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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제안] 백신 공급을 넘어 '질서 있는 일상 복귀'로...한국의 역할은?

전병조(여시재 대표 연구위원·前 KB증권 사장)

2021.03.26

- 개도국의 백신 접종을 지원할 공조 노력 시급
- 공공재로서의 백신 개발 위한 국제기금 창설 필요
- 韓·美, 팬데믹에 대응한 글로벌 협력 체제 재편 주도하자

백신 공급으로 코로나 전쟁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2019년 말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전염병은 순식간에 세계를 강타하였다. 세계는 전시(戰時)나 다름없는, 유례없는 경제적·사회적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어느덧 15개월째다. 고통의 크기는 선진국이나 개도국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백신 공급이 시작되면서 코로나와의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백신 공급과 접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경우 빠르면 연내 집단면역 달성이 가능하다고 예상하는 국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 중반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림 1] 인구 100명당 COVID-19 백신 1차 접종 건수

몇몇 나라들은 자유 이동의 시절로 돌아가기 위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금년 4월 중으로 전국민 백신 접종 완료가 가능하다는 전망 아래 백신 비자 발급을 추진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추진하는 백신 비자는 일종의 면역 증명서다.

[그림 2] 이스라엘이 발행한 코로나19 백신 여권 '그린 패스'의 견본
(출처: 이스라엘 보건부/연합뉴스 제공. 2021.3.10 동아일보 기사에서 재인용)

각자도생에 빠진 전염병 대응
코로나 극복 더디게 할 것

과연 인류는 코로나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가? 일부 국가의 희망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판세를 낙관할 수는 없다. 현재 각국의 백신 확보와 접종 속도가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본격적인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면 초기에 나타났던 차이는 조금 줄어들 수 있겠지만 선진국과 개도국 간 격차가 크게 좁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개도국과 선진국 간에 확보한 백신 물량의 차이가 단기간 내 축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 3]

[그림 3] 백신 확보에 있어서 가난한 국가들이 부유한 국가에 뒤쳐진다.
(출처: 미국 듀크대학글로벌 보건 혁신센터(DukeGlobal Health Innovation Center)가 국가별 백신 구매계약 현황 모니터링을 위해 개발한 The Launch and Scale Speedometer (마지막 업데이트: 2021.03.08.))

[그림 4] 85개 이상의 가난한 국가가 2023년까지는 광범위한 백신접종을 실행하지 못 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 따르면, 85개 이상 빈곤국들은 광범위한 백신 접종이 지연되면서 2023년까지 집단면역을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 4]

국제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모든 나라들이 각자도생에 바빠 국제적인 공조나 협력이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 나라 정부든 자국 내 코로나 극복에 성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정부의 존립이 달려있기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총력 대응한다. 다른 나라의 사정, 특히 개도국의 사정은 신경 쓸 틈이 없다. 국제적인 공조는 더더욱 관심 밖이다.

선진국들의 민망한 백신 쟁탈전
본국 인구의 배 이상 물량 확보

협력은커녕 노골적인 ‘백신민족주의’가 여전하다. 선진국들 간 백신 쟁탈전은 민망할 정도이다. 3월 초 이탈리아 정부는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호주 수출을 금지했다. EU는 이미 백신 제조사가 유럽 내 백신 공급 물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유럽 내에서 생산된 백신의 수출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회원국에 부여하는 규제를 도입한 바 있다.₁ 이탈리아는 이 규제를 적용한 첫 사례이다. 3월 21일 로이터 통신 등은 EU가 네덜란드 공장에서 생산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수출하라는 영국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EU에서 생산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EU에서만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선진국 간의 점잖지 못한 행동은 이미 마스크 쟁탈전에서 본 터라 그다지 놀랄만한 것은 아니다.

[그림 5] 이탈리아, 백신 호주 수출 금지 조치(출처: France24, CNN 방송 화면 캡처) / EU, 백신 영국 수출 금지(출처: 로이터, AFP)

심각한 것은 부자 국가들이 백신 확보에서도 욕심을 부린다는 것이다. 중소득 국가와 하위 중소득 국가들은 자국 인구의 100%를 백신화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반면, 일부 선진국들은 본국 인구보다 몇 배가 넘는 백신을 예약해 놓고 있다.(예: 캐나다는 본국 인구에게 백신 접종을 5회 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 물론 이들 선진국들은 사전에 구매한 백신 후보가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까지 감안한 대비책으로 보인다.

[그림 6] COVID-19 확진자 대비 백신 커버리지
(출처: 미국 듀크대학글로벌 보건 혁신센터(DukeGlobal Health Innovation Center))

편협한 자국 이기주의는 자유왕래와 교역이 이루어지는 시일을 더욱 더디게 할 뿐이다. 세계는 국제분업의 확대로 서로 의존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선진국들만 코로나에서 벗어난다고 세계경제의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질서 있는 일상 복귀’를 위한
구체적인 국제 공조 노력 필요

국제적인 공조가 가장 필요한 세계적인 위기 시에 이를 책임지고 대응할 국제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깝다. 모두가 바라는 빠른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서는 국제적 공조를 통한 ‘질서 있는 일상 복귀’(orderly return to normal)가 필요하다.

‘질서 있는 일상 복귀’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많은 전문가들과 행정가들이 깊이 논의하겠지만, 최소한 세 가지 분야에서 국제적인 노력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i) 나라별 백신화(vaccinization) 속도를 맞추어 가는 노력
(ii) 백신 접종 진행과정에서 방역 효율성 제고
(iii) 이동자유화 수단과 과정 설계(백신 비자 공인/발급 문제)

개도국에 백신 구매 금융 지원,
의료 인프라 구축 방안 강구해야

나라별 백신화 속도는 해당 국가의 백신 확보 역량과 접종을 실행하는 의료 시스템의 효율성에 달려 있다. 백신 확보 역량은 다시 재정 역량과 종합적인 외교 역량에 달려 있다. 백신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지불 능력 못지않게 외교 역량도 중요하게 되었다. 개도국은 둘 다 부족한 실정이다.

개도국의 백신 확보와 접종 인프라 구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신속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지불 능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World Bank, ADB, AfDB 등 다자 국제금융기구에 의한 백신 구매 금융 지원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아울러 개도국의 부채 상환 부담도 경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0년 중 신흥국과 개도국의 정부 부채가 80년대 말 이후 최고치인 GDP 대비 9% 포인트 급증했다. 특히 최빈국 부채의 65%에 해당하는 채권을 보유한 중국의 핵심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였다.₂ 최소한 팬데믹이 종료될 때까지 만기 연장, 이자 탕감, 또는 부채 상환 동결 조치(stand-still)가 필요하다. 채권국들의 협의와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의료 인프라 문제도 접종 속도를 좌우한다. 선진국에서조차 의료시스템의 비효율성과 운영 미숙으로 백신 접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개도국의 상황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세계 전체가 비슷한 시기에 같이 ‘일상으로 복귀’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의료 인프라에서 비롯된 접종 속도 차이를 줄이기 위한 개도국 의료 인프라 지원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백신의 이송, 저장, 접종에 이르는 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지원이 중점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바이러스 변이로 백신 효과 저하 가능
백신 접종과 함께 추가 확진자 줄여야

백신화 진행과정에서의 방역도 중요하다. 백신 접종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나라들에서 추가 확진자 발생이 감소하는 희망적인 결과들이 확인되고 있다. 백신 접종이 가장 먼저 시작된 영국의 경우 41일째부터 미국의 경우 28일째부터 확진자 수 감소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₃ 대체로 접종 후 한 달이 지난 시점부터 일일 확진자 수가 감소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백신 접종 후 중증 환자의 92%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₄

[그림 7] 영국·미국·독일·이스라엘의 일일확진자 (7일 평균 그래프)
(출처: 존스홉킨스 의대. 데일리팜 2021.2.5 기사에서 재인용)

그러나 모든 국가가 영국과 같은 선순환 구조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백신 접종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신규 확진자가 크게 줄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백신 접종이 더딘 나라들에서는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3차 유행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세 번째 수도권 봉쇄에 들어간 프랑스에서는 최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는 사람 중 4분의 3이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에 걸린 것으로 집계되었다.₅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 등도 3차 대유행을 인정하고 봉쇄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₆

백신화가 의도하는 당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백신 접종 진행 과정에서 추가 확진자 발생 속도를 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백신화의 속도가 신규 확진자 발생 속도보다 빨라야 한다. 현재 개발된 백신이 모든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백신화 과정이 지체돼 확진자가 더 빨리 증가한다면, 바이러스의 변이 또한 증가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 경우 현재 접종 중인 백신의 효과가 저하될 수 있다.

백신 비자 실효성 위해서는
국가 간 통일된 기준과 공조 전제돼야

세 번째 문제는 백신화 진행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국경 간 이동 제한을 완화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백신 비자 발급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백신 비자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과제가 있다.

(i) 백신의 공인 문제
(ii) 백신 비자의 신뢰성 문제
(iii) 백신 비자의 발급 및 확인 문제

백신 비자의 공인 문제는 어떤 백신 접종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3월 22일 현재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백신이 공급 중이다. 미국은 얀센과 모더나, 화이자 총 3종, 영국은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이스라엘은 모더나와 화이자, 러시아는 에피백코로나와 스푸트니크. 중국은 시노팜과 시노백을 접종하고 있다. 문제는 백신의 면역효과가 동일하지 않고 불확정적이어서 나라마다 유효성을 인정하고 있는 백신이 다르다는 데 있다.

백신을 개발, 공급하고 있는 나라가 소수여서 언뜻 합의가 쉬울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국제정치적 고려가 겹쳐지면 백신의 상호인정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다. 벌써부터 일부 국가의 백신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길이 만만치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백신별로 ‘백신 블록’이 형성될지도 모른다.

백신 비자 자체의 신뢰성 확보도 문제다. 스마트 기술의 보급으로 앱 기반의 백신 비자가 제안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IT 보안기술 수준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비자의 보안성, 나아가 비자의 신뢰도도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가짜 백신 비자’의 유혹도 무시할 수 없다. IT 기술과 기반의 차이로 인해 각국이 발급한 백신 비자 간 수용성에 차이가 발생한다면, 개인 차원이든 국가 차원이든 왜곡된 유인체계가 형성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AI 기술의 보편화로 진짜와 구분이 불가능한 가짜 만들기가 매우 용이해진 환경도 백신 비자의 신뢰성을 낮추는 요인이 될 것이다.

백신 비자의 신뢰성이 무너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IT 보안기술 등 IT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는 공신력 있는 국가가 발급하는 비자만 통용되고 그렇지 못한 국가가 발급한 것은 거부될 것이다. 비자 자체의 신뢰성 또한 나라들을 구분하게 되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백신 인증 문제와 함께 비자의 신뢰성 문제도 ‘백신 블록화’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 제기된 문제들은 일부 성공적인 국가들이 서두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백신 공급이든 백신 비자든 국가 간 통일된 기준과 공조가 전제되어야만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질서 있는 일상 복귀’를 위해서는 잘 짜인 국제 공동 노력의 틀과 과정 관리가 필요하다.

전염병 발생 빈도 증가 추세
항구적인 글로벌 대응체제 구축 시급

‘질서 있는 복귀’를 위한 국제공조의 틀을 성공적으로 완성하는 것이 우선 급한 일이지만, 장래 유사한 팬데믹에 대한 글로벌 대응체제를 구축하는 논의도 동시에 서둘러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대규모 전염병 위기는 이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고 한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에 따르면 전염병 발생 빈도가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에는 991건에 불과하던 것이, 1990대에는 1,924건, 2,000년에는 3,420건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앞으로도 이러한 발생 빈도의 증가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전염병의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팬데믹 2.0’이 곧바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당장 현재 코로나19도 단기간 내 다양한 변이를 만들어내는 괴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어렵다.

[그림 8] 전염병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출처: Visual Capitalist)

막대한 팬데믹 피해 규모
예방 위한 국제적 노력과 투자 이유 충분

왜 이런 노력에 국제사회가 투자해야 하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한가하게 생각하기에는 글로벌 팬데믹의 경제적·인명적 희생이 너무 막대하다. 경제적 비용만 따져 보자.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0년 세계경제는 4.3% 역성장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1945년 9.8% 역성장) 최악의 역성장을 기록하였다. 경제성장 감소 규모로 추정한 2020년 중 팬데믹의 경제적 비용은 3조 8천억 달러(약 4,300조 원)에 달한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각국이 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지출한 재정 지원 규모는 주요 9개국만 따져도 6조 4천억 달러(7,238조 원)이다. 합계 10.2조 달러(1경 1,154 조 원) 수준이다.

[표 1] 주요국의 긴급 재정지원 규모(10억 달러)
(출처: 한겨레 신문 2021.03.03 기사)

바이러스의 치명도가 더 증가하지 않고 지금과 비슷하다고 가정하더라도, 다음 팬데믹은 동일 수준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지 않은가? 팬데믹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인류가 투자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실행력 갖춘 새로운 글로벌 대응 체제 필요
특정 국가 재량에만 의존해선 안 돼

글로벌 팬데믹 대응 시스템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재편되어야 한다. 하나는 글로벌 팬데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전염병 발생에 대해서는 상시 감시·조기 탐지·신속 조치를 강제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대응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번 코로나 위기의 가장 큰 교훈은 전염병 발생 초기 단계에서의 신속한 탐지와 대응조치를 어떤 ‘특정 국가의 재량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류가 큰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한 국가의 선의와 양심에 의존하는 현재 시스템은 팬데믹의 막대한 경제적 비용과 인명 손실 규모를 감안하면 어이가 없는 것이다. 국가적 재난 앞에 어느 국가든 도덕적 해이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국익을 위해서 또는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든지 다른 나라의 희생을 담보로 행동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결정이 자국 내에서는 애국적 행위로까지 여겨질지 모른다.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협정 형태
‘글로벌 팬데믹 방지 협정’ 체결 검토해야

팬데믹 상황에서 개별 국가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대응 체제가 필요하다. 개별 국가의 일탈을 억제하기 위한 강제적 실행력을 수반되어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새로운 시스템은 모든 국가들이 참여한 국제협정 형태로 구축되어야 한다.
가칭 “글로벌 팬데믹 방지 협정”(Global Anti-Pandemic Action Agreement/GAPA)의 체결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 협정에 따라 상시 감시를 통한 조기 탐지와 신속 대응을 위해서는 실행력을 담보한 국제적 조직을 어떻게 구성할지 검토가 필요하다.

백신은 국제적 공공재
국제사회의 공동 투자와 개발 이뤄져야

두 번째, 백신 개발을 국제적인 공동 개발 노력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백신이 국제적 공공재(國際的 公共財)로서 다뤄져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전염병 발생 주기가 짧아지고 바이러스의 변이 속도 또한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다. 빈번하게 변종이 발생하는 전염병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모든 변종에 대응할 수 있는 범용 백신의 개발이 가장 이상적이다. 영국의 암 백신 전문 기업인 스캔셀과 노팅엄대 연구진은 변이를 포함해 모든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는 '범용 백신'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₇ 영국 바이오기업 콘저비 바이오사이언스는 유전물질인 mRNA로 범용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고 있으며 올해 안으로 초기 임상시험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VBI 백신도 역시 올해 안에 사스와 메르스, 코로나 유발 바이러스에 모두 듣는 범용 백신을 임상시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₈ 범용 백신 개발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국제 공공재의 관점에서 범용 백신을 개발, 생산, 공급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백신 산업은 독특한 시장실패(市場失敗)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은 어쩌다 한 번 등장하는 것이기에 제약 산업의 입장에서는 평상시에 백신을 개발할 상업적 유인이 희박할 수밖에 없다. 언제 팔릴지 알 수 없는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수 조원을 미리 투자·개발할 ‘인류애가 충만한’ 기업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따라서 전염병 예방백신은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투자하여 공공재로서 개발할 필요가 있다.

백신 개발 위한
국제기금 창설을 제안한다

국제사회가 공공재로서 백신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는 앞서 살펴본 잠재적 경제적 비용의 규모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인류 공통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제사회가 얼마나 지불할 용의가 있는가? 실제로 백신 개발이 필요한 R&D 재원의 규모는 백신 개발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규모를 제시할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서는 ‘위험의 크기에 비추어 지불 가능한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자. 우선 앞서 제시한 경제적 비용이 하나의 잣대가 된다. 팬데믹의 경제적 직간접 비용은 보수적으로 따져도(기타 선진국 및 개도국의 재정지출을 제외한 것임) 거의 10조 달러 수준이다. 이는 2019년 세계 GDP, 87조 달러의 11% 수준이다. 동일한 팬데믹을 방지할 수만 있다면 경제적 비용의 10%인 1조 달러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기준은 전 세계가 지불하는 군사비 규모와 대비해서 판단해 보는 것이다. 세계 10대 군사대국의 1년 국방비 지출 규모는 1.3조 달러에 달한다. (어떤 나라는 전쟁 준비 비용이고, 어떤 나라는 전쟁 방지 비용일 것이다. 여기서는 모두 전쟁을 예방하는 비용으로 좋게 해석해 보자.) 이러한 지출의 10% 수준인 1천억 달러 정도의 비용은 백신 개발을 위해 지출할 수 있지 않을까. 팬데믹은 비전통 안보₉ 분야에 있어 가장 큰 대응과제로 부상했다. 전통적인 군사적 위협 개념에서 벗어나 인류의 일상을 붕괴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위협 요인이 팬데믹인 것이다. 감염병의 발생 초기에 정확히 모니터링하고 이를 바탕으로 빠른 시일 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백신의 신속 개발 시스템을 갖춘다면 새로운 팬데믹이 가져올 피해를 최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전시 상황과 유사한 막대한 희생을 수반하는 팬데믹을 방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1천억 달러는 충분히 지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표 2] 10대 군사대국의 군사비 지출규모
(출처: 문화일보 2021.02.26 기사)

앞서 말한 새로운 국제협정이 성사되고 이를 실행할 국제기구가 탄생한다면 백신 개발을 위한 전용 국제기금(GAPA Fund For Vaccine)을 각국의 출연을 통하여 신설할 것을 제안한다. 각국이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부담할 것인가는 새로운 국제 대응 시스템 하에서 논의해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대응 시스템 재편
한국과 미국의 공동 주도를 제안한다

그러면 누가 이러한 논의를 주도할 수 있나? 백신 개발과 공급 역량 그리고 접종 과정 설계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나라들이 가장 적합한 후보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바이오 기술력 최강국으로서 백신 개발을 가장 먼저 성공하여 공급하고 있는 나라다. 인도, 중국, 영국, 독일 등과 함께 한국도 백신 양산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대량 공급이 가능한 6개국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여시재가 별도로 조사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최소 30억 도스 수준의 양산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표 3] 한국의 백신 양산 능력 추정 (자료: 여시재 스탭 추정)
*CEPI 계약: 국제민간기구 감염병혁신연합(CEPI)와의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계약. GC녹십자의 경우 아직 어떤 제조사의 백신을 생산할지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내년 5월까지 5억 도스를 위탁 생산 하기로 하였다.
**한국코러스 컨소시엄: 안동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 바이넥스, 보령바이오파마, 이수앱지스, 종근당바이오, 큐라티스, 휴메딕스

더구나 한국은 코로나19 백신 중 3상을 거치고 있는 4 가지 플랫폼(바이러스 벡터, 불활화, 핵산(RNA, DNA), 단백질 재조합)에서 개발되는 백신들을 모두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₁₀ 국제백신연구소의 제롬 김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첨단 기술을 통해 생산과정과 시설을 효율화한 한국은 품질 좋은 백신을 저비용으로 생산하는 것에 강점이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₁₁ 제롬 김 사무총장은 백신은 통상 소규모로 생산할 땐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생산량이 커질수록 단위당 가격이 내려간다며 얼마나 효율적으로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팬데믹 발생 이전부터 스마트 공장 도입을 진행해온 한국의 제약 바이오 업계는 백신은 물론이고 주사기까지 스마트 공장 도입을 통해 생산량 증대와 품질 관리 개선에 힘써 왔다. 아스트라제네카 위탁 생산으로 주목받고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의 경우, 2020년 3분기 기준 백신 공장 가동률은 77%에 그쳐 추가적인 공급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₁₂ 무엇보다도 한국은 방역과 백신 접종 과정 설계를 가장 잘 구축하고 성공적으로 운영해 본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새로운 대응 시스템을 설계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백신 개발·양산·방역·접종의 선도국이 국제적 노력의 플랫폼과 과정 관리를 설계해야 국제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과 미국이 이러한 논의를 주도할 가장 적합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제시된 국가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우방국들로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왔다. 이들 국가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데 한국은 유리한 외교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한미 양국의 방역 및 외교 당국이 협력하여 ‘질서 있는 복귀’를 위한 국제 협력의 제반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과 새로운 글로벌 대응 시스템에 구축 방안을 공동으로 만들고 이를 국제사회에 제안하기 바란다. 다가오는 G7 또는 D10 모임이 가장 적합한 국제무대가 될 것이다. 새로운 세계 리더 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은 물론이다. 새로운 협정 체계가 성사될 경우 그 집행조직은 한국에 유치하는 노력도 동시에 전개해야 한다. 새로운 글로벌 대응체제 논의를 주도하는 경우 동 기구의 한국 유치도 국제적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6290246
2) “WB, 작년 성장률 2차 세계대전 후 최악...코로나 통제 안 되면 올해 1.6%”. 연합뉴스 2021.1.6. 기사.
3)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자료를 인용하여 ,데일리팜은 가장 먼저 접종을 시작한 영국의 경우 1월 9일을 정점으로 일일확진자 수가 급감했으며, 미국은 접종개시 시점인 12월 15일 인구 100만명당 646.2명에서 올해 1월 11일 753.3명까지 늘었다. 이후로 꾸준히 감소하면서 2월 3일엔 413.9명까지 줄었다. 미국과 같은 날 접종을 개시한 캐나다의 경우 12월 15일 175.3명에서 1월 9일 255.1명으로 늘었다가, 이후 감소하면서 2월 3일엔 108.0명이 됐다.(데일리팜 2021.02.05. 기사)
4) BBC News Korea. 2021.2.2. 기사.
5) https://www.yna.co.kr/view/AKR20210319006100081
6) https://www.segye.com/newsView/20210315514873
7) https://www.ytn.co.kr/_ln/0104_202102150726368586
8) https://www.chosun.com/economy/science/2021/02/25/QE2F5INPQRFAJLQCZ74OECZI4U/
9) 비전통 안보 : 근대국가의 군사적 위협에 초점을 맞춘 전통 안보와 달리 감염병, 재해 및 재난, 사이버 위협 등 냉전 종식 후 새로이 부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 개념을 일컫는다. 이신화는 비전통 안보의 특징으로 첫째, 안보연구의 범주를 안보에 대한 비군사적 위협에 역점을 맞추어 규정하고, 둘째, 대부분의 비전통 안보 이슈들이 그 발생 원인과 영향에 있어 초국가적 성격을 띠며, 셋째, 학문적, 정책적 면에서 국가뿐 아니라 다른 행위자들도 안보의 준거점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꼽았다. 이신화(2008). 비전통안보와 동북앙지역협력, 한국정치학회보, 42(2).
10) https://www.greenpost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266
11)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0/2020082000295.html
12) https://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609
13) https://www.hankyung.com/it/article/202101211563i
14) https://www.mk.co.kr/news/it/view/2020/11/1215177/
15) https://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8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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