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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엘리트 의식에 젖은 대법원, 사법개혁이 검찰개혁 보다 중요”

김민하(SD)

2020.07.14 2608

- 『헌법을 쓰는 시간』 저자 김진한 교수, 여시재 웹 세미나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출처: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한국의 ‘여론 광장’은 황폐하다. 2016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점점 심각해졌다. 최근 두 사람의 죽음 앞에서 민낯이 드러났다. 여기에 또 하나의 광장이 더해졌다. COVID-19라는 대전염병 앞에서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의 인권이 훼손되는 상황이 도처에서 노출됐다. 당장은 효율이 앞설 수밖에 없지만 결국 후과로 돌아올 것이다.


이런 분열과 집단주의의 시대에 우리가 돌아가야 할 것은 ‘헌법의 가치’다. 그것이 강건하다면 조금 흐트러지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렵더라도 두루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민주와 공화, 인권과 복지를 함께 생각하고 다시 설계하는 단계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여시재는 2017년 『헌법을 쓰는 시간』을 펴내 헌법의 중요성을 재상기시켰던 김진한 교수와 두 번에 걸쳐 웹 세미나를 열었다.


<<김진한 교수 발표 및 토론회 요약>>


김 교수는 헌법과 한국 정치, 사법개혁 과제, COVID-19가 남긴 인권 문제 등 헌법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여시재 연구원들과 토론을 벌였다.

1. COVID-19와 인권

“개인의 인격까지 매장
헌법전문가들마저 암묵적 동조”

COVID-19 통제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가 개인정보를 당연하게 이용하고, 언론들이 개인의 인격까지 매장하는 상황들을 보았다. 누구 하나 문제제기 하지 않았다. 헌법을 지켜야 할 사명을 갖고 있는 이들, 헌법전문가들마저 침묵을 지켰다. 암묵적으로 동조했다. 물론 공공 보건이라는 목표가 있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개인정보를 재산권으로 보자는 견해도 있는데, 이는 재산권 보호 수준이 아니라 인권과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다. 인권은 공동체를 위해 희생시킬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사회가 개인 행동을 판단하고 평가하며 낙인찍는 경우를 자주 본다. 다수의 판단으로 개인 판단을 재단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습관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침해, 배척 그리고 왕따가 만연하게 되어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특히 미지의 상대로부터 차별 당하고 분리되는 상황이 더 심화될 것이다.


과연 한국 사회에 있어서 자유란 무엇일까? 우리는 정말 자유를 욕구하고 있고 자유로울까? 한국 사회를 지켜보면, 마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유를 침해하고 침해당해도 된다고 믿게 된 것 같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자유를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 사회를 굉장히 위험한 사회로 내몰게 될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2. 뉴노멀 시대의 민주공화정

“개인의 자유 지키는 틀 안에서
넓은 공화주의 철학으로 뭉쳐야”

‘공동체가 중요하니까 우리 공동체로 너의 것을 희생하고 들어오라’는 것은 폭력이다. 이런 방식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다. 개인의 소중한 자유들을 지켜주는 틀 안에서 넓은 공화주의의 철학으로 뭉쳐야 한다.
공화주의를 이야기하며 그 이름의 유사성으로 인해 공동체주의로 잘못 이해하거나 악용될 가능성 있다. 공동체주의가 우리의 자랑거리이긴 하지만, 우리의 공동체주의는 본능적으로 ‘우리’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방향으로 구현되는 경향이 있다. 그 이면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화주의라는 개념에 관해 항상 두려움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3. 바꿔야 할 것과 훈련해야 할 것

“시험 잘 보는 사람이 아니라
공공의 논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엘리트 대접받아야”

이러한 전제 하에서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는 ‘바꾸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과도하게 엘리트 중심적 시스템이다. 정부, 사법기관, 정당까지 시험주의와 학벌주의에 쌓여 있고, 평범한 시민 계층을 대변할 수 있을 사람이 너무 부족하다. 놀랍게도 그 다수의 사람들은 이 소수만이 승리할 수 있는 시스템에 반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 시스템 속에 모든 자원을 투자한다. 모두가 자기 자신 또는 자녀가 그 게임에 참여하고 있고,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방관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는 ‘배우고 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혼자서 열심히 일하지, 정기적이고 장기적으로 함께 일하고 단체를 만들어서 해결하는 부분에선 많이 부족하다.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학교에서 훈련을 시켜야 한다. 문제 해결 역시 개인의 성공으로만 귀결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생태계를 만들지 못한다면 공화주의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를 풀 줄 아는 공공의 논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을 엘리트로 인정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법은 교사와 공무원들의 정당 참여를 금지한다. 그런데 이게 맞나? 중립성 문제가 제기되지만 우리의 의식 수준은 이미 그 차원을 넘어섰다. 이런 것들이 많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사회가 과연 어떤 사회인지 광범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출처: KBS)

4. 헌정과 이성적 정치 시스템

“1987년 헌법은 성공한 헌법
최근의 개헌 논의는 전제부터 잘못”

우리 헌정 시스템은 이런 사회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전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횡행하는 시대에, 민주주의 자체를 신뢰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결국 이러한 시기 헌법의 과제는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보완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상에 맞는 방식으로 작동을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1987년 헌법은 성공한 헌법이다. 권력의 견제가 목표였고, 그전까지 작동하지 않았던 헌법이 이 이후에 작동하기 시작했다. 장식품 같은 것들이 드디어 살아서 움직이는 법 규범이 된 것이다. 30년의 세월이 흘러 수많은 오작동을 거치고, 결국 우리는 탄핵마저 거치게 되었다. 정치권에서는 개헌의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열화와 같이 민주화 운동과 촛불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우리의 헌법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불씨는 소멸해 버렸다.


개헌은 대체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나. 여당이 ‘촛불세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며 이야기한 개헌은 취지와 방향을 잘못 잡았다. 개헌 논의를 정치 권력과 연결시켜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야당도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소수자 인권’ ‘토지 공개념’ 등 몇 가지 이슈만을 제기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정치와 헌법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문제이다. 결국 결과로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헌법 개정 자체로 얻으려고 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정치가 이성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와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

5. 권력기관의 현주소

“권력기관은 엘리트 네트워크의 수단
아무 증거도 남지 않고 목적 달성”

헌법은 헌법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다. 헌법을 지키는 주체는 국가기관, 사법부, 그리고 언론, 최종적으로 시민들이다. 민주주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민주주의자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자란 민주주의를 신뢰하고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이다. 기본권 가치를 자신들의 신념 속에 내재화 한 시민이 민주주의자다. 이들이 공동체의 다수를 차지할 때 민주주의는 안전하다.


보통 우리가 우리가 말하는 권력기관은 권력자들에게도 겨눠지도록 설계되어 있는 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권력기관들이 사적인 칼을 사용하려고 한다. 권력기관들은 최고 권력 뿐 아니라 엘리트 집단을 보호하는 칼로서 활약하고 있다. 재벌, 언론, 학계, 정치계, 법조계, 의료계, 고위공무원 등 각종 엘리트들은 네트워크를 이뤄 협력하고 있다. 권력기관은 네트워크의 수단이 되고 이익을 보호하는 칼로 전환되었다. 이들 엘리트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각 분야를 망라하여 포함하고 있기에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은 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출처: 동아일보)

6. 한국 정치 속의 헌법

“헌법을 적대시하는 주장들이
정당과 언론의 전략적 도구로 전락”

광장의 촛불과 대통령 탄핵을 거친 후의 최근 2년여간 정치 역시 우리에게 좌절감을 안긴다. 대립하는 정치세력들 사이에 공유하는 가치를 발견할 수가 없다. 가치의 공백상태라 할 수 있다. 오로지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상태. 헌법을 적대하는 가치와 주장들이 주요 정당과 언론의 전략적 도구가 되었다. 그것은 정치철학이 아니다. 민주주의 정치의 타협과 토론도 아니다. 정당들은 헌법 가치마저 공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책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커다란 이념을 내세워 갈등한다. 초기 민주주의 내지 개발도상국 정당의 모습이다. 헌법적 가치의 퇴영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이 헌법 가치를 자신들의 한계라고 알고 있어야 한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여론이 헌법적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다. 결국 시민들의 헌법 인식 수준이 비판 능력의 수준을 결정하고 그것은 다시 정치권력의 수준을 결정한다.

7. 사법개혁은 왜 중요한가?

“우리 사법부는 권위적 자세 바꿔본 적 없어”
“헌법은 법원 판결에서 장식품 역할 할 뿐”

사법기관이 초래하는 재앙은 사법이 직접 국민을 억압하고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법이 다른 권력에 위축되거나 스스로 위탁하여 자신의 권한을 잃어버리는 경우에 발생한다. 사법부가 헌법 가치를 명확하게 하지 않을 때 여론은 원칙 없고 초점 없는 전투를 벌이게 된다. 그래서 논쟁을 하고 있어도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말싸움, 패싸움이 될 뿐이다. 사법부 개혁은 검찰 개혁보다 더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권력 독점과 탄핵 사태 뒤에는 사법부의 무기력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대법원은 뿌리 깊은 엘리트 의식 속에 이미 민주공화국 헌법의 수호자, 공정한 판단자로서의 신념과 균형을 잃은 상태다. 우리 사법부는 권위적인 자세를 바꾸어 본 적이 없다. 자신들이 법 해석에 대한 독점 권력을 보유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 시민들을 언제든지 복종시킬 수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대법원 판례는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있으며, 대법원 판례에 압도된 헌법은 법원의 판결에서 장식품 역할을 할 뿐이다. 헌법과 기본권을 외면하는 사법권력의 통제받지 않는 권력 독점은 이른바 내부자들의 권력 엘리트 네트워크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엔진 역할을 한다.


헌법은 대법원의 권력과 판례에 우선하는 민주공화국 최고의 규범이다. 그들의 엘리트 귀족주의 관점을 극복하고 헌법을 일관되게 선언하고 관철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이 시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절실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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