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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인사이트 / 지속가능발전] 비례대표 1번을 ‘미래세대’에 주자 -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하여

김성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10.17

출처: 뉴스 1

올해 신생아 30만 명 하회
100년간 태어나도 3000만 명 불과

오늘도 한국 정치판은 여야 공방으로 뜨겁다. 공직후보자의 적격성을 둘러싸고 죽기 살기식 폭로와 설전을 이어간다. 뿐인가. 정부의 재정·경제정책, 일본을 비롯한 4강 외교정책, 북한에 대한 안보 불안에 대한 논쟁으로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하루살이식 정치가 비록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미래를 걱정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한가하고 사치스럽게만 들린다. 그러는 사이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과 초저출산이 우리의 미래를 엄습하고 있다.

8월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6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6월 신생아 수는 2만 4015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306명 줄었다. 무려 8.7%다. 월별 추세로 보자면 2015년 12월부터 43개월째 감소다. 올해 신생아 수는 30만 명을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1년에 30만 명씩 100년 태어나도 3000만 명이다. 8.7%, 30만 명은 단지 숫자가 아니라 엄청난 충격파를 우리 사회에 던질 것이다. 산업, 경제, 연금과 의료, 교육 등 전방위적인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의 미래에 짙게 드리우고 있지만 미래세대를 짓누를 연금 등에 대한 개혁은 표류하면서 폭탄 돌리기만 계속되고 있다.

핀란드 의회 ‘미래위원회’
미래, 기술, 과학 분야 싱크탱크 역할

출처: 영국 의회 홈페이지

핀란드, 영국, 이스라엘 같은 나라들은 일상의 정치에 발목 잡힌 미래를 걱정하면서 태어날 미래세대에 대한 보호를 공동체의 존망이 달린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지 오래됐다.

이스라엘 국회(Knesset)은 미래세대와 관련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위하여 15대 국회(1999~2003년)와 16대 국회(2003~2006년)에 각각 한시적으로 의회에 ‘미래세대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회는 원내에서 미래세대 보호를 위한 광범위한 정보 수집 및 참여 권한을 행사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세대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는 법안 또는 하위 규범을 저지 내지 집행을 지연하고 위원회가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헝가리 의회에서 활동하는 ‘미래세대 옴부즈만’은 미래세대의 권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이나 국가의 계획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일반 국민들은 국가기관이 미래세대의 보호를 포함한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는 경우 옴부즈만이 이를 헌법재판소에 제소하도록 청원할 수 있다.

핀란드 의회(Eduskunta) 미래위원회는 상임위원회이며, 1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미래위원회는 핀란드의 미래, 과학, 기술 분야의 일종의 싱크탱크로서 내각의 수상을 카운터파트로 하여 1993년 출범하였다. 미래위원회의 주요한 활동 목표는 핀란드의 미래와 관련한 주요 정책과 예상되는 영향에 대하여 정부와 소통하는 것이다.

영국 상원은 2018년 3월 구조적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법을 요구하는 과학기술, 연금 재정, 사회기반시설, 세대 간 삶의 정의와 형평성, 환경문제와 같은 과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회가 보다 체계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미래위원회를 제안하였다.

세대 전쟁으로 가지 않기 위해

이들 나라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이들 나라에 비하여 미래세대 보호 문제가 국가 존립에 미칠 영향이 훨씬 심각하고 위태로운 지경이지만 걱정만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1990년대에 이르러 기성세대와 미래세대의 이른바 세대 간 형평성을 지속가능한 발전의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였다. 1992년 UN의 ‘환경과 개발에 대한 리우선언’이 대표적이다. 또한 UNESCO는 1997년 제27차 파리총회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에 대한 기존 세대의 책임에 관한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세대 간 정의와 형평성은 미래세대와 기성세대가 더불어 지속가능한 공존의 틀을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서 환경, 자원, 재원 등을 기성세대가 독점하거나 과용하지 말고 미래세대에게도 정당한 지분을 보장하자는 취지이다.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세대 간 정의와 형평성은 기성세대와 미래세대 상호 간에 정당한 지분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서 양자 간에는 환경, 자원 등의 사용에 대한 이해관계가 대립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세대 간 전쟁이라는 용어도 등장하고 있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40년 후 30~44세 핵심 생산인구
500만 명으로 떨어져
조세와 연금 부담 끔찍할 것

한국 사회와 같이 초저출산, 초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세대 간의 문제를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기성세대와 미래세대는 일종의 운명공동체로서 미래세대가 없이는 기성세대의 존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 존립 없이 미래세대의 존립이 가능한가? 이것도 마찬가지로 그렇지 않다.

2019년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7~2067년 50년간 장래 인구추계에 따르면 2030년에 0~14세 유소년 인구는 약 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30년이 지나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활동하는 2060년경을 기준으로 보면 총인구는 약 4천3백만 명으로서 이중 65세의 고령층이 약 1900만 명이다. 물론 2060년을 기준으로 15~64세의 이른바 생산 가능 연령의 인구가 2천만 정도가 되고 과감한 이민정책 등을 통하여 생산 가능한 인구를 어느 정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주축으로서 가장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30세에서 44세의 인구가 500만 정도 밖에 안된다면 이들 미래세대가 지게 될 조세와 연금 등 재정적 부담은 말 그대로 끔찍한 수준일 것이다. 미래세대가 이러한 부담을 이겨내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생산성과 교육경쟁력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도화되어야 할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기성세대는 미래세대의 보호자 또는 수호자임을 자처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수호자인 미래세대 보호를 시급한 현안으로 인식하고 이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미래세대에 기성세대는
존재 자체가 부담일 수 있다

얼마 전에 지인들과 대화하면서 만약에 우주의 먼지로 떠돌고 있는 우리에게 지구상에서 태어나서 살고 싶은 나라가 어디인지 묻는다면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 가벼운 대화를 한 일이 있다. 물론 우리에게 태어날 후보국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준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이라는 나라를 선택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다. 싱겁기 그지없는 愚談에 불과하다. 이 땅에 지금 태어나고 있는 미래세대는 기성세대의 환경, 자원, 재원에 대한 독점과 과소비는 물론 그들이 상당한 규모의 인구 집단으로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커다란 부담을 안고 살아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세대 간 정의, 형평성 실현과 미래세대 보호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영국, 핀란드, 이스라엘 같은 나라는 이를 위한 법과 제도를 구체화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초고령 사회, 초저출산이 구조화된 우리의 경우는 더 시급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래세대 보호를 위한 추진체계가 마련되는 경우 법률로서 위원회 또는 옴부즈만의 권한과 업무를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의 권한과 업무는 환경, 통일, 재정, 교육, 신산업 등 개별 영역에서 계획의 수립, 미래세대의 보호와 관련된 정책결정에 대한 동의 및 협의권, 의견진술권, 이의제기권 등을 포함하여 정부 부처의 미래세대 보호 업무에 대한 모니터링 및 감시활동 등을 수행하도록 한다. 그러나 위원회나 옴부즈만은 이와 같은 행정적인 업무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세대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국가나 사인 등의 행위에 대한 소송절차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나의 권리를 수호하는 일반적인 소송이 아니라 위원회나 옴부즈만이 미래세대를 대신 지키기 위한 소송 제도의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유럽, 미래세대 대리인
국회 진출시키자는 논의 활발

미래세대 보호를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이나 국회법 개정도 필요하다. 현행 헌법상의 의회 민주주의 원리는 미래세대 보호에 대하여 구조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권자로서 미래세대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를 국회 내에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유럽에서는 기성세대의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가 오직 기성세대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지양하고 의회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미래세대 친화적으로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래세대의 대리인을 의회 내에 진출시키자는 것인데 이른바 대리 민주주의 또는 대리 대표제(proxy democracy, proxy representation)에 대한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미래세대의 권익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은 기성세대인 지역구민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지역구보다는 역시 비례대표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공직선거법은 의무적으로 강 정당별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명부에 1순위로 미래세대의 권익을 대표하는 비례대표 기재를 의무화하도록 개정하여야 한다. 미래세대 비례대표는 선거법에 따라 법적 근거를 갖게 되며 동시에 이들이 국회에서 미래의 문제만을 전담하게 국회법에도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들은 현재 각 정당이 약자 안배 차원에서 뽑는 청년 비례대표나 여성 상위순번 배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동시에 국회에 미래세대위원회를 상임위로 설치할 수 있도록 필요한 국회법 개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각 정당 비례대표 1번들이 주도하고 50~60대 기성세대 의원들이 참여하며 여러 전문가들이 뒤를 받치는 ‘미래세대위’가 범 당파적으로 세대의 문제를 다룰 수도 있지 않을까. 이들이 다룰 대상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될 것이다.

미래세대도 주권자가 되어야

2016년 촛불이 무성한 광화문을 뜨겁게 달구었던 헌법 제1조 제2항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헌법이 천명한 국민주권주의 원칙이다. 미래세대는 대한민국의 주권자가 될 수 있을까? 나라의 주인이 왕이라는 군주주권론으로부터 시민혁명을 통하여 쟁취한 국민주권론도 초기에는 주권행사의 본질인 선거권을 오직 성인 남성에게만 부여하였다. 여성이 주권자라는 것은 당시에 매우 어색했을 것이다.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스위스 조차 여성이 주권자로서 전국 단위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 놀랍게도 1971년이다. 아직은 생경하겠지만 미래세대를 주권자로 인정하는 헌법해석론이 일반화 되거나 헌법개정이 이루어진다면 그들을 여성이나 소수자처럼 친숙한 주권자로 맞이할 날도 올 것이다.

최근 어느 언론에서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이른바 386세대가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으로 고착화 하는 현상을 비판하면서 386세대는 월남전을 전후하여 유럽에서 1960년대 말 기성질서에 반기를 들고 반전운동을 펼친 68세대와 마찬가지로 자기들끼리의 싸움과 부패로 몰락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 놓은 적이 있다. 여기에서 한국 386세대의 공과를 평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386세대, 오늘날 586세대가 정치, 경제, 사회적 네트워크를 독점하는 것을 지양하고 세대 간 정의와 형평성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자는 제안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

임금피크제 같은
일회적 정책의 亂産으로는
문제 해결할 수 없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특정 세대가 자원, 환경, 재원을 독점하는 것을 막고 세대 간 정의를 실현하는 정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기성세대의 임금에 대한 피크제 도입, 연금개혁,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한 목적세 도입 등이다. 그런데 미래세대 문제는 이런 일회적인 정책을 그때그때마다 亂産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을 수 없다. 보다 일관되고 체계적이며 제도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미래세대 보호를 위한 정책과 집행을 위한 추진체계를 법제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영국, 핀란드, 헝가리, 이스라엘 같은 의원내각제 나라들이 미래세대위원회 또는 옴부즈만을 의회 내에 상임위원회 또는 특별위원회 형태로 설치하여 운영하는 것은 위원회 활동에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기능을 부여하겠다는 의미다. 미래세대위원회 또는 옴부즈만을 단지 장식이거나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또는 미래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나 법안에 대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속력 있는 결과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기성세대와 미래세대 공존 위해선
기존 사고와 제도 혁신적 변화 필요

대통령 중심제인 우리나라는 미래세대위원회나 옴부즈만을 정부에 설치하는 경우 유념해야 할 사항이며,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이들의 지위와 권한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이 땅의 아동청소년과 태어날 후세를 포함한 미래세대와 기성세대의 공존을 위해서 기존의 사고와 제도에 대한 혁신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제 제발 색깔론과 매국노라는 과거의 고착된 진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미래와 미래세대에 대한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우리 모두 공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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