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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인사이트 / 미래산업] 새로운 腸이 열리고 있다 - ‘건강은 대립적 요소들의 균형 상태’, ‘미생물의 우주’에서 동양과 서양이 만나다

이동우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

2019.11.01

(재)여시재는 바이오-그린 헬스를 산업과 생태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보고 연구 활동을 지속해왔다. 지난 3~5월에는 관련 토론회도 열었다. 당시 토론회에 참여했던 연세대 이동우 교수가 인체 장(腸) 내 미생물의 세계에 대한 통찰이 담긴 글을 보내왔다. ‘건강’과 ‘질병’에 대한 동-서양의 융합의 가능성에 대한 최근 연구성과들이 담겼다.

휴먼마이크로바이옴 (출처: www.microbeminded.com)

질병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암은 생체 내 세포가 지닌 유전물질인 DNA의 서열에 돌연변이가 생겨 원상 복구 기능을 상실하게 될 때 일어나는 재앙이다. 불과 20년 전 인간의 게놈(Genome) 지도 해독이 완료되었을 때, 인류의 난치병인 암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또한, 첨단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치료 및 약물 개발이 가능하게 되어 각종 난치병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믿음도 매우 컸다. 그러나 해결하기 어려운 여러 질병에 우리는 여전히 시달리고 있으며, 질병 정복이 생각 보다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만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물론, 과거에 비해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약이 발달해 기대 수명이 더욱 늘어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항암제, 백신 및 항생제에 대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피해 가는 암세포, 신종 바이러스나 항생제 내성 병원균의 수비 능력은 우리를 더욱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심지어 조롱하는 듯한 이들의 우월한 전략이 우리의 도전을 끊임없이 좌절시키는 듯하다. 질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해결하려던 서양의학의 접근 방식에 다소 의문점이 생기기도 하는 대목이다.

세계 학계도
이분법적 사고체계 문제점 인정

오늘날 세계 학계에서도 기존의 치료와 건강관리에 내재된 이분법적 사고체계의 한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다소 간접적인 전략을 통해 질병에 다가가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물론 질병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는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순 의약품이나 식품이 아닌 건강 기능 증진과 질병 치료 효과를 융합시킨 예방의학 차원의 물질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질병의 진단-치료-예방에 사용되는 파마슈티컬(Pharmaceuticals), 생리적인 이점이나 만성질환에 대한 보호 기능을 제공하는 뉴트라슈티컬(Nutraceuticals)과 같은 것들이다. 과거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질서에 순응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전략을 취했던 동양적 접근 방식에 부합한다.

남성에게 잃어버린 삶의 행복을 가져다준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는 원래 협심증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얻은 부작용의 산물이었다. 해열, 진통, 소염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아스피린도 원래는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제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2007년에는 아스피린이 항응고 효과에 의해 자간전증(임신 20주 이후 고혈압과 단백뇨가 발생하는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모든 암에 효과가 있을 거라 기대했던 신약이 특정 암에만 효능을 보이거나, 특정 암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글리벡은 예상하지 못한 다른 암에 치료 효능을 나타내는가 하면, 심지어 항생제로 개발된 약이 항암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아직 우리가 복잡한 인체의 질병과 건강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장내 미생물 비율이
비만도 결정한다는 연구결과

건강한 사람과 허약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으로 구분하는가?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키, 몸무게, 시력은 물론, 피를 뽑아 각종 장기의 성능을 수치화한 데이터를 통해 건강을 판단하는 척도로 이용하고 있다. 물론 이것들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요사이 부쩍 주목받는 것이 인체 장내 미생물이다. 비만인 사람과 날씬한 사람의 체질은 특정 장내 미생물(후벽균 및 의간균)의 존재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는 연구결과가 보고 되었다. 심지어 동물 실험을 통해 이 두 가지 균을 교환해보니 체질이 바뀐다는 결과까지 확인됐다 한다. 새 모이만큼 먹어도 살이 찌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체내에서 장내 미생물이 식이섬유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부산물인 프로피온산이 포만감 호르몬 렙틴을 촉진시켜 먹지 않아도 배부른 효과를 나타내는 마술사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이뤄졌던 가장 혁신적이고 중요한 과학적 발견 중 하나는 생체 내부의 다양한 환경에서 공생하면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미생물의 균총, 즉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의 재발견일 것이다. 사실 현미경으로 봐야 겨우 보이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지구의 생물권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성요소로서 지난 수십억 년 간 다른 생태계와 공생하면서 진화해온 생명체이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출처: NeuroscienceNews.com)

치매 자폐 우울증에도
미생물이 작용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정신활동을 관장하는 뇌의 기능도 장내 미생물과 연관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은 평범한 행복이다. 재미난 사실은 우리 장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의해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듣기에 따라서는 어이없는 연구결과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벨기에 루뱅 가톨릭대 제론 레이스 교수팀은 1054명이 참여한 대규모 임상실험을 통해 특정 장내 미생물이 사람의 우울증 발병에 영향 내지 관련이 있음을 발표했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파민 관련 물질을 생산하는 미생물은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신경 활동을 억제하는 가바(GABA)라는 물질을 생산하는 미생물이 많았다는 것이다. 사지 나오키 일본국립장수질병센터 교수팀은 74세 이상 노인 128명을 대상으로 대변을 분석한 결과, 치매 환자의 장내 미생물에는 식물의 독성물질을 분해시키는 유익균의 수가 적다고 보고하였다. 폴 패터슨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팀은 2013년 특정 장내 미생물의 존재 유무가 유아의 자폐증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작년 5월에는 프란시스코 킨타나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이 장내미생물이 영양분을 먹고 배출한 물질이 퇴행성 뇌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이처럼 인간의 신경 활동조차 우리 몸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장내 미생물의 구성을 바꾸는 것이 현대인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인 퇴행성 뇌질환을 낫게 하는 치료 기법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필자와 같은 생명과학자도 우리가 겪고 있는 질병의 주된 원인이 장내 미생물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웃지 못할 상황에 놓여있다.

건강한 사람의 똥을
환자 장에 이식시켜 치료

요사이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와 “선생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라는 농담처럼 듣던 옛 속담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 속 끓는 사람의 뱃속에는 나쁜 균이 많이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정상적인 미생물을 지닌 사람의 똥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에 불을 붙인, 너무나도 유명한 궤양성 대장염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Clostridioides difficile)’이라는 미생물이 있다. 이 병원균은 현존하는 각종 항생제를 거뜬히 버텨내며, 인체 내 장 조직을 파괴하여,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악명 높은 미생물이다. 위막성 장염이라는 병으로, 환자로 하여금 자살 충동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현존하는 약물로는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던 이 병을 워싱턴대 제프리 고든 박사는 타인의 정상 분변을 환자의 장에 이식시켜 치료하였다. 이 의술을 펼칠 때 주변에서는 반신반의하였으나 놀랍게도 환자의 병증은 사라졌으며 예후도 이전에 볼 수 없는 수준으로 좋아졌다. 더욱이 이 결과는 학계에 발표되어 미국에서 이 질병의 치료기술로 인정받았다. 이 희귀한 치료기술로 말미암아 인체의 건강 유지를 위해 배출되지 않으면 안 되는 물질이 다른 인체에는 너무나도 귀한 의약품으로 둔갑하게 된다. 사실 전혀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인류가 사용하던 발효기술도 미생물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부산물을 우리의 소화 및 건강 기능에 이용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즘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프로바이오틱스가 바로 이러한 발효산물을 생산하는 주된 미생물이다. 흔히 생체에서 재활용되지 못하는 물질을 버려져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듯이, 우리 몸에 유용하다고 알려진 발효산물은 미생물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쓰레기인 것이다.

미국 보스턴의
분변은행 ‘오픈바이옴’

세계적인 천재들이 모여드는 미국의 보스턴에는 건강한 사람의 분변을 의약품으로 사용하고 있는 인체 분변은행인 ‘오픈바이옴’이라는 기관이 있다. 지금은 국내에서도 분변 이식 수술(FMT)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사실 1700년 전 동진 시대의 게홍(Ge Hong)이라는 의학자가 ‘노란 국물(yellow soup)’이라는 것을 식중독이나 급성설사의 치료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노란국은 분변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이처럼 똥도 잘 골라서 쓰면 약이 된다는 뜻이다. 실제 전 세계적으로 시디프 장염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기술로 분변 이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국내 보건복지부도 2016년 대변 이식을 신의료기술로 승인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항생제 과사용으로 인한 위막성 대장염 치료를 위해 분변 이식을 시술하고 있다. 요컨대, 장내 유익균과 유해균을 경쟁관계로 보고, 유익균을 많이 넣어 유해균을 밀어내어 원래의 건강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복원하는 방식이다. 이는 여러 항생제에 저항성을 지닌 균주, 즉 다제내성균(일명, 슈퍼박테리아) 감염자의 재활 치료에 매우 효과가 좋다. 다만, 건강한 사람의 분변이 필요하나 건강의 정의가 애매하여, 기존의 의약품과 달리 표준화가 어렵다. 현재는 병원의 엄격한 건강검진 테스트를 통해 당뇨나 비만 같은 병력이 없고, 대변이나 핏속에 병원성 미생물이나 약물 저항성 미생물이 없는 공여자를 선정한 후, 이들로부터 건강한 분변을 얻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고홍 교수팀에 의하면 대변 기증을 원하는 사람들 중 90%가 건강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한다. 그만큼 건강한 분변공여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서구화된 식생활에 따른
암 패턴의 변화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망원인은 암이 압도적이며 심장질환, 폐렴 및 뇌혈관 질환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몸이 아프게 되면 유전자를 탓하기도 하지만 보통 살아온 내력에서 원인을 찾는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자고, 일하고, 무얼 먹고, 어떻게 행동하며 살았는지가 삶의 원인이자 최종 성적표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서구화에 노출된 1980년대 이후로 우리나라의 최대 질병은 그 순위가 많이 바뀌었다. 가공육, 당류, 정제 곡물 등의 섭취가 많은 서구화된 식생활은 비만, 당뇨와 연관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대장암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여러 연구를 통해 보고되고 있다. 최근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장암이 국내에서 발생하는 암 중 두 번째(2015년 기준 국내에서 2만 6790건이 발생)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1999년만 해도 위암의 절반도 되지 않았으나 2014년엔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2018년 8월 대한대장항문학회지에 실린 한국인 대장암 특성을 조사한 내용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한국인의 대장암 중 결장암이 차지하는 비율은 늘고 직장암은 줄어드는 추세다. 많은 의학자들은 유전적 요인 외에 서구화된 식생활, 남녀의 식습관 차이 등을 대장암 발병 부위 차이의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서구화된 식이와 관련된 유전자 특성은 원위부 결장암과 연관이 높은 것으로 관찰된다.

노인과 젊은이
피부 박테리아 비율 달라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며, 맞춤형 의약에 이어 맞춤형 음식이라는 개념의 상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요사이 장내 미생물은 건강 키워드에 절대 빠지면 안 된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장내 미생물은 우리의 건강을 좌지우지하는 건강의 핵심이다. 물론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병원균도 있다. 이들이 침입하면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받아 선택적으로 죽이는 작업을 한다. 소위 장의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몸속 미생물의 생태계 및 유전정보를 통칭하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을 이용한 치료방법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젊게 보이고자 하는 욕망인 피부 건강도 이와 연결된다. 속이 좋아야 피부가 좋다는 옛말처럼,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이 잘 유지되면 피부 장벽이 탄탄해지며 보호, 진정 기능도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올해 6월 25일 프랑스 명품 화장품인 ‘랑콤’은 지난 15년간의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스킨케어 심포지엄에서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개발한 항노화 화장품(피부 속 유익한 미생물들을 더 건강하게 해주는 유산균 프로바이오틱스와 유산균의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을 선보인 바 있다. 일본 와세다 대학의 하토리 교수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늙은 사람은 젊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피부 박테리아의 종류는 더 다양해지지만, 유익한 박테리아 비율이 현저히 낮다. 또한 홍콩대학의 패트릭 리 교수에 따르면, 식단 및 생활습관은 물론 자외선, 미세먼지 등이 피부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을 파괴할 수 있는 주된 원인이다. 결국 우리의 건강한 피부와 아름다움도 미생물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의미다. 인간의 모든 질병과 건강은 물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영역까지 미생물로 설명하려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포크라테스(Peter Paul Rubens, 1638)

히포크라테스
“자연이 병을 치료하는 의사”

고대 헬라스 의학은 알크마이온의 건강과 질병에 관한 견해에 기초한다. 건강이란 대립적인 요소들의 ‘평형상태’나 ‘균형 잡힌 혼합’이라는 것이다. 또한, 고대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구적 사유의 기초 역할을 하는 <히포크라테스 전집>에서 신체를 이루는 요소들의 혼합이라는 개념에 요소들의 ‘분량’ 즉 비율 또는 균형이라는 개념을 덧붙이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신체를 이루는 요소들이 힘이나 크기 면에서 서로 적절한 비율로 혼합된 채 완벽하게 섞여 있으면 인간은 최적의 건강을 누린다고 했다. 또한 “자연이 병을 치료하는 의사이자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든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자연적인 힘을 이용하는 것이 혹시 미생물을 포함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신체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으로도 좋은 상태라야 진정으로 건강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서양 의학보다 400년 앞서
예방의학 개념 도입한 동의보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이 부분을 여러 차례 다루고 있다. 특히 동의보감의 예방의학 철학은 현대 의학이 그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보다 400년이나 앞서 의학에 예방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지금도 여러 측면에서 서양의학 보다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기존의 질병 중심으로 편재되어 진단부터 치료까지 백과사전식-나열식으로 망라된 중국 의약서를, 당시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하나의 시스템 수준에서 밖에서 안으로 보며, 내부의 모든 장기를 하나로 연결된 것으로 보아 상호 보완에 주목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취한 점이 오늘날 현대 생명과학에서 말하는 시스템 수준의 이해와 상당 부분 부합된다.

1610년 허준(許浚, 1546∼1615)이 저술한 의학서적 『동의보감』
동의보감 ‘신형장부도’

건강과 질병에 대한 철학은
고대 동서양이 같았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예전 허준의 명언을 떠올린다. “사람의 몸은 한 나라와 같다”. 우리 장은 미생물이 모여 살고 있는 한 나라와 같으므로 이들을 균형 있게 유지하지 못하면 그 나라가 망하게 되는 이치와 같다. 우리에게 미생물이 사는 장이라는 나라를 잘 다스려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지혜를 깨닫게 해준다. 삶에서 사람과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아서 문제가 되듯이, 우리 장내의 미생물 간 소통에 의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결국 몸이 무너지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사람 수명의 차이가 천명(天命)과 섭생(攝生)에서 온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전자는 좋은 유전인자를 받아야 오래 산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후자는 출생 후 자기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인간의 생명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요사이 규칙적인 운동과 적절한 식단 및 장내 미생물 균총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각종 프리바이오틱스 및 프로바이오틱스가 유행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쉴 새 없이 몰리는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간편하게 배불리 먹는 식단과 술을 너무 자주 하는 문화에 노출되어 있다. 그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주목할 것은 과거 동서양이 바라본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견해는 표현방식의 차이일 뿐, 그 원리가 같다는 점이다.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고민하게 된다. 몸과 건강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당장 실천하고 목표를 찾아가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이 아닌가 싶다.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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