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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e핸드북 / 질병과 의료에 대한 쉬운 지식 ②] 전염병 창궐, 19세기 리버풀 노동자 기대수명 15세... 프랑스서 현대의학 시작, 독일서 ‘사회의학’ 탄생

여시재 미래의료 연구팀, 대표 저자 홍윤철 (서울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서울대 공공의료사업단장)

2020.02.18

19세기 영국 런던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올리브 트위스트』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재)여시재가 2019년 한해 진행했던 연구 결과물 발신을 시작합니다. ‘미래의료’ ‘중국의 변화’ ‘도시순환과 황해오염’ ‘디지털이 바꾸는 세상’ 등 다양한 분야입니다. 그 첫 번째로 ‘미래의료’ 7편을 순차적으로 내보냅니다.

여시재는 그동안 서울대 의대 홍윤철(예방의학과) 교수 연구실과 함께 1년 동안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인류 문명의 진화 속에서 질병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앞으로 어떤 질병이 인류의 고통이 될 것인지, 디지털 기술은 의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지, 건강하게 오래 일할 수 있는 미래 도시의 모델은 무엇인지, 1년 동안 많은 질문이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여시재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질병과 의료에 대한 쉬운 지식’이라는 제목으로 별도의 연구서를 제작했습니다. 의학지식이 없어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썼습니다. 인간의 몸과 자연, 인간의 몸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디지털 의료 기술의 혁신과 미래 의료에 관해 간편하면서도 일관된 시각을 갖기 원하신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전체 7편 중 1~4편은 역사 속의 질병과 의료, 5~7편은 우리가 본격적으로 맞이하고 있는 디지털 사회와 의료로 편성했습니다.

여시재는 앞으로 다른 과제에 대한 연구결과물도 순차적으로 내보낼 예정입니다. 모든 연구결과물은 ‘e-핸드북’ 형태로 발신됩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한 연재물을 모두 묶으면 특정 분야에 대한 종합적 지식을 담은 한 권의 책이 될 것입니다.

‘질병과 의료에 대한 쉬운 지식’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문명의 탄생과 질병의 시작(링크)
2. 도시, 질병의 극복과 새로운 문제

3. 새로운 질병의 탄생
4. 새로운 패러다임과 미래의 질병
5. 의료기술의 혁명적 진화
6. 미래의 새로운 의료 기준
7. 새로운 도시와 새로운 의료

<대표 저자 홍윤철>
1960년생.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가정의학, 예방의학,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 및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인간과 사회의 상호관계, 특히 환경적인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이 생명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국제저널에 300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하였으며 현재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정회원, 그리고 세계보건기구의 정책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질병의 탄생』과 『질병의 종식』이 있다.

<2편 요약문>
※ 2편 전문은 하단 첨부파일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에드윈 채드윅(1800~1890)과 프리디리히 엥겔스(1820~1895)

노동자들 죽음으로 몰아간 도시

유럽에서는 15세기 말부터 양모 가격이 곡물 가격에 비해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농지가 대규모로 목초지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근대적 토지 소유 제도가 확립되었고, 그 이면에서는 일자리를 잃은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들이 산업혁명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도시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사회적 기반이나 법적,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하수와 오물 처리, 화장실 등의 기반 시설이 없던 도시는 산업혁명 초기 전염병의 온상지가 되었다. 이런 거주지는 공장이 모여 있는 대도시마다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했다.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로 가득 찬 곳이었다.

당시 평균 기대수명은 20세에도 못 미쳤다. 에드윈 채드윅이 1842년에 낸 ‘영국 노동자의 위생상태’에 따르면 맨체스터시티의 전문직 종사자 및 상류층의 기대수명이 38세였던데 비해 노동 계급은 17세에 불과했다. 리버풀에서는 상류층이 35세, 노동 계급이 15세였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들의 생활환경’에서 도시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온갖 곳에 쓰레기와 재가 쌓여 있고 더러운 액체가 고여 웅덩이를 만들었다.” “지하실부터 다락방까지 한 방에 4~6개의 침대로 가득 차 있고 침대마다 사람으로 가득 찼다.” 도시는 산업혁명 초기 도시 노동자들의 삶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유럽 제국주의 무역로 타고
전염병 이동
아메리카 인디언 멸종

이어 유럽의 제국주의는 무역로를 타고 전염병을 전 세계로 퍼뜨렸다. 전염병은 처음에는 바닷길을 따라 퍼졌지만 19세기 들어서는 육로를 통해서도 옮겨졌다. 그리고 무역로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도시들이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전염병의 온상이 되었다.

대표적인 전염병이 천연두, 홍역, 유행성이하선염, 수두, 성홍열 등이었다. 특히 천연두는 결정적이었다. 카리브해 인디언이 천연두로 멸종했다. 잉카와 아즈텍을 휩쓸었다. 북미 지역은 그나마 점진적이긴 했지만 파괴력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90%가 유럽인과 아프리카 이송 노예들이 가져온 감염질환으로 사망했다.

1817년 콜레라 세계적 대유행
아시아에서만 1500만 명 사망

19세기 콜레라는 파도처럼 전 세계로 번졌다. 1817년 인도, 중국, 한국, 일본을 거친 다음 동남아 일부와 마다가스카르, 동아프리카 해안까지 휩쓸었다. 인도와 아시아 대륙에서 1500만 명, 러시아에서 200만 명이 죽었다. 이런 콜레라의 대유행이 이후 5차례 더 있었다. 발진티푸스도 창궐했다. 런던처럼 습하고 더러운 지역에서 엄청난 맹위를 떨쳤다. 알코올과 암모니아 외에는 치료제도 없었다. 스코틀랜드 주민 1/6이 발진티푸스로 죽었다.

하지만 이런 전염병은 중산층과 상류층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주거환경이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현대적 임상의학 발전 시작
독일에서 세균학으로 더 진전

현대 의학은 18세기 말 이후 이런 환경에서 탄생했다. 경험주의가 시대사조였다. 수술과 실험이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18세기 말 이후 파리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현대 의학은 의료 혁명이라 부를만했다. 관찰하고(시진), 만지고(촉진), 두드리고(타진), 소리를 듣는(청진) 네 가지 진찰 기술이 표준화됐다. 라에네크의 청진기도 등장했다. 파리에서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왕진 중심 진료에서 병원 중심 새로운 의료로 진화했다. 이 혁명은 카톨릭 교회에 설치되어 있던 병원들의 국유화로 이어졌다.

파리에서 발전한 임상의학은 19세기에 독일에서 세포병리학과 세균학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임상과 기초의학이 결합한 생의학적 모형의 탄생이었다. 이를 통해 인류는 무엇이 전염병을 부르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병의 원인을 알게 되었을 뿐 치료법을 발견하기까지는 더 시간이 필요했다. 의학적 허무주의도 만연했다.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도시 위생환경에 대한 관심
비로소 생겨

한편 노동자들이 밀집 거주하는 도시의 위생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1801년 95만여 명이던 런던 인구는 1841년 194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사망률이 급속도로 올라갔다. 1842년 채드윅은 ‘영국 노동자의 위생상태’에서 물과 위생시설 부족이 대규모 질병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1855년 존 스노우는 ‘콜레라의 전파에 관하여’에서 콜레라가 오염된 물을 통해 전염되는 병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도시를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의 시발이었다. 1848년 영국 의회는 ‘공중보건법’을 통과시켰다. 급수 및 하수 처리시설을 개선하는 내용이었다.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모습 (출처: 핀터레스트)

1909년엔 주택 및 도시계획 등에 관한 법이 통과했다. 도시계획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법안이었다. 결핵 폐렴 등과 같은 질병이 주거지 개선을 통해 해결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도 사회가 주민 건강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철학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의학’이 시작되었다.

19세기 중엽 미국에서도 도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됐다. 불량 주택은 병든 노동자를 의미하고 병든 노동자는 높은 구호비용 및 세금 지출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확산됐다.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를 계기로 도시미화운동이 시작됐다. 나무가 우거진 도시 공간, 건강을 중심으로 도시 환경 개선해야 한다는 흐름도 생겨났다.

1860~1900년 2차 산업혁명 물결이 일었다. 기계화 자동화였다. 신기술이 중산층과 서민의 일상생활에 이용되고 철도와 전신망이 깔렸다. 대도시에 가스 상수도 하수도 시스템이 깔리기 시작했다. 도시 하부구조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특히 전력 공급이 계층과 계급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산업혁명의 혜택을 제공했다. 자동차, 냉장고, 전화 등 모든 영역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도시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5%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재는 50%를 넘어섰고, 인구 1000만이 넘는 메가시티는 2018년 기준 33개에 이르렀다. 2030년에는 43개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지금은 네트워크의 시대다. 미래사회 도시화 추세는 거대도시 중심에서 중소도시 중심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인간 유전자는
수렵 채집 시기 적응된 것
만성질환 늘어나는 원인

우리 유전자는 수렵 채집 시기의 생활환경에 적응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생활환경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다. 상당히 많은 유전자가 과거에는 정상이거나 생존에 도움이 되었지만 이제는 질병을 유발한다. 이런 유전자 부적응이 만성질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다. 만성질환은 원인 인자가 복합적이다. 산업혁명 이후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여러 화학물질을 자연환경에 방출했다. 다양한 장기 손상이 일어나고 있다. 천식이나 만성기관지염과 같은 호흡기 질환뿐 아니라 심근경색, 부정맥과 같은 심장질환, 우울증, 알츠하이머, 정상적인 신호전달 시스템 방해에서 비롯되는 질병이 급격히 늘고 있고 더 늘어날 것이다. 과거의 전략으로는 풀기 어려워졌다. (→ 3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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