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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대화 / 이공현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대한민국은 民主 그리고 共和國’, 왜 공화국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가?

최원정(커뮤니케이션실장)

2020.06.09 2546

COVID-19로 재발견한 ‘공공의 가치’


COVID-19 사태는 우리에게 ‘공공(公共)’의 의미를 재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공화국’이라는 사실도 현실 속에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사고해왔다. 급속도의 경제 발전도 그 틀 위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공화주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숙성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COVID-19 사태가 그 계기를 만들어줄지 모른다.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은 ‘공화주의’에 일찍부터 주목해온 사람이다. 왜 헌법 1조를 ‘민주국’에 그치지 않고 ‘민주공화국’으로 했는가, 이 헌법정신이 현실 사회와 정치에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오랫동안 사고하고 발언해왔다.

그는 2005년부터 6년간 헌법재판관을 지낸 뒤 현재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여시재에 감사로도 참여하고 있다.

이 전 재판관을 만나 ‘공화’가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대화를 나눴다.

“‘공공의 것’ 중시가 공화주의
공화주의 기반 국가 체계가 공화국”

Q. 공화국이란 무엇인가

‘공공의 것’이라는 뜻이다. 라틴어 ‘레스 퍼블리카(res publica)’가 어원이다. 자유주의가 개인이 공동체 이전에 존재한다는 정신에 기반한 것이라면, 공화주의는 개인이 공동체와 함께 존재하므로 처음부터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유와 권리가 조화 또는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다. 공화국이란 다시 말해 ‘공공의 것’을 중시하는 공화주의를 존립의 기반으로 삼는 국가체제를 말한다.

“개인의 노력만으론
안전과 행복 보장 안돼”

Q. 지금 왜 공화주의인가.

우리 국민들은 1997~98년 IMF 구제금융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국가라는 공동체의 존속과 유지가 위태롭게 되면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살수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 COVID-19 사태에서도 나 혼자만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국가라는 공동체 전체가 움직여야 나 자신도 보호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됐다. 질병이나 보건뿐 아니라 국방, 테러나 안보, 금융이나 무역,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여행, 교육, 마약과 같은 범죄까지 그 어느 하나 개인의 노력만으로 안전과 행복이 보장될 수 없게 됐다. ‘없게 됐다’라기 보다는 원래 그런 것인데 그것을 새로이 깨닫게 됐다. 이것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이념과 계층, 지역, 세대 간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민간 영역뿐 아니라 국가의 공적 과제를 두고도 대립과 갈등이 일상화되고 있다. 그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최소한의 메커니즘, 즉 공론을 창출해내기 위해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차 합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 함께 협력하는 것이 나와 네가 같이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모두가 절실하게 느꼈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관점 아우르는
초협력적 리더십 필요”

Q. 이런 상황에서 공화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겠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 세력과 세력 사이에 단단한 벽이 느껴진다.

국민들이 깨닫게 된 공화주의의 가치를 어떻게 사회 각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정착시켜 나갈 것인지 중대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리는 현직 대통령을 탄핵해 파면했다. 지금은 COVID-19 사태를 겪는 과정이다. 우리 국민은 국가의 존속과 유지라는 문제 앞에 공동선과 시민적 덕성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쌓아가고 있다. 지금 꼭 필요한 것은 초협력적 리더십이다. 다양한 관점들과 전문성을 아우르고 통합해 조율하고 판단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첫걸음은 선거 참여
소수의견 존중해야 다양성 보장될 것”

Q. 초협력적 리더십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공동선’이나 ‘시민적 덕성’을 찾아가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우리 역사와 문화는 짧은 기간 동안 급격한 변화와 발전을 거쳤다.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공동선은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한다기 보다 국민 각자의 의견이 조화를 이루며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걸음은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참여일 것이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공론과 참여의 과정을 거칠 경우에만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 결정이 우리 사회의 공동선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수용하게 된다. 이번에는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다시 공론장에 올라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보장이 있으면 된다. 그 가장 중요한 제도가 선거다.

나는 무엇보다 소수의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한 사람이라도 내 의견을 들어주고 공감해줬다는 사실이 판결문에 나온다는 것은 상당한 위안을 준다. 이번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내 목소리가 사회에서 다수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다양성이 보장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헌법 46조 2항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라고 규정
이 규정이 사문화되다시피 하고 있다”

Q.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국회를 본다면

헌법이 국회의원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아는가? 46조 제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할 것’을 명하고 있다. 즉 국회의원은 단순한 지역구민의 대리인이 아니다. 국회의원에게 요구되는 것은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헌법이 국회의원들에게 ‘공화주의의 수호자’가 되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조항에 분명하게 나와 있는데 왜 사문화 되다시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국회의원뿐만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 존재하는 사람일수록 헌법이 자신에게 어떻게 명하고 있는지 한 번씩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 탄핵 때도
질서를 지켰다”

Q. 공화주의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따르는 룰, 법치주의의 기반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법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다.

공화주의는 역사적으로 권력자의 주관적 자의에 의한 지배가 아닌 공동체를 규율하는 법에 따라 권력이 행사돼야 한다는 법치주의로 연결된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전통과 일제 침략에서 벗어난 후 짧은 기간 민주국가의 정치체계를 향유해왔다. 오랜 역사를 두고 발전해 온 서구 사회에 비해 법치주의 전통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화를 위한 여러 번의 위기와 경제적 난관 앞에서 공동체의 존속과 유지를 우선하는 국민의 의식과 수준은 놀랍다고 본다. 예를 들면 IMF 당시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고, 대통령 탄핵 과정의 집회와 시위에서도 질서를 지켰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는 우리의 공동체 정신이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예외 없이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쓴 채 발열 체크하고 비닐장갑을 끼고 투표한 것을 보라.


<외국 법률가들과의 대화>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민주화와 경제발전 모두 이룬 국가”
-일본은?
“여야 정권교체도 못 이룬 국가”
-싱가포르는?
“전체주의에 가까워”

“우리 생각 보다
외국이 우리를 더 높이 평가”

Q. 시민의식이나 법치주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외국에서 우리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해외에서 열린 법률자문기구 모임에서 외국의 법률가들이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민주화와 경제발전, 두 가지를 모두 이룬 국가”라고 평가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일본은?”이라고 반문하자, 그들은 “일본은 여야 간 정권 교체도 이루지 못했다”고 답했다. 다시 “싱가포르는?”이라고 묻자, “싱가포르는 전체주의 국가에 가깝지 않은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한국은 여전히 위증이나 무고가 많은 편이다. 사회적 신뢰의 부분도 약하다. 그러나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는 놀라운 수준을 보여줬고, 이번 팬데믹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의 국민 수준은 이미 어느 정도는 수준에 올라와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국민들이 함께 뜻을 모을 수 있도록 어떻게 정치적인 리더십을 구현할 것인지의 문제만 남았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 것인가.

“우리 헌법은
왜 공화를
민주와 동렬에 뒀을까?”

Q. 공화주의의 가치에 대해 깊게 성찰을 한 계기가 있는가.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제헌 헌법 이래 한결같이 지켜온 국가 형태에 대한 근본정신이다. 우리나라의 영어 명칭은 ‘Republic of Korea’다. 그냥 ‘공화국’인 것이다. 2005년 헌법재판관으로 부임한 후 ‘민주공화국’의 ‘공화’는 헌법 교과서에 쓰인 것처럼 국민주권에 입각해 군주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소극적인 의미밖에 없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 그렇다면 공화를 왜 민주와 동렬에 뒀을까. 그렇게 소극적인 개념이라면 ‘민주국가’라고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에서 관련 문헌들을 찾아 읽었다.

헌법은 국가라는 공동체와 공동체 구성원의 삶에 관한 틀과 질서를 정하는 규범이다. 그리고 국가는 ‘공동체의 존속 유지’와 ‘구성원들의 행복 추구와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생겼다고 한다. 헌법 정신이 이것이라면, 공화주의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우리 헌법의 명령 아니겠는가. 이때부터 공화의 개념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고 이야기해오고 있다. 물론 공화의 의미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것에 의미를 두자는 데서 출발했다. 우리 사회가 필요한 것은 민주라는 가치와 함께 공화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4월 치러진 21대 총선 투표 당시 모습(출처: 뉴시스)

“국민의 의무 조항은
권리와 자유에 대한 대가 아니다”

Q. 민주와 공화는 우리 국가를 규율하는 핵심 프레임인데, 이 둘은 어떻게 구별될 수 있으며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구현돼야 할까.

민주주의를 강조하다 보면 자유민주주의에서 강조하듯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공화주의에서는 처음부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유와 권리가 조화되고 제한된다. 즉, 개인의 삶의 보장과 공동체의 존속과 안정이 같이 가는 것이다. 단순히 특정 계급이나 집단에 의한 통치의 반대 개념으로 국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헌법에 보면 국민의 의무 조항은 권리와 자유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권리와는 별도로 필수적으로 부과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으로 하여금 공동체에 대하여 반대급부 없이 특정한 작위, 또는 부작위의 행위를 하도록 강제하는 부담이다. 예를 들어 근로의 의무는 선언적 의미밖에 없는 조항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공화주의는
다수의 이름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는다”

Q. COVID-19를 겪으며 큰 정부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칫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지 않은가.

나치 독일을 보면 선거에 의해 들어선 나라가 파시즘으로 흘렀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한계다. 헌법재판소에 대해 왜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을 선출되지도 않은 9명의 재판관이 무효화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올 때가 있다. 그것은 헌법이 ‘앞으로 국가의 운영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틀을 만든 이상 이를 따르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해 다수 의사가 하나의 정책을 결정했을 때 그것이 다수결의 원칙을 따랐다고 하더라도 헌법에 위반되면 무효화할 수 있는 것이 헌법재판제도의 설정 이유다. 공화주의는 집단 또는 다수 의사라는 명분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을 막는다.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이것은 우리 국가가 나가야 할 방향
사회적 기본권 재조명해야”

Q. 공화주의를 제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가 개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우리 헌법에서 규정한 공화주의를 다시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헌법을 보면 사회복지나 경제조항에 공화주의적 요소가 많다. 그러나 ‘사회적 기본권’에 대해 국가 재정의 한계를 들어 최소 보장의 원칙만 이뤄지면 위헌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헌법에는 분명히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 보장 및 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나온다. 국가의 의무인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헌법에 나와 있다. 사회적 기본권을 다시 재조명해야 한다는 헌법학자들의 논문도 최근 나오고 있다.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 작은 수첩 크기의 헌법 법전을 꺼내 하나하나 짚어가며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헌법의 공화주의적 가치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적정한 소득 분배, 경제력 남용 방지
이를 실현하는 방안 진지하게 논의해야”

헌법재판관으로 일할 당시 주머니에 항상 이 작은 법전을 넣어서 갖고 다니며 수시로 읽었다. 헌법은 130개조다. 법학도들은 헌법 시험을 가장 좋아한다. 짧아서 외울 내용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어 볼수록 ‘이런 조항이 있었구나’ 놀라게 된다.

근로의 의무와 관련해 제32조 제2항에서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다. 제3항에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경제조항의 경우에도 헌법 제119조 제2항을 보면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씌어 있다. 이러한 많은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그동안 보여준 ‘최소한의 보장의 원칙’ 해석에 대해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헌법이 선언적 조항일 뿐 법률적 효력은 없다고 한다면 헌법이 왜 존재하는가. 국민들은 이 조항이 구현되기를 바라면서 헌법을 제정했을 것이다. 진지하게 이를 실현해 나가는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헌재도 헌법 해석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국회도 입법 과정에서 헌법의 조항들이 과연 선언적 의미만 있고 효력은 없는 것인지 같이 고민하기를 바란다. 물론 국가 재정상황처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여러 우선순위가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의사를 합치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강남 거리의 모습(출처: 뉴시스)

“지금 필요한 것은
젊은 세대와 함께 가는
공감의 리더십”

Q. 젊은 세대는 이념적 분열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기성세대에 대한 적대적 박탈감이 크다. 또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등 사회에 대한 체념도 크다. 이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이 가능할까.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은.

역사적으로 기성세대는 항상 젊은이들을 불안하게 봤다. 내가 젊은 시절에도 어른들은 우리 세대를 보며 걱정을 하곤 했다. 중요한 것은 선배나 부모 세대가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우리 사회가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설계를 하는 것이다.

키루스 대왕(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부흥을 이끈 왕)에 대한 책에서 지도자의 자질로 로고스(logos),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의 세 가지 덕목을 소개한 글이 있다. 로고스는 논리에 기반한 것으로 지미 카터가 대표적인 예다. 에토스는 열정에 기반한 것으로 클린턴이 예가 될 수 있다. 파토스는 공감에 기반한 것으로 오바마가 한 예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은 파토스적인 리더십, 공감의 리더십이다.

“적극적 정치 참여 중요”

Q. 공화주의의 실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국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다. 그리스-로마에서는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서만이 공화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치 참여, 즉 참정권은 권리지 의무가 아니다. 무엇이 공동선이며, 공동체가 가야 하는 바람직한 길은 무엇인지 국민들이 고민해야 한다. 결국 교육이 중요한데, 이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정에서 다른 가정의 구성원과 이웃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적극적 투표 참여가
진영 논리 막는다”

Q. 예전보다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늘지 않았나.

국민들이 공동체 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영논리에 따라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현재 선거일은 법정공휴일이다. 농담처럼 하는 얘기가 있다. 투표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될 경우에만 다음 선거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것이다. 그만큼 투표 참여가 중요하다.

“헌법 근간 유지하되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 반영하는
‘수정헌법’ 식으로 가야”

Q. 개헌 논의가 조심스럽지만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

1948년 헌법 제정 이래 아홉 차례에 걸쳐 헌법이 개정됐다. 그중 네 차례는 전문 개정까지 이뤄졌다. 다시 헌법 개정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헌법은 필요에 따라 쉽게 고칠 수 있다는 헌법 불신이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 헌법개정 논의가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 헌법만 개정되면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이 일시에 해소될 것이라는 식의 주장도 나온다.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공동체의 근본 규범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한다는 점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각 분야에서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세세한 조항들에 대한 개정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을 보면 우리 국민들이 헌법 규정 하나하나가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법에 의한 통치(rule of law)’ 못지않게 ‘통치할 법(law of rule)’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헌법 개정 논의는 우리 사회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고 의견 수렴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현행 헌법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헌법 제정권력자인 국민이 개선할 필요를 느끼는 조문을 한 번에 하나씩 추려서 수정헌법 형식으로 개정해 나가는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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