 전문 분야는 지역산업론이다.

홍대 도시산업 생태계 형성에 기여한 공공과 민간 사업(출처: 모종린 교수 자료)

더 많은 골목상권이
신성장동력이다

골목이 상권으로서 중요하기 때문에 유통과 건설 분야의 대기업도 골목상권에 진출한다. 골목길의 가치를 재발견 한 것이다. 대기업의 진입으로 골목에서 활동하는 독립 상점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고, 정부가 이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가 중요한 이슈가 된다.

골목상권 부상, 라이프스타일 변화, 로컬 지향,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등 이 네 가지 현상을 봤을 때 미래세대는 A보다는 B를 선호할 확률이 높다. A가 우월한 것으로 생각되는 경제 분야에서도 오히려 B가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B의 골목상권이 미래 산업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미래 성장을 견인하는 문화산업, 창조산업은 교외의 공단이 아닌 다운타운 지역에서 성장하는 산업이다. 더 많은 B가 있어야 더 많은 미래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

골목산업 자체도 급격히 문화산업화, 창조산업화되고 있다. 갤러리, 사진관, 공예, 공방, 편집숍, 건축과 디자인 사무소 등 문화적 가치가 높은 업종의 가게로 구성된 골목산업이 코워킹 스페이스, 복합문화공간, 소셜벤처, 문화기획사, 도시재생 스타트업 등 창조산업으로 확장한다. 골목산업, 문화산업, 창조산업이 모여 있는 골목상권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홍대가 대표적인 골목상권 기반 도시산업 생태계이고 성수동에서도 유사한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창조산업, 문화산업, 골목산업을 따로따로 육성을 했다. 앞으로는 골목 산업을 중심에 두고 여기에 문화산업, 창조산업을 업혀야 한다. 골목상권을 크게 늘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원이 골목 장인이다. 필자는 <골목길 자본론>에서 전국의 골목상권에 투입할 장인 상인을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장인 대학, 장인 기획사 육성을 제안한다.

당근마켓의 중고거래 서비스
군산의 지역 배달 서비스
도시의 매력이 인재를 끌어들인다

B 도시 기반 생활권 도시를 건설하는 데 있어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대도시는 다수의 B 도시를 연결하는 구조, 중소도시는 하나의 B 도시에 집중하는 구조가 불가피하다. 대도시에서는 분권화, 중소도시에서는 집중화가 필요한 것이다.

B 도시를 성공시키려면 ‘더 걷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걷고 싶은 도시는 단순히 길이 좋은 도시가 아니다. 즐길 거리, 볼 거리가 많은 도시다. 볼 거리가 많고 그리고 개성 있는 문화가 있는, 이런 도시가 B 도시다. 이를 더 발전시키면 일, 주거, 놀이를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콤팩트 도시가 된다.

B 도시와 기술의 접목도 중요하다. 친환경 기술, 보행자 기술, 지역 혁신 기술, 소상공인 기술이 B 도시가 요구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이다. 이미 B 도시에서 골목상권을 성장시키고 있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디지털 소셜 플랫폼(SNS, 온라인 쇼핑몰, 크라우드펀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네이버의 위치 기반 서비스와 우리동네 페이지, 당근마켓의 지역 중고거래 서비스, 군산의 지역 배달 서비스 등이 생활권 도시의 활성화에 필요한 지역 기반 기술과 서비스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변화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 위기 전에도 다양성과 삶의 질을 제공하는 생활권 도시가 메가 트렌드였다. 코로나 사태가 이미 진행된 트렌드를 더 가속화시킨 것이다. 매력적인 생활권 도시로 국내 인재를 잡고 해외 인재를 유치해야 한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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