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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 The World : A Brief Introduction] 美 외교협회장이 왜 지금, ‘미국인을 위한 국제관계 입문서’를 썼을까?

김민하(SD)

2020.07.31 2230

“‘디지털 리터러시’ 못지 않게 ‘글로벌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The World : A Brief Introduction(PENGUIN PRESS NEWYORK / 2020)

“‘디지털’처럼 ‘글로벌’도 이해해야 하는 시대,
그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썼다”

이 책은 아마도 리처드 하스가 쓴 것이 아니라면 출판까지 이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한마디로 ‘평범한 미국인을 위한 국제관계 입문서’다. 보통 국제관계 관련 책이라고 하면, 우스개로 베개 삼으면 될만한 벽돌책을 떠올리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숨 가쁘게 읽으면 금방 끝낼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숨이 가쁘지도 않다. 이미 아는 내용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미국의 선도적 국제관계 전문가, 다른 나라 정상들이나 글로벌 기업 CEO들을 상대함직한 하스가 썼다. 17년째 그가 이끄는 CFR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안보 관련 민간 단체라 할 수 있다.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의 정치∙경제 거물들이 강연을 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보수 성향이라고 하지만, 미국은 공화 민주 모두 원래 보수적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CFR도 공화 민주 정치적 성향을 떠나 미국의 유력한 사람들이 망라된 단체라고 보면 된다. 전직 대통령과 부통령들, 전직 국무장관과 재무장관들, 예비역 고위 장성들, CIA 국장이나 NSC 출신들, 연준 의장과 세계은행 총재를 지낸 사람들, 유력 언론인들이 회원이다. 웬만한 사람은 명함 내밀기 어렵다. 독일 ‘슈피겔’은 “미국과 서방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민간기관”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국”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 출신 리처드 하우드는 ‘지배계층 언론인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 단체에 대해 “미국을 지배하는 조직과 가장 가까운 존재”라는 표현을 썼다. 이런 조직을 이끄는 선도적 전문가가 입문서를 쓴 것이다. 바로 궁금증이 생긴다. 왜, 그가, 지금, 입문서를 썼을까?


하스는 책 서문에서 “나의 목표는 세계에 대해 당신(독자)이 알아야 할 기본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당신은) 나라 바깥의 일들이 매우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 대목에서 ‘글로벌 리터러시’라는 다소 생경한 표현이 등장한다. 리터러시는 요즘 ‘디지털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등 점점 다양하게 쓰인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시대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정보 이해 및 표현 능력을 말한다. 그냥 문자만 해독할 수 있다고 리터러시를 갖췄던 시대가 아니라 디지털과 미디어에 대해 독자적인, 또는 기초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리터러시가 ‘글로벌’과 결합하는 단계(세계화)에 왔다는 것이 하스의 판단인듯 하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나라와 세계의 운명에 대해
아는 게 없이 대학문을 나선다”

하스는 하나의 경험과 하나의 판단을 얘기한다.


먼저 ‘경험’이다. 하스는 친구의 조카인 젊은이와 낚시를 하면서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그는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이었고 곧 학위과정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는 보트에 함께 앉아 있는 젊은이에게 코딩 이외에 어떤 다른 것을 공부했는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경제, 역사, 정치 등. 그의 대답은 그가 전공 이외에는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 “이 뛰어난 젊은이는 그의 나라와 세계에 대해 거의 아는 것 없이 졸업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나라와 세계의 운명이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어느 때보다 더 유동적인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다.”


하스는 여러 통계자료를 들어 이 젊은이가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국 내 1100개 대학과 칼리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단 17%만이 미국 정부 시스템과 역사에 대한 학점을 요구하며, 경제학 코스를 필수로 하는 곳은 3% 밖에 되지 않는다. 하스는 “미국 독립전쟁이나 시민혁명에 대해 배우지 않고도, 좀 더 근본적으로는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우지 않고도 대학을 졸업하는 게 가능한 게 현재 미국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스는 나이 든 사람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냉전 또는 탈냉전 시대의 질서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지금 벌어지는 대변동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위) 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 모습 (아래)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지크프리트 전선을 폭격하는 미국의 폭격기 (출처: U.S. Air Force)

“포퓰리즘이 외교에까지 침투
정치인들은 지지를 얻기 위해
대중의 감성을 조장”

하스가 이 책을 쓰게 된 ‘판단’은 그가 트럼프라는 이름을 꺼내지도 않지만 현재의 미국 정치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청중(domestic audience)의 국제정치에서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현대 미국인은 기술발전과 함께 개개인은 상대국에 대한 보이콧의 형태로, 또는 여론형성에 참여함으로써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민족주의 정서는 확대되고 고무되며, 대외정책은 감정적인 국내 여론에 이끌려 좌우되기 쉽다. 그리하여 포퓰리즘과 대중영합정치의 강화가 국내 정치만이 아니라 대외정책에도 여실히 반영된다. 정치인들과 정책 결정자들은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위해 혹은 국내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이러한 상황을 별다른 장기적 책임감 없이 묵인하거나 심지어는 조장한다. 이런 대중영합적 대외정책결정은 ‘외교’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보다 장기적으로 국제관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상징적일지언정, 갈등을 겪으면서도 물밑으로 대화하여 갈등을 통제하에 두고, 국가 관계를 과거와 미래의 연속적인 틀 안에서 보고자 하는 외교 행위는 국가 간의 기본적인 신뢰와 존중이자, 가장 파국적인 결과로 향하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이러한 외교의 의의가 퇴색되어가는 것은 장기적으로 안전장치 없이 내달리는 폭주기관차처럼 우리를 굉장히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리차드 하스의 이 책은 그러므로 트럼프로 대표되는 이 혼란의 시기에 미국 외교라인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며, 그 주체가 되는 개개인 모두가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교훈을 되새길 때라는 주장에 가깝다.

(출처: KBS)

“평범한 사람들도 국제관계를 알아야 하는 시대”

하스는 자신이 이 입문서를 쓰기로 생각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고 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의 리더 국가였으며, 스스로 설계한 질서 속에서 세계를 지배해왔으며, 앞으로도 미국의 선택 하나하나가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도 국제관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스는 3년 전 ‘혼돈의 세계’라는 책을 썼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를 이끌어온 규칙과 정책, 제도가 한계에 도달했으며, 오늘날의 세계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설명한 책이다. 이 책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새로운 세계 질서 2.0’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혼돈의 세계’에서 쓴 내용은 지금 하나하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아마도 이번에 쓴 입문서는 이 책을 쓸 당시부터 구상했는지 모른다.

유럽 민족국가의 시작,
그리고 두 번의 세계대전

‘The World’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시작한다. 봉건국가가 문을 닫고 유럽 근대 민족국가의 기틀이 마련된 전환기였다. 하스는 이후의 세계를 시대순, 지역별, 주제별이라는 세 가지의 큰 카테고리에 담아 ‘The World’의 구조를 풀어낸다. 현대 세계의 원형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주장을 하거나 거대한 이론의 틀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스는 우리가 지난 세기에 두 차례나 발생했던 파괴적인 전쟁의 참상에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울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왜 전쟁이 발발했던가? 그리고 그 전쟁은 얼마나 참혹했던가? 세계대전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발발했으나 어마어마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하스는 보여주고 싶어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새로 부상하는 국가들과 쇠퇴하는 실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배경으로, 다가오는 시대에 누가 승리할 것인가에 대한 경쟁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정확히 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는지, 누구를 비난해야 할지에 관해서는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재능 있는 역사학자들 역시 끊임없이 탐구해 온 문제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크리스토퍼 클라크 교수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유럽 상황을 ‘몽유(sleepwalking)’라고 묘사한 바 있다. 독일만의 책임이 아니라 참전국 모두의 책임이며, 굳이 일어날 필요가 없는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1차 전쟁을 ‘부주의함에서 비롯된 전쟁(A war of carelessness)’으로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전쟁은 구조적 원인과 즉각적인 이유 모두에 기인하여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세계 1차 대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스는 리델 하트(Liddell Hart)의 말을 인용해 이를 설명한다: "유럽의 상황을 폭발적으로 만드는 과정은 50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를 실제로 폭발시키는 데에 오직 닷새 면 충분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암살 사건들이 있었지만 전쟁을 유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다른 요인들이 모두 전쟁 발발에 기여했다. 물론 독일과 영국의 부상은 그 중 핵심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또한 각국의 형편없는 국정 운영이 충분한 검토 없는 동맹 결성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또 상호 도움이 되는 무역 관계를 형성한 국가들이 감히 무역관계를 훼손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 역시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외교는 전혀 이 추세를 따라잡지 못했다. ‘전쟁은 불가피하지만 신속하고 비교적 고통 없는 승리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무신경한 태도가 전쟁으로 연결됐다. 그 저변에는 내셔널리즘이 깔려 있었다.


전쟁의 대가는 거대하고 참혹했다. 약 900만 명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고 210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민간인 사망자는 수백만 명이었고, 스페인 독감은 전장에서 창궐했다. 전염병 사망자까지 포함하면 수천만 명이 죽었다. 이 모든 것은 세계 인구가 현재의 약 5분의 1인 15억 명일 때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모든 전쟁들을 끝내는 전쟁’으로 불렸던 제1차 세계대전은 더욱 큰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독일만을 비판할 수는 없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역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혀 봉합되지 않은 문제들과 거기서 비롯된 갈등들, 그리고 경제침체와 같은 배경들이 모멘텀을 형성해 갔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흥미롭게도 약간의 낙관론적 생각들이 만연해 있었고,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전후 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들이 시작되었다. 우드로 윌슨은 국제기구의 설립을 가장 우선으로 했다. 그러나 국제연맹은 미국 상원에서 고립주의자와 일방주의자에 의해 봉쇄되었고, 미국의 가입 실패 이후 연맹은 그 의의를 회복하지 못했다. 우드로 윌슨의 과도한 이상주의와 결과적 국내 정치의 실패로 실상 국제기구는 껍데기에 불과하게 되었다.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전쟁을 매우 비싼 옵션으로 만들어 억제한다고 보는 학파도 있다. 그러나, 당시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관세를 부과한 스무트-할리 관세법은 국제 무역을 축소함으로써 다른 나라들이 모든 분야에서 보복을 하도록 만들었다. 보호무역정책들이 경제적 연계를 줄임으로써, 전쟁에 드는 비용, 그 옵션에 대한 비용을 줄였고, 결과적으로 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지게 된 것이다.

cf. 스무트-할리 관세법
미국이 대공황 타개를 위해 1930년 제정한 관세법. 내수 기반이 붕괴되자 미국과 유럽 기업들은 수입품을 규제해달라고 의회에 청원했다. 그 첫 조치로 미국에서는 스무트와 할리 의원이 주도해 관세율을 59%로 인상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자극받은 영국과 프랑스 등도 경쟁적으로 수입 관세를 올렸다. 그 결과로 1930~1932년 사이의 기간에 국제무역이 63%나 감소했다.

하스는 2차 대전 발발도 독일만의 책임이라고 보지 않는다. 대공황은 독일을 강타했고, 이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관에 박는 마지막 못”이 되었다. 독일은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대출이 필요했지만, 대공황이 닥치자 정부가 빚을 갚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으로 더 많은 돈을 인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초인플레이션이 뒤따르게 되었다. 저자가 보기에 이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실패했을 때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였다. 분노하고 절박한 사람들은 기꺼이 기본적인 시민의 자유를 헌납하고라도 질서와 번영이 회복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정당과 정치인들은 사실상 정치경제적 삶의 모든 측면을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믿음에 의해 촉발된 파시즘과 포옹하게 되었다.


‘The World’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냉전, 그리고 탈냉전의 역사를 다룬다. 2부는 유럽과 동아시아 등 지역별 상황을 다루고, 3부는 세계화, 테러리즘, 기후변화 등 주제별 접근이다. 4부는 주권과 동맹, 아직 끊이지 않는 전쟁, 자유로운 세계 질서의 조건 등 보다 이론적인 이슈를 다룬다. 짤막짤막하게 요약되어 있으면서도 저자의 경험이 녹아 들어 있어 읽기 편하다. 모든 내용의 바탕에는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하스는 세계화는 나쁠 수도,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그저 현실이라고 말한다. 강대국 간의 관계도 물론 핵심적이지만, 그것만이 이 시대를 온전히 규정하게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세계화가, ‘세계가 이어져있다’는 사실이 이 시대를 규정할 수 있다고 본다. 하스는 세상에는 완전한 정의와 평등은 물론, 완전한 평화도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질서와 무질서 속의 균형, 국제질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금도 아마존 베스트셀러

이 책은 지난 5월 나오자마자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지금도 ‘세계화와 정치’ 분야 2위에 올라 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이 바로 리뷰를 썼다. 뉴욕타임스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다른 국제관계 책들과 달리 ‘매우 실용적인 가이드북’이라고 했다. WSJ은 개괄적 서술에 머물렀다는 점에 불만을 표했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하스 역시 미국 예외주의적인 전통적 미국 외교 라인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핵심 메시지는
‘세계는 이어져 있다’는 점

그러나 하스의 이 책은 이 모든 것과 상당 부분 무관하다. 이러저러한 비판을 제기할 똑똑하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위해 쓰인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The World’에는 거의 한 번도 어려운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미국의 관점에서 쓰여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중국을 포함한 그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최대한 판단을 자제한다. CFR이 공개한 인터뷰에서 하스는 그가 다른 지점들에서는 고의적으로 유보적인 톤을 유지했지만, 단 한 가지 주장만은 아주 강하게 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바로 “세계는 이어져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인적으로 책의 백미는 마지막 대목의 notes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꼼꼼하게 자신이 제시한 통계의 근거가 되는 자료들과 독자들이 더 읽거나 참고할 수 있는 책, 웹사이트의 목록까지 세세히 나열한다. 부디 세상에 대해서, 그 지역과 이슈에 대해 미국이 관계 맺어온 역사를 꼼꼼히 살펴 달라는 것이다. 세상은 연계되어 있고, 어떠한 문제는 절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이슈들은 우리가 함께 마주하여 풀지 않으면 안 되고, 비슷한 일은 예전에도 일어난 적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결국 ‘디지털 리터러시’처럼 ‘글로벌 리터러시’도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에게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고 하더라도 선택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관점이 필요하다. 어떤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가? 우리 개개인 역시 역사를 돌이켜보자고 호소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미국인들을 위한 입문서지만 우리에게도 꽤 유용하게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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