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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인사이트] 인터넷·GPS·드론이 탄생한 곳, DARPA는 어떻게 혁신적 연구조직의 전설이 되었는가? - 미래 기반기술 특공전략가들의 집단, “안정된 직장 원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

이명호

2019.06.18

인터넷(알파넷), 마우스, 음성인식기술(애플 Siri), 자율주행차 등 세상을 바꾼 기술이 미국 DARPA의 연구에서 시작됐다.

과학기술과 연구,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방위고등연구계획국)만큼 언급되는 기관은 없다. 실리콘밸리도 DARPA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꾼 압도적 기반기술들이 DARPA의 연구에서 시작됐다. 인터넷(알파넷), 마우스, 전자레인지, GPS, 탄소섬유, 수술로봇, 드론, 음성인식기술(애플 Siri), 자율주행차 등 셀 수 없이 많다. 인터넷의 기원인 알파넷(ARPA Net)은 DARPA의 설립 당시 명칭인 ARPA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거의 모든 연구소들이 61년 역사의 DARPA를 모방하고 따라잡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애쓰고 있다. 심지어 미국 내 다른 부처들 조차 DARPA를 따라서 ARPA-E(에너지부), I-ARPA(정보부), HSARPA(국토안보부) 등을 설립하였다. 우리나라도 산업부의 R&D전략기획단, 국방부 국방과학연구소(ADD)의 국방첨단기술연구원 등이 ‘한국형 DARPA 구축’이라는 목표로 DARPA의 조직 또는 DARPA의 PM(Program Manager) 시스템을 벤치마킹 해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지난 3월 연간 1000억원씩을 투입해 이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이 시스템이 돌아가는 문화다. 세계의 그 많은 기관들이 벤치마킹 한다면서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글에서는 DARPA의 핵심, DARPA의 운영 철학과 문화, 조직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소련의 ICBM에 대응하라’ 절박성에서 시작

소련이 스푸트니크 위성을 발사한 이듬해인 1958년, 미국 NASA와 ARPA가 설립됐다. (사진: cosmos magazine)

DARPA의 조직 미션은 ‘예상되는 전략적 문제를 미리 발굴하고 해결책을 찾아서 증명하라’이다. 국가 전략적 차원의 우선순위 식별 기능이 최상위 미션이다. 국방부 산하 조직이기 때문에 ‘국가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문제’에 기술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조직이다. 그러나 DARPA는 오히려 민간 기술에 주목했다.

DARPA는 1957년 소련(러시아)의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 다음해에 탄생했다. 미국은 핵을 먼저 개발한 나라였다. 그런데 소련이 원폭을 실어 미국 본토까지 날릴 수 있는 기술인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을 위성발사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먼저 내놓은 것이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였다. 당연히 미국 전체가 뒤집혔다. 바로 다음 해인 1958년, 미국은 우주기술을 개발하는 NASA와 함께 ARPA를 설립하였다. 이 두 조직의 핵심적 특징은 바로 군, 국방이라는 명칭과 칸막이를 걷어내고 민간의 역량을 결합하고 동원하는 조직을 만들었다는데 있었다. 필자는 미국이 냉전에서 소련을 이긴 데는 바로 이 두 조직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NASA(항공우주국)는 기존의 육군과 해군의 미사일연구소를 대신해 우주개발과 ICBM 기술 개발이라는 미션을 부여받았다. ARPA의 목표는 더 근본적이었다. NASA가 소련 스푸트니크에 대한 맞대결 성격이라면, ARPA는 적국으로부터 오는 기술적 충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미래 기반기술 개발이 목표였다. 설립 때 명칭은 ‘D(Defence)’가 빠진 ARPA였다. 기술 자체에는 민간과 군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민간(대학과 기업 연구소)의 역량을 총동원하자는 취지였다. ARPA는 외국의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기술 동향을 수집하고, 외국의 연구자에게 연구 과제를 주는 등 글로벌 차원에서 민간의 과학기술 지식과 역량을 흡수한다는 방침이었고 이것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DARPA의 구체적인 역할과 협력 대상은 시대에 따라 변하였다. 설립 초기에는 기초연구(신소재 개발) 지원에 치중하다가, 국가적으로 산업 경쟁력이 중시되던 1980년대에는 국방력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민군겸용 기술(Dual-Use Technology) 연구에 집중하였다. 이어 다른 부처들이 별도 연구소를 설립함에 따라 다시 국방에 집중했고 이름도 ‘D’를 붙여 지금의 DARPA가 되었다.

자체 연구소가 없는 것이 최대 특징

DARPA의 가장 큰 특징은 자체 연구소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기술에 민간과 군의 구분이 없듯이, 획기적인 기술은 어디서나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최고의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자체 연구소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획기적인 발상에서였다. 사람은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을 못으로 박아 해결 하려는 습성이 있다. DARPA 설립자들은 연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체 기술에 경도되거나 전문가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막고 칸막이를 걷어 치우기 위해서는 연구소가 없는 연구기관이 돼야 한다고 봤다. DARPA 최고의 혁신은 바로 이것이었다.

DARPA는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중요한 과제, 실패 가능성이 크지만 성공만 하면 획기적인 효과(Revolutionary Advantages)가 예상되는 과제에 집중해왔다. 흔히 말하는 ‘고위험 고성과(High Risk, High Pay-off)’ 과제다. 문제는 기획 단계에서, 솔루션이 확인되기도 전에 그런 과제를 발굴하는 안목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GPS는 평범한 대학원생의 아이디어에서 시작

DARPA 기획자들은 미래의 지휘관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앞으로 예상되는 문제와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를 조사하여 해결 방안을 찾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은 핵 공격으로 통신망이 손상되었을 때 어떻게 분산적으로 통신망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풀기 위하여 시작된 과제에서 비롯됐다. 스텔스기는 한층 강화되는 소련의 방공망을 뚫기 위해서는 레이더에 안 잡히는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GPS 사례는 극적이라 할만 하다. 소련 스푸트니크 위성이 우주에서 지구로 보내는 주파수를 추적하던 2명의 대학원생이 도플러 원리(신호음이 기지국 관찰자와 가까워질 때는 커지고, 멀어지면 작아지는 물리학 원리)를 이용해 위성의 궤도를 추적했다는 신문기사가 났다. 이것을 본 미 해군연구소(NRL)의 소장은 도플러 효과를 거꾸로 이용하면 지구상 물체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 과제는 17일 간의 심사과정을 거쳐 1958년 10월 DARPA의 자금지원 결정이 내려졌다. 이것이 후에 민간에 개방돼 GPS 위성기술의 시대를 열었다. (미군의 GPS 항법 시스템은 비밀리에 운영되다가 1983년 대한항공 여객기가 항로 계산 착오로 소련 영공에 잘못 들어가 격추되어 269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위성항법 시스템을 민간에 개방하였다).

DARPA는 기초연구 결과(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단기간에 기술적 솔루션을 구현하는 ‘가교 역할(Bridging The Gap)’에 치중한다. 멀리(FAR) 위치한 아이디어를 찾아내 최대한 신속히 가능성 있는 기술로 등장할 수 있도록 가까운(NEAR) 곳으로 이동시키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한된 시간(일반적으로 4년) 내에 모든 지식과 역량을 집중하여 기초연구로부터 도출된 과학적 개념을 발전시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기술적으로 증명(Proof-of-Concept)하는 역할에 치중한다. 기술적 증명이 되면 DARPA의 역할은 끝나고 이 기술은 국방성의 각군 서비스 과학기술(Service S&T) 부서에 이전되어 파일럿 플랜트(pilot plant) 구축, 시험생산(test bed) 등의 과정을 거치거나 기업에서 생산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자료: DARPA Strategic Plan(2009), DARPA Bridging the Gap Powered by Ideas(2009)

이와 같은 DARPA의 역할을 미국의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에서 보면 DARPA와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 미국과학재단)는 동전의 양면 같은 보완관계를 이루고 있다. NSF는 대학 등에 작지만 장기적인 연구지원을 통해 기초연구에 집중할 수 있은 환경을 제공한다. DARPA는 기초연구에서 나온 아이디어(기초 기술)를 발굴하여 매우 풍부한 연구비(NSF 지원 연구비의 3~10배)를 지급하여 매우 실용적인 문제해결 기술(상용화, 사업화 이전 단계)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NSF와 DARPA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서 국가혁신시스템, 연구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DARPA는 혁신생태계에서 대학, 기업, 정부를 연결하는 허브이자 산학연에 흩어져 있는 아이디어(기초연구 성과)와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혁신을 이뤄내는 산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DARPA는 기업에 기술공급자 역할

또한 DARPA는 정부가 개발한 실용연구의 결과를 연구에 참여한 미국 첨단 기업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전하는 주요 기술 공급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정부의 자금으로 개발된 기술이 민간에 이전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한데는 ‘베이 돌법(Bayh Dole Act, 1980년)’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정부 지원 자금으로 창출된 발명 특허라도 그것을 상업적으로 활용해 나오는 이윤은 실제 개발기관(대학, 연구소, 기업 등)이 소유하고, 정부는 무상으로 가져다쓸 수 있는 권리만 갖도록 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기술 필요를 충족하고 기업과 연구소에는 상업적 실리를 보장하는 방식이다(우리나라도 이 법을 벤치마킹하였지만 정부와 개발자가 특허권을 공동소유하도록 하거나, 국방 관련은 공공기관만 소유하도록 해놓고 있어 민간의 역량을 결합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이와 같은 제도적 장치는 군과 군수산업체, 일반 기업, 대학 등을 연결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초기 실리콘밸리 생태계가 형성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한편에선 이 군산학 복합체(military-industrial-academic complex)가 군수산업체의 이익을 우선시 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자료: DARPA를 중심으로 한 기초와 첨단 연구의 순환 생태계(이명호, 2017)

DARPA는 조직의 수장인 국장(Director)를 정점으로 부서장/실장(Office Director), PM이라는 3단계의 소수정예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서장의 주요 임무는 PM 발탁과 지원, 아이디어의 승인이다. 전체 조직의 규모는 각 과제를 책임지는 100여 명의 PM, 120여명의 연구행정전문인력(회계, 계약, HR, 보안, 법률자문 등)을 포함하여 300여 명에 불과하다. 과제를 수행하는 PM들은 통상 5~6명의 인력(staff) 지원을 받고 있고, 또 5~6명의 지원인력들은 각각 1~2명의 인력 지원을 받고 있는 구조이다.

PM은 공모가 아니라 사실상 전원 특채

PM은 공무원 신분이지만, 프로젝트 기간인 3~5년 단위 계약직이어서 프로젝트가 끝나면 임기도 종료된다. 신속한 고용, 계약기간 내 완벽한 자율성과 신축성 보장, 과제 완료 후 계약해지 시스템이다. PM은 국장과 부서장이 직접 선발한다. 기업, 대학, 국가 연구소, 비영리단체, 군 기관 등 가리지 않는다. 채용은 공모가 아닌 스카우팅 성격이다. 일반적으로 PM 채용에 걸리는 행정적 시간은 5일 정도에 불과하다. 부서장(실장)이 고용할 사람을 데려와 다른 PM들과 미팅을 한 후 이틀 뒤에 국장과 인터뷰 하고 다시 이틀 후에 신원 조회를 마친 뒤 출입증을 받아 사무실로 출근하는 방식이다(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방식의 공무원 채용은 규정에 어긋나고 감사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실행할 수 없다). PM은 보통 최종 학위 취득 후 5~10년 연구 및 현장 경험이 있는 30~40대들이라고 한다. 파격적인 방식으로 인재(PM)를 구하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인재에게 자율권을 주고, 파격적인 기술을 개발하라는 일관된 원칙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DARPA의 2018년 예산은 30.7억 달러였고, 약 230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한 PM이 2~3개의 프로젝트를 수행). PM은 단위 사업 당 3~5년 동안 1,000~4,000만 달러의 예산으로 프로젝트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 한 프로젝트는 보통 5~10개 내외의 대학과 기업이 동시에 참여하는 계약 형태로 수행된다. 각 단위 사업은 기술적 사항과 예산집행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는 단 한 명의 PM에 의해 관리된다. PM은 독립적이고 막강하면서도 폭넓은 재량권,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다. PM은 한마디로 스타트업의 CEO라고 할 수 있다. PM은 미래의 주요 이슈를 발굴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선정하며, 외부 연구기관을 조직하여 해결책을 기술적으로 실증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PM은 소수(5~6명) 스태프들의 지원을 받아 예산과 일정을 감독하고, 연구자가 직면한 기술 및 물류 문제를 해결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그룹 간의 의사 소통 및 협업을 관리하고, 프로그램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수행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된다.

지적 자부심으로 가득찬 사람을 PM으로 스카웃

PM은 스타트업의 CEO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PM에게는 상당히 다양한 자질이 요구된다. 비전 사고력, 리더십, 재무적 책임성, 기술적 전문성, 의사소통 역량 등이다. 과제의 성공은 전적으로 PM의 역량에 달려있기 때문에 DARPA는 최고의 아이디어를 가진, 자율성을 갖고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인재를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적 능력뿐만 아니라 기업가정신을 함께 보유한 과학자 및 엔지니어를 PM으로 영입한다. 기술적인 면에서 강하고 프로젝트 관리 경험이 있는 사람, 꿈꾸는 사람이고 통념에 제약 받지 않은 사람, 드물게 비전과 실용성을 겸비한 사람을 뽑고 있다(전 STO 실장 Nils Sandell). 훌륭한 PM은 토론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 지적 자부심을 가진 사람, 아이디어를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간주하지 않는 사람, 학계의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지적 아이디어의 소유가 적지만 두뇌가 뛰어난 사람이다(DSO 사무소 국장 William Regli).

그렇기 때문에 DARPA의 명성만을 보고 안전하고 안정된 직업을 찾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있다. DARPA에서의 근무는 영광이지만, 디딤돌로 삼으려는 사람은 제외한다(MTO 실장 William Chappell). 그렇게 신중하게 인재를 뽑고 있어도 새로운 PM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일을 시작할 때까지는 알 수 없다(DSO 실장 William Regli). 그리고 신입 PM 중 30%가 “놀라운” 인재이지만, 그 30 %를 미리 알 수는 없다(Stefanie Tompkins)고 한다. DARPA 과제의 성공율은 알려져 있지 많지만, 짐작컨데 70%는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반대로 고위험 기술 연구에서 30% 성공은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과제는 성공 여부를 떠나서 DARPA 과제는 미국 과학기술 연구생태계에 기술적 능력과 인재의 경험이 축적되는데 기여하고 있다.).

DARPA는 이와 같이 PM을 뽑아, 똑똑하고 혁신적인 사람에게 빠르고 맹렬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자금을 대주고, 현장에 나가게 한다(AEO 실장 Dale Waters). 프로젝트 기간(3~5년)의 계약직이지만,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친 PM은 이전 직장으로 복귀하거나 관련 기술의 사업화, 창업 등으로 기업체에 스카우트 되면서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경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성과를 얻고 있다. 정년이 보장된 대학의 자리를 버리거나 산업계의 성공적 경력을 버리고 급여도 줄고 직업의 안전성도 보장되지 않는 PM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재량권과 자원을 갖고 중요하고 혁신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가장 큰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MTO 실장 William Chappell). 이와 같이 많은 PM들은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과 자원이 부족함에도 연구해 온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 DARPA에 오고 있다. 변화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회, 미래를 형성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함이다. 일부 PM은 이전에 DARPA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과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철저한 기획 프로세스 지원

DARPA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선정되고 이를 책임질 PM이 뽑히면, PM의 주도하에 과제 기획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PM은 연구 커뮤니티와의 협력 속에서 일을 진행한다. BAA (Broad Agency Announcements)를 발표하여 잠재적인 수행자가 달성해야 할 목표 제시한다. 컨퍼런스와 스폰서 워크샵 개최하여 기술 개발에 대한 정보 제공과 관심 분야를 알리는 활동을 한다. 연구 커뮤니티에 Requests for Information (RFI Special Notices)를 발송하여 해당 분야의 연구 정보 요청하고, 응답은 비공개로 처리하여 아이디어를 보호해 준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잠재적인 기술을 발굴하면 본격적으로 과제 기획을 진행한다. 과제 기획은 DARPA 부서인 기술 심의회(Tech Council)의 지원을 받아 준비한다. 아이디어를 과제로 기획하고, 승인(자금)을 받는 프리젠테이션 과정을 지원받게 된다.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작성하고 수정하는데 몇 달 간의 반복 과정을 진행하게 된다. 이때 준비하는 질문은 DARPA 국장을 역임한 Heilmeier의 교리문답이라고 한다.

당신은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 아무런 전문 용어도 사용하지 말고 목표를 분명하게 말하십시오.
- 현재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현재 관행의 한계는 무엇인가?
- 당신의 접근 방식에서 새로운 점과 그것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누가 관심을 가지고 있나? 성공하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 위험과 보상은 무엇입니까?
- 비용은 얼마입니까?
- 성공을 확인하기 위한 중간 및 최종 “테스트”는 무엇입니까?

위원회가 아닌 신속한 공동 책임 의사결정

기술 심의회의 지원을 받아 PM이 준비한 과제 제안은 소속 기술 사무실을 거쳐 전체 기술 위원회에 프리젠테이션으로 제안된다. 위원회는 조언을 하고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과제 승인은 전적으로 국장과 부국장이 결정한다. 전문가 평가(Peer Review)를 생략하며, 신속성과 PM의 결단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R&D 사업에서 일반적인 전문가 평가 절차가 없고 PM의 준비 정도와 의지를 존중하는 것은 파괴적 혁신은 본질적으로 컨센서스 형성이 어렵다는 인식때문이다. 전문가 평가를 하면 다양한 측면의 점검이 가능하지만, 선정과정이 길고 보수적인 과제가 채택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즉각적이고 혁신적인 과제 추진에 방해가 된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그 분야 최고의 인재를 모셔왔는데, 위원회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최고의 인재가 아닌 사람들이 결정을 하는 것 자체가 올바른 결정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PM은 과제를 진행하면서 전적으로 권한을 갖고 일반적인 조달 계약보다 신속하고 유연한 과제 연구 및 수행 계약을 진행하게 된다. 최고 인재를 모셔오고 그들을 믿어라. 위로부터의 진군명령은 없다. 유일한 명령은 혁신을 창출하라는 것뿐이다.

이후 기획된 혹은 진행 중인 프로그램은 주기적으로 사업평가(Program Review)를 받으며, DARPA의 전략과 예산은 국방부에서 검증을 받는 통제 구조를 갖고 있다.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DARPA

DARPA의 컴퓨터와 인터넷 분야의 많은 연구 성과들은 명확한 목표와 계획에 따라 진행됐다기보다는 시대를 앞선 몇몇 선각자의 통찰로 대략 방향을 잡고 진행 과정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여 혁신을 이룬 경우가 많았다. 무인 자동차(Autonomous Car)와 로봇 프로젝트에서는 신속한 결과를 얻기 위해 랩(Lab) 차원의 연구 프로그램 대신 우승 상금을 내건 경쟁 방식을 도입하였다.

DARPA의 60여년 혁신적인 성과의 원인은 과제 수행에 집중한 내부의 노력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구조와 제도적 장치, 부서장과 PM 등 핵심 인력의 독립적인 결정권, 끊임없는 조직의 자기혁신을 위해 핵심적인 사항은 지키면서도 조직을 계속해서 혁신해 왔다. 또한 DARPA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율성을 보장해준 정부와 의회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율성 속에서 DARPA는 정부와 민간의 원활한 인력과 정보의 교류, 기초연구와 사업화의 가교적 역할, 정부 R&D 결과물(기술, 제품, 지재권 등)의 민간 이전이나 공유 등 사업화와 확산이 모두 가능한 혁신적인 연구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일조하였고, 이러한 생태계가 다시 DARPA가 성공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DARPA의 껍데기가 아닌 정신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DARPA의 몇 가지 기능을 모방한다고 한국형 DARPA가 될 수는 없다. DARPA가 추구하는 핵심적인 정신과 조직 문화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DARPA의 미션은 기술개발이 아니다. 국가의 임무(안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해결책을 기술로 구현하라는 것이다. 국가가 과학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활용하여 임무를 수행한다는 임무중심의 원칙 하에 DARPA 같은 정부 연구기관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 주도의 신성장동력 발굴, 산업 육성을 위한 R&D 지원이라는 낡은 프레임에서 빨리 탈피해야 한다. 신성장동력을 만드는 R&D는 기업의 역할이고, 정부는 끊임없이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는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 중에서 DARPA에서 보았듯이 잘 작동하는 방식, 정부가 직접적으로 기술에 개입하는 방식은 정부에서 필요한 기술을 직접 찾는 방식이다.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 관료가 산업계를 지도, 지원한다는 발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

국가, 정부의 일차적인 미션은 산업지원이 아니고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안보, 보건(의료)이고, 미국 등 선진국은 이 분야의 연구에 국가가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선도적인 과학기술 기반의 문제해결 주체가 되기 위한 것이다. 국가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발굴하고, 아이디어를 찾고, 연구를 기획하고, 연구팀을 조직하여 책임지고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적, 자율적 연구기획 조직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이 목표가 아니라 정부의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데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다는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미국은 911 테러 후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는데 필요한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하였고, 이 기술은 이후 민간에서 금융 사기 탐지 기술로 활용되는 방식이다.).

국가, 정부가 목적 달성을 위한 신기술을 개발하다 보니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같은 성장동력이 나오는 선후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꾸로 돼서는 우리나라는 영원히 추격자, 모방자를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민간보다 앞서 정부가 선진 기술의 채택자가 되고, 첨단 기술로 운영되는 정부 조직이 될 때, 국가의 다른 분야와 산업, 기업계도 정부를 따르게 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DARPA 같은 전문적인 조직을 구성할 수 있는 인재, DARPA의 PM과 같은 전문성과 실행력을 갖춘 인재가 준비되어 있느냐의 이슈가 항상 제기되는데, 미국이 60년 전에 만든 조직을 지금 우리나라가 못 만들 이유가 무엇인가를 되물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역사도 70년이 넘었다. 현장의 연구 경험과 과제 발굴 경험이 많은 잠재적인 PM은 이미 많다고 본다. 문제는 DARPA 같이 파격적인 조직 운영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데 있다. 국장 단독 결정으로 5일만에 PM을 채용하고, 국장이 전권으로 과제를 승인하고, PM이 자율적으로 계약(흔히 우리나라에서 허용하지 않는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공무원인데도 CEO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냐가 관건이다. 이런 공간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DARPA의 벤치마킹은 정신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나라도 DARPA 같이 과학기술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부의 미션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연구 과제를 발굴, 기획, 실행, 책임지는 자율성이 보장된 조직 하나는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고 본다.

한국형 DARPA가 지켜야 할 핵심은 이것이다

한국형 DARPA 운영체제는 관료적 상위기관만 아니라 관료적 기제에 익숙해진 기존 연구기관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전적인 위임과 자율을 보장하는 시스템, 충분히 위임할 수 있는 PM의 인선 역량, 이들의 도전적 활동을 보다 높은 차원의 전략에서 모니터링하고 통합할 수 있는 전문운영역량과 기관의 정체성을 지키는 윤리적인 리더십의 장기간 보장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기성이 아니라 ‘윤리적인 리더십’이다. “외형적 확대를 지향하기 보다는, 관료주의로 인한 민첩성과 도전정신 훼손을 우려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PM은 기술벤처기업의 CEO와 같은 기민성과 대형선도기술기업의 CTO와 같은 폭넓은 도메인지식(Domain Knowledge)을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 소통역량이 뛰어난 인물로 선발해야 한다. 기술의 완성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확산가능성 입증에 주목하는 국가첨단기술 CTO, 주어진 국가전략 컨텍스트 속에서 자신만의 기술전략을 끊임없이 수정하며 가치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1인 공공기술혁신 특공전략가, 이런 인재들을 영입해야 한다. 조직 문화는 눈에 보이는 비교 가능한 공정한 성과 (특허, 기술이전, 보여주기식 데모 등)가 아니라도 PM의 이러한 활동의 유효성을 알아봐줄 동료집단(Peer Group)과 지휘관이 ‘시스템’으로서 존재하면서 PM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PM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호하고 상호진화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형 DARPA의 영역은 국방 분야보다는 국민안전 분야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국방은 여전히 안보의식 속에서 칸막이와 정보 통제가 많아 PM의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기 어렵다. 반면에 안전 분야는 국민의 이익과 직결되는 분야이고 민간(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과의 기술 교류(기술 유입과 이전)도 쉽다. 안전 분야의 감지, 예방, 구조 등의 기술은 또한 국방과 관련된 기술로도 활용될 수 있다. 지금의 공공연구계는 DARPA와 같은 새로운 연구 조직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한 새로운 조직의 등장만이 지금 공공연구계를 비롯하여 국가의 과학기술 시스템을 혁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안전기술연구기획단의 출범을 기대해 본다.

[참고 문헌]
- 이명호, “국가 R&D 전략과 시산학 혁신체제”, 여시재 Issue Report, 2017.11.
- 이효은, “혁신 아이콘 60년, DARPA의 평가 및 PM 제도 분석”, ICT Spot Issue, IITP, 2018. 11.
- DARPA, “Innovation at DARPA”, DARPA, 2016.7.
- DARPA, “DARPA 60 Years: 1958-2018 ”, DARPA, 2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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