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전망 2020 ③ / 정치·사회] 이광재 여시재 원장 “2년 후 대선 때까지 통합의 씨앗 뿌려야”

이윤서

2020.01.08 426

[전망 2020 ③ / 정치·사회] 이광재 여시재 원장

“2년 후 대선 때까지 통합의 씨앗 뿌려야”

- “586, 디지털 세력과 함께 진화해야…이념 매몰되면 도태”

“장관 출신들이 로펌 역량 강화하는데 쓰여서야”

정리·이윤서 SD

올해는 총선(4월)의 해다. 진영 간, 세대 간 갈등과 분열이 극심하다. 올해는 미 대선(11월)의 해이기도 하다. 세계의 정치·군사적 불안정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 불씨가 연초 중동에서 타오르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언제 동아시아와 한반도로 옮겨올지 살얼음판이다.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여시재 이광재 원장을 만나 시대적 상황과 과제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그는 이번 총선부터 2022년 3월 대선까지 2년여 동안 세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첫째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국제 역량, 둘째 디지털 전환과 100세 시대 도래 등 경제 기반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대응, 셋째 통합과 협치 기반 구축이라고 했다. 여기서 역량을 보여야 그 세력을 국민들이 선택해줄 것이고, 아니라면 도태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불행하게도 이번에도 진영 선거”

“디지털 전환, 세대교체 이슈 놓치면 안 돼”

Q. 4월 15일 총선이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A. 불행한 일이지만 이번에도 진영이 중심에 서는 선거가 될 것 같다. 퇴행적이다. 거기에 세대교체 이슈, 디지털 전환이 파묻히지 않기를 바란다. 또 모두가 느끼다시피 국제관계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자각이 커지고 있다. 세대, 디지털, 국제관계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먼저 말하고 싶다.

Q. 현실로 돌아오면 역시 ‘분열과 통합’의 문제가 크지 않은가.

A. 물론 그렇다. 어떻게 하면 분열을 넘어서 통합으로 갈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선거는 그런 점에서 매우 좋은 기회다. 우리는 지금 서초동과 광화문, 두 가지의 촛불을 보고 있다. 나는 역설적으로 말해 통합의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에너지가 그만큼 크게 잠재되어 있다고 느낀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렇게 대규모로 나올 리가 없다. 그들 마음속에 있는 애국심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그것이 되어야만 ‘타다 금지법’ 문제라든가 ‘데이터 3법’, ‘연금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 디지털 혁신 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근본적 대전환은 반드시 이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타협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게 되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들이 광범위하게 생길 것이다.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 때 농민 지원에 100조 원 이상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농촌과 농민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어느 정도는 불가한 측면이 있었다고 보지만 기본적으로 돈쓰는 방식이 잘못된 거다. 한미 FTA 당시 영화인들이 모두 들고 일어섰다. 그때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를 받아들이도록 하고 그 대신에 낸 지원금이 오늘날 한국 영화가 자리 잡게 된 토대가 되었다. 디지털 경제로의 대전환이 일어나려면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대타협을 시도해야 한국 경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국민이 볼 때 ‘이쪽이 더 희망이 있겠다’라고 보는 쪽이 이기는 게 아닐까 싶다.

“분열에서 통합으로 단번에 갈 수 없어”

Q. 그러나 미래 경쟁을 기대하기에는 우리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

A. 과거를 묻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것이 근(近) 과거라면 더욱더 그렇다. 촛불과 탄핵, 적폐 청산 문제가 이번 총선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정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총선 한번 치른다고 모든 것이 정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분열에서 통합으로 어떻게 단번에 가겠는가. 나는 2년여 뒤 대선 때 진짜 ‘미래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이번 총선에서 각 정당들이 씨앗을 뿌려야 한다고 본다. 한마디로 여야 모두 스타트라인을 전면적으로 재정비해야 하는 것이다.

Q. 어떤 스타트라인, 어떤 정비를 말하는가.

A. 현 정부부터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미래에 맞춰야 한다. 야당도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기존에 해 오던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스타트라인을 설정해 이 나라와 사회가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주는 쪽이 총선 승자가 될 것이다. 현재 민심은 집권당에 유리하지 않다. 그렇다고 야당이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 선거 지나치게 국내 이슈 중심”

“한국전쟁 70주년 엄중하게 돌아봐야”

Q.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앞으로 다음 대선까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A. 우리 선거는 지나치게 국내 이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정학적 영향이 망국을 부르고 전쟁으로 이어진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렇다. 우리는 안보나 외교 이슈를 정부나 청와대 일로만 생각하는데 잘못된 일이다. 올해가 한국전쟁 70주년이다. 지금 국제 정세는 G1, G2가 다투면서 G0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아베 총리는 평화 헌법 개정을 계속 공언하고 있다. 북핵 문제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중국이 올해 디지털 위안화를 공개하게 되면 기축 통화 문제까지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에너지 초과 공급 국가가 됐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 질서 자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11월 미 대선도 주목해야 한다.

“세계를 읽을 수 있는 힘 중요”

“세계적 싱크탱크

만들든지 유치하든지 해야”

A. 결국 ‘세계를 읽을 수 있는 지적 역량과 지혜, 이걸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짜고, 사람을 어떻게 보강할 것인가’가 이번 총선으로부터 대선에 이르는 2년여의 과정에서 나타나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쑨원(손문)은 일본에서 공부를 한 뒤 영국과 미국에서 외교 활동을 했다. 김구 선생은 청나라에 가 있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에 가 있었다. 하지만 국가 총량으로 볼 때 국제관계를 읽는 힘이 부족하면 나라를 잃었다. 정부와 정치권, 재계, 시민사회 등이 힘을 모아 세계적 싱크탱크를 한국에 유치하든지 세계적인 경제 연구소, 디지털 연구소, 외교 안보 싱크탱크 등을 만들든지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아시아를 연구해야 한다.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총선에서 등장했으면 한다.

“디지털 전환과 고령화 커플링

이보다 더 큰 과제 있나

Q.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A. 나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경제도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이 크게 봐서 하나는 디지털이고, 다른 하나는 아시아의 거대한 부상이라고 생각한다. 미국도 이제 제조업으로 남아 있는 곳이 GM 하나일 것이다. 나머지는 페이스북, 구글 등 디지털 기업들이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거기에 수명 100세 시대가 왔다. 디지털 전환과 고령화라는 상극의 커플링이 오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있나. 이런 흐름은 사회의 모든 복지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것을 늦췄다가는 미래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 분야에 능력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키우고 뽑아낼 것인가, 또 아시아의 부상이라는 흐름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앞으로 대선에 이르기까지 2년여 동안 이런 사람들과 집단을 만들어가야 하고 그것을 중심에 놓는 경쟁이 되어야 한다.

“6070과 586은

각기 다른 고열 압축 거쳐

대립적 세대 에너지로 응집

Q. 세대교체 목소리가 크다. 586(386)은 이념 과잉 세대라는 평가가 이전부터 있었다. 그들이 지금은 사회의 중심이다. 586이 과연 디지털 전환을 포함한 시대적 과제를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

A.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석회석과 대리석은 성분이 똑같다. 오랜 시간에 걸쳐 고열 압축 과정을 거치면 대리석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석회석으로 남는다. 3김으로 대표되는 70~80대는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에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을 겪었다. 일종의 고열 압축 과정을 어마어마한 압박 속에 거쳤다. 세대 에너지가 얼마나 큰 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또 하나가 1980년 전후 학교를 다니고 사회에 진출한 386들이다. 광주를 어머니로 둔 세대다. 80년 광주는 군이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사건이다. 이로부터 온 충격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기에 전두환 정권의 정치적 폭압이 맞물렸기 때문에 굉장한 에너지를 가졌던 것이다. 투신한 사람들만 수십 명이었다. 그 반발 에너지를 기반으로 세력화되었고 국민적 지지도 있었다.

“2030은 새로운 種의 탄생

하지만 세력화 에너지는 약해

A. 지금 2030 세대를 새로운 종(種)의 탄생에 비유하는 것은 다소 과장이라 할 수도 있지만 시대의 성격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압축 고열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이들이 어떤 에너지를 기반으로 조직화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것이 다소 점진적, 산발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2030은 연령대로 보면 386의 자식 세대인데 근본은 완전히 다르다. 386이 과거 국민들의 심리적 지지와 학생운동을 기반으로 했다면 2030세대는 플랫폼이라는 강력한 자기 기반을 가지고 있다. 플랫폼은 그 성격상 중앙집중적이라기 보다는 자율적, 분산적이다. 하지만 시장의 지지라는 강력한 배경이 있다. 예를 들어 ‘트레바리’(독서 모임 기반 멤버십 서비스) 같은 경우는 독서 모임인데 투자자가 모인다. ‘열정에 기름붓기’나 ‘퍼블리(지식콘텐츠 구독 서비스)’, ‘텀블벅’(예술 문화 중심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등 이런 플랫폼들을 보면 자기가 공부하는 데 돈을 내고 펀딩이 이뤄진다. 또 사회적 솔루션을 만드는 데 돈을 내고 돈이 모이고 하는 특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 386들이 토론방 아고라에 모였다면 2030은 플랫폼이라는 형태로 조만간 세력화될 가능성이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386의 후예들, 386을 대신할 맹아가 플랫폼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도 출판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그곳에서 취재 거리를 찾고 있지 않은가. 지식과 관점이 모이는 곳이 됐다. 과거 386세대에게도 여러 오프라인 공부모임이 있었지만 이제는 비교할 수도 없이 다양한 플랫폼들이 생기고 있다. ‘열정에 기름붓기’라는 곳은 상당히 구체적인 정책 솔루션을 내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2030세대의 돋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상당히 세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전 세대와 비교가 안될 정도다. 그런 잠재력이 플랫폼이라는 공간으로 모이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주역이다. ‘이미 현재에 와 있는 미래’들이 모이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들이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탄탄하게 현재가 될 수 있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DJ YS가 386 대거 등용

386은 2030 기용하지 않아

Q. 6070이나 586이 2030들의 시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A. 김대중 정부는 1990년대에 386세대를 대거 등용했다. 그런데 386세대는 새로운 디지털 세대를 기용하지 않았다. 큰 잘못이라 생각한다. 386세대가 오늘날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윗세대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어느덧 중추 세력이 된 386 집단이 디지털 세대를 당겨주면 큰 물결을 형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리 역할을 386세대가 해주는 것이 맞다. 2030은 아직 한창 발아하는 중이다. 그들이 역사의 전면에 빠른 속도로 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386의 역할이라고 본다. 2030과 586 사이의 40대는 말하자면 ‘끼인 세대’인데 이들도 박탈감이 상당할 것이다. 40대는 균형을 잡는 세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40대도 대학에 갓 들어가고 직장에 들어갈 무렵 IMF를 겪었다. 사회 중견으로 막 성장하기 시작할 무렵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이들이 이제 이 사회의 중추가 되어가고 있다. 이들이 앞으로 10여년 간 사회의 중심을 잡고 미래를 준비해나가야 한다.

“586은 미래 혁신세력의 등장을 위해

토대를 마련해줘야

Q. 586과 6070의 대립은 어떻게 해야 하나.

A. 서초동, 광화문 두 곳 모두 가봤다. 이 대립은 단기적으론 탄핵에 뿌리를 두고 있고, 장기적으론 오랜 기간 지속된 이념의 갈등에 뿌리가 있다. 이 장단기 요인들이 586 대 6070세대의 대립으로 폭발한 것이라 본다. 결국 586이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 2030과 40대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 산업화, 민주화라는 게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지금 세력화되어 있지만 사실 앞으로 미래 세대는 디지털 세력이라는 점이다. 디지털 세력이 주인공이 되도록 앞선 세대들이 변화를 꾀해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데이터3법은 민주당 내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586이 1980~90년대에 혁신적 세력이었듯이 산업화 세력도 1960~70년대엔 혁신적이었다. 두 세력은 갈등 속에 세대 이전이 이뤄졌다. 586이 이제는 미래 혁신세력에게 자리를 터줘야 한다. 이것은 물러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586의 남은 역할은

과감한 규제 혁신 통해

디지털 전환 돕는 일

A. 나는 586이 과감하게 시장 규제를 푸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2030과 40대의 디지털 세력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지금 바로 정비해야 할 제도와 정책들이 수도 없이 많다. 지금 이 시간에도 디지털 포럼들이 국내외에서 열리는데 그런 자리들을 자주 가보면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디지털 세력의 요구를 이 사회가 어떻게 순조롭게 수용할 수 있느냐에 이 사회의 미래가 달렸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지금 청와대와 정부 고위 관료들의 평균연령이 55세 정도 되는데 확 낮출 필요가 있다. 젊은 사람들이 기회가 없을 뿐이지 역량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정치 주역들은 30~40대에 정치의 전면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자신들은 역량이 있고 지금의 젊은이들은 역량이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국제감각이나 미래 역량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야도 과감하게 젊은이들을 기용해야 한다. DJ, YS는 40대에 대통령 꿈을 꿨고 실제 후보 경선까지 했다. 한국전쟁 이후 70년이 흐르면서 사회 유동성이 현저히 약해지고 경직성이 커졌다.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 문을 열기 힘들다. 그렇다면 586이든 6070이든 그들을 키우는 일을 해야 한다.

“컨설팅社, 이미 20년 전에

노무현에 ‘디지털 경제리더’ 제안”

Q. 이 원장 자신이 만 38살이던 2003년에 청와대 상황실장을 했다. 또 20대 초반에 노무현의 참모로 정치 현장에 뛰어들었다. 어떻게 보면 수혜자 아닌가.

A. 그렇다. 내가 83학번이다. 대학(연세대) 시절 학교에 4·19를 겪은 현역 정치인이 강의를 왔었다. 그때 ‘언제 적 4·19냐’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 20년 밖에 안됐더라. 그런데 586의 근거라 할 수 있는 1980년으로부터 벌써 40년이 흘렀다. 시효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부터도 과연 시대정신에 발맞춰 가고 있는가 많은 생각을 한다. 지금 젊은 세대는 우리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세계에 대한 안목이 있다. 586이 이 흐름에 맞추면 더 진화할 수 있을 것이고 과거의 이념에 머물러 있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디지털 세력과 함께 진화하는 길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40년 불화 관계다. 그러면서도 이 사회의 대주주다. 결국은 중간에 있는 우리 또래의 사람들이 허리 역할, 젊은 세대를 끌어올려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을 하던 시절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컨설팅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받은 내용의 핵심이 ‘디지털 경제 리더’로 가라는 것이었다. 그게 20년 전이다. 나는 노 대통령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전환을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후 시간을 많이 놓쳤다. 그러면서 586의 진화도 일어나지 못했다. 586이 역사 속의 진보 세력으로 남고 싶다면 젊은 세대를 얼마나 과감하게 기용하느냐, 얼마나 진정성 있게 디딤돌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정책소비자운동 일어나야”

Q. 2030의 정치적 욕구를 받아줄 제도적 방안은 없을까. 총선 때 일회적으로 활용되는 비례대표 같은 것을 제외하고.

A. 에너지를 새롭게 모으려면 지적 민주주의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에게 입법 발의권을 주는 플랫폼을 만들면 어떨까. 법과 정책을 발의해 일정 숫자 이상이 동의를 하면 국회는 입법 청원으로 받아들이고, 괜찮다고 평가되면 국회가 입법 발의를 해주도록 하는 것이다. 일종의 강제력을 갖는 플랫폼 같은 것이다. 이런 제도만 갖춰줘도 장안의 젊은 고수들이 뜰 것이다. 규제 혁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 일산에서 엄마들이 교복 공동구매운동을 일으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법과 제도는 얼마든지 있다. 젊은 사람들이 정책 소비자 운동을 전개해보길 권유한다.

또 한 가지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인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 문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30년, 50년 후를 내다보고 사회를 설계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지속가능성의 문제다. 연세대 김성수 교수(법학전문대학원)가 여시재 연구 프로젝트 결과 보고에서 한 얘기인데, 영국, 핀란드, 이스라엘, 헝가리 같은 나라는 이미 이 문제를 다룰 상임위나 전문가위를 국회에 구성했다. 결국 환경과 복지 체계 같은 것을 먼 미래의 시각에서 다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우리는 호흡이 너무 짧다. 정권 교체에 영향 받지 않고 준비해나갈 사람과 제도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김 교수는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를 대표할 사람에게 각 정당이 비례대표 1번을 주자고 제안했다. 그 사람은 2030일 수도 있고 6070일 수도 있다. 나는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 참고 인사이트 : [여시재 인사이트/지속가능발전] 비례대표 1번을 ‘미래세대’에 주자(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성수 교수)

A. 개인적으로는 정당에 상관없이 많은 젊은 인재들을 추천하고 있다. 이 친구를 한 번 써보라고. 그들에게 기회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세대 간 대타협은 선택 아니라 의무”

Q. 우리의 미래에 디지털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의 생존력 문제가 있다. 여러모로 어려워지는 것 같다.

A. 나는 그래도 디지털과 100세 시대,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이 몰고 올 파고는 말로 할 수 없는 정도다. 거기에 수명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나라 노인들이 자식 공부시켜 결혼시키고 나면 쓸 돈이 없다. 586도 마찬가지다. 통계를 보면 우리가 유독 심하다. 노후 준비 없이 집 한 채 가지고 30년을 살아야 하니 막막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집 한 채 없는 분들도 다수 있다. 디지털 경제는 고용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결국 대타협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것을 준비하고 있는가. 총선이나 대선이 이걸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가. 나는 회의적이다. 노장청의 조화라는 말은 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길로 가지 않으면 망하기 때문이다.

“미-중 경쟁구조 속 중요한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 중요한 나라가 되어야

Q. 눈을 바깥으로 돌려보자. 동북아 상황은 어떻게 보나. 구조적으로 훨씬 복잡해지는 상황 아닌가?

A. 100년 전에 비하면 우리가 분명 커지긴 했다. 일본이 약화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이 중요한 나라, 중국 입장에서도 한국이 중요한 나라가 된 것도 틀림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중의 세계 전략 속에서 중요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중요한 나라’가 되는 길을 가야 한다는 거다. 구색 맞추기용의 중요한 나라라면 그것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정말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결국 지혜의 힘이다. 외교 역량 등 지혜의 힘을 만드는 데 있어 필요한 게 생각의 힘이다. 그게 필요하기 때문에 세계적 싱크탱크 유치, 세계적 수준의 우리 싱크탱크 육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외교 국방 통일 하나로 묶어

‘統전략’ 짜야

A. 두 번째는 우리 시스템 문제다. 청와대에서 일할 때부터 계속 생각해온 것인데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가 따로 노는 문제가 있다. 무기 체계를 모르고 외교 전략을 쓴다. 사실 제일 먼저 정치가 있고 그 다음에 외교와 전쟁이 있다. 제대로 된 정치를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통일부라는 용어를 쓰는 부서가 계속 필요할까? 외교, 통일, 국방을 하나로 묶는 부총리를 하나 만들어 정치 영역까지 감안해가면서 외교와 통일 문제까지 수행하면 어떨까? 국정원에 경제연구소가 있고 외교부에 외교안보연구소가 있는데, 따로 굴리지 말고 외교 역량을 통합해야 하지 않을까? 외교부 해외 공관에 나가보면 저녁 한 끼 사는 것도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돈이 없다. 그렇게 하지 말고 이중 멤버십을 만들어서 외교 역량을 대대적으로 강화할 수 없을까? 국정원을 개혁한다면서 국내 파트를 없애는 것은 과거 정리라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미래 준비라는 관점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국정원이 갖고 있는 1조 원의 리소스가 외교 역량의 강화로 나타나야 한다. 육사, 공사, 해사에 대한민국 최고가 들어가지 않고선 최고의 군대가 나올 수 없다. 외교, 국방, 통일, 국정원을 전체적으로 재정비해 국가의 총 외교력 진흥망을 건설하는 큰 작업을 해야 한다. 10년 전부터 이런 생각을 해왔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미국 국회 아래에만 중국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두 군데 있는데 우린 그런 게 전혀 없다. 물론 내 말이 다 맞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교수 출신

바로 장관 시키는 나라는 한국뿐

Q. 문재인 정부 들어 더 심해지는 것이 외교-안보를 둘러싼 진영 간 대립이다. 특히 대북, 대미 노선과 관련해 ‘전통-주류적 시각 vs 새로운 시각’ 간 갭과 갈등이 지나치게 커진 것 같다. 어느 사회나 노선 투쟁이라는 게 있지만 이런 것을 어떻게 모아낼 수 있을까.

A. 대한민국은 이미 작은 나라가 아니다. 대통령 직속으로 외교 관련 자문회의를 하나 만들어서 실질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외교와 경제 두 개의 자문회의를 실질적으로 내실화시키는 게 필요하다. 사람을 얼마나 폭넓게 활용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사공일 전 장관은 아직도 일을 한다, 이홍구 전 부총리도 아직도 일을 하고 네트워크도 있다. 반기문 총장도 국내에서만 입지가 부족하지 해외에 나가면 입지가 정말 넓다. 장관 지낸 이들을 이렇게 방치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면 캠프에 참여한 교수 출신들이 일제히 청와대와 정부에 들어가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고 이전 정권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중국 사회과학원서 감동받았다”

“장관 출신들이 국가역량 강화가 아니라

로펌 역량 강화에 쓰여서야

Q. 경제-외교 자문회의 내실화를 얘기했는데 현실을 보면 캠프 자문교수들에게 자리 하나 주는 정도 이상으로 평가하기 힘들다.

A. 키신저도 하버드대 교수 출신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이고 미국이나 일본을 보면 교수 출신들 잘 해봐야 국장급으로 기용한다. 우리는 바로 장관 시킨다. 이건 아닌 것 같다. 실천이 가능하지 않으면 이론이 아니다. 정책에 안정성과 깊이를 더하려면 회의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중국 사회과학원에 갔다가 감동받은 일이 있었다. 연세 드신 분들이 도시락을 하나씩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대부분 70대 넘은 노인들인데 명단을 보니 중국의 쟁쟁한 인물들이더라. 소정의 회의비만 받고 회의를 하면서 지혜를 풀어놓고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는 걸 봤다. 경험이라는 것은 국가 자산이다. 이것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장관 출신들의 경륜이라는 것이 로펌 가서 로비하는 데 소비되고 있지 않나. 경륜이 국가 역량 강화에 쓰여야 하는데 로펌 역량 강화에 쓰이고 있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특정 정당에 관여하면 지원을 끊더라도 정부의 일을 한 사람은 어떤 정부에서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정부를 돕는 데 대해서까지 진영 논리에 빠져 ‘부역’이니 뭐니 해서는 안 된다.

조금 다른 얘기이긴 한데 우리나라에는 제너럴리스트가 없다는 점도 숙고해보아야 한다. 제너럴리스트의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중고교부터 문-이과 분리해서 공부하는, 실은 시험공부 하는 나라는 몇 나라 없다. 그 함정이 크다. 사람들 만나 보면 미안한 얘기지만 ‘저 사람은 정말 공돌이구나’ ‘저 사람은 기술에 대해서는 아는 게 아예 없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우리 사회다. 이래서는 안 된다. 기술에 대한 국가적 인식이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통합적, 종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통일에 대한 무리한 생각하지 말아야”

“비스마르크 ‘작은 통일론’서 배워야”

Q. 미중 갈등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언제 갈등의 엔트로피가 극단으로 치달을지 모른다. 그 속에서 북한이란 존재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A. 한반도 시대를 시야에 넣는다면 통일은 해야 한다. 하지만 통일에 대한 무리한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중국과 대만 정도의 경제적 교류와 협력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주변국의 견제, 우리 내부의 갈등도 줄일 수 있다. 비스마르크의 ‘작은 독일 통일론’에서 배워야 한다. 아데나워도 처음엔 동서독 통일을 반대한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결국 미국을 중시하고 소련을 중시해가면서 동서독 간 신뢰를 두텁게 해 통일 독일의 기초를 닦았다. 서독 내부 갈등도 약화시켰다. 비스마르크와 아데나워의 지혜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요즈마 펀드 회장,

한국의 30% 기독교 인구와

제조업 역량 높이 평가

A. 1월 한 달간 미국, 이스라엘, 싱가포르, 네덜란드를 간다. 이스라엘은 여러 평가가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메이드 인 이스라엘’이 없이도 기술 하나를 가지고 경제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작년에 요즈마 펀드 이갈 에를리히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났다. 그는 한국 벤처의 혁신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싸이월드’, ‘다이얼패드’, ‘김기사’ 앱처럼 선구적인 것들이 많은데, 가장 큰 단점이 글로벌 역량 부족이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재미있는 제안을 했는데 ‘한국에서 벤처 하는 이들을 인턴으로 이스라엘에 보내 훈련시키면 글로벌 역량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메이드 인 이스라엘’이 없는 반면 한국은 제조업 역량이 강하니 이스라엘과 한국 간 협력 모델을 만들자’라는 제안이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이 그가 한국을 높게 보는 이유를 물어보니 두 가지를 얘기하더라. 중국과 일본에 없는 기독교 세력이 30%가 넘는다는 것을 꼽았다. 또 전 세계 맥도날드를 조사해보니 음식 나오는 시간이 한국이 제일 빠르더라는 것이다. 동일한 메뉴인데 한국 만큼 빠른 곳이 없다는 것이다. 창의성도 높고. 그런 대화를 하면서 ‘메이드 인 코리아’에 어떻게 기술력을 입힐 것인가 길을 찾아야 한다고 느꼈다. 한국이 네덜란드나 싱가포르 처럼 기업들이 활동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세계적 싱크탱크가 있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의 R&D 아시아 센터가 지금은 대부분 홍콩과 싱가포르에 있는데 지금 미묘하게 상황이 변하고 있다. 이것들을 유치해야 한다. 아시아 지역에 본부를 따로 두고 있는 국제기구, 글로벌 기업들의 R&D센터나 아시아 본부가 대략 3600개 정도 된다. 이것을 한국에 유치하는 플랜을 짜야 한다. 3600개 명단을 놓고 전부 리서치 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면 무엇이 우리에게 부족한지 나올 것이다. 세금, 의료, 교육, 가사지원 등의 문제가 있을 터인데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것이다. 네덜란드, 싱가포르, 홍콩이 그것을 했다. 그들이 가진 제도의 힘을 우리가 배우고 만들어야 한다. 일본은 지진, 동남아는 날씨 때문에 한국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데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한국에서 거의 찍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는가. 바로 비싼 보험료 때문이다. 세계적인 스타들이 여기 올 때 북한 리스크 때문에 보험사에 내야 할 보험료가 굉장히 높아지는 것이다. 이는 결국 평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야 글로벌 기업들이 올 것이다.

“‘사상으로부터의 해방’

덩샤오핑에게서 배워야

Q. 결국 이념갈등, 세대갈등을 넘어 디지털 대전환과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 같다.

A. 한국 사회는 비스마르크, 리콴유, 덩샤오핑에게서 배워야 한다. 덩샤오핑은 ‘사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했다. 여기에 진보 보수 구분 없다. 한 사회의 총량으로서의 지혜의 힘과 철학적 깊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 시대에 풍미했던 것에만 매달려 있어선 안된다. 온갖 어려움을 뚫고 국민의 열망을 모으고 국가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 586이 안 되면 2030들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Q. 이 원장 개인적으론 작년 말 복권으로 9년 만에 공민권이 회복됐다. 어떻게 하려 하나.

A. 갑작스러워서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다. 여시재는 아직 많이 미흡하지만 우리나라에 거의 없는 민간 싱크탱크 개척의 길을 가고 있다. 당분간 이 일에 몰두할 생각이다.


< 저작권자 © Yeosija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콘텐츠 연재물:

댓글 0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 최신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