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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는 지금/미래의료 토론회 ②] 삼성의료원장 출신 이종철 창원보건소장 - “환자들이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털어 넣는 것이 지역의료 현실” “보건소라도 원격의료 가능해지도록 해야”

임선우

2019.09.09

이종철 창원보건소장(71)은 삼성의료원이라는 최고급 민간 의료원의 수장, 창원보건소장이라는 1차 공공 의료기관의 수장이라는, 상이하면서도 독특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2000년부터 11년간 삼성서울병원장과 삼성의료원장을 지내며 임상과 병원 경영을 모두 경험한 뒤 2013년 미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보건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보건의료 정책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한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뒤인 2018년 2월 고향인 창원보건소장에 응모해 2년 임기로 지역 보건의료 상황을 챙기고 있다. 작년 2월에는 동료와 후학 76명을 모아 ‘4차 산업혁명과 병원의 미래’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이 소장이 지난 4일 (재)여시재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미래의료로 실현하는 1차 의료 역량 강화’ 토론회에서 앞으로 디지털 기반 공공의료를 획기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며 다만 거기에 들어갈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진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다음 내용은 토론회 발언 및 별도 전화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것이다)

“1차 의료를 모두 민간에 맡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 소장은 존스홉킨스에서 겪은 일부터 얘기했다. 존스홉킨스가 오바마 대통령 때 ‘오바마 케어’ 정책 수립을 위해 환자 입원비를 줄이는 방안을 찾는 용역을 했는데, 방문 전문 간호사가 중증 환자들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체크만 잘 해도 재입원 또는 재 재입원 비율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여기에 따라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시범사업 결과(최대 50%)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 돈으로 차상위 계층을 도와줄 수 있는 오바마 케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 자기 의료비는 자기가 내야 한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강한 데다, 의료비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데 실패하면서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하는 상태라고 했다. 이 소장은 이 경험을 하면서 ‘메디컬 홈(주치의)’ 제도를 우리 의료 상황에 잘 하면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다.

그러나 이 소장이 겪은 우리 1차 의료현장, 말하자면 동네 의료 시스템은 매우 취약했다. 그는 “창원에서 1년간 방문 간호사들과 함께 진료를 나갔는데 4~5가지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많게는 열 군데 이상 병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면서 “저처럼 70대가 되면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깜박할 때가 있는데 이 환자들이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한 보따리를 먹고 있는 것이 우리 지역 의료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 현실을 보면서 지역마다 주치의 제도가 꼭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굳혔다”고 했다.

이 소장은 “우리나라는 모든 의료, 특히 1차 의료의 대부분을 민간의 일반 개원의에게 맡기고 있다”면서 “확인해봤는데 진료를 모두 민간에 맡기는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 외에 없다”고 했다. 이어 “의사들이 전부 자기 돈으로 병원을 내고 환자를 보고 있는데 관리는 (보험 제도를 기반으로) 정부가 하고 있으니 문제가 도무지 풀리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 소장은 “비급여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기초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그리고 개원의가 없는 지역이라도 공공의료가 맡아야 한다”며 보건소의 1차 의료 역량을 키워야 환자들의 건강권도 높이고 의료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눈에 보이는 제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보건소-병원 관계’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의사들이 보건소의 진료 자체를 원치 않아”

그는 “방문 간호사 같은 제도는 매우 좋은 것인데 그렇게 한다고 해도 환자의 기초 정보를 병·의원에 전달할 수 없다”고 했다. 보건소가 혈액이나 대소변, 심전도, 가슴 사진 같은 기초 검사를 할 수 있는 설비조차 갖추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진료도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그는 “우리 의료보험이 원래 저수가에서 시작했는데 그때 의사들이 받아들였던 것은 환자 수가 늘어날 것이 예상돼 기본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만약 이제 보건소가 1차 진료를 나누어 맡게 되면 당장 수입이 줄기 때문에 지역 의료 현장의 거부감이 커 보건소가 1차 진료를 맡기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 고령의 중증 환자들이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많은 약을 입에 털어 넣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해결책은 1차 공공의료를 확대하는 데 있다”며 보건소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공공의료가 현재 10% 안팎인데 30%까지는 되어야 1차 의료가 살 수 있다”며 “현재 전국에 보건소가 270개 있고 그 밑에 굉장히 많은 보건지소, 보건 진료소가 있는데 왜 활용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보건소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간호대 출신들의 선호도 1순위”라면서 “죄송한 얘기지만 밤 근무가 없고 공무원으로서 신분보장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공의료의 핵심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 소장은 “보건소라도 원격의료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나이 많은 노인들은 헬스케어 디바이스를 다룰 수가 없는데 간호사들이 그 일을 도와줘야 한다”며 “원격의료 문제는 이런 현실을 알고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4차 산업혁명과 미래 병원’을 썼다고 했다.

“私 보험 제한적 허용도 검토해야”

그는 결국 갈수록 고령화되는 시대에 복지와 의료가 함께 가야 하고, 민간의료와 공공의료가 협업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지도 보건도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 연수 받을 때 몸이 안 좋아서 의사 한 분을 찾아갔더니 본인이 나의 1차 의료 의사가 되어 주겠다고 하더라”며 “우리도 주치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소장은 4차 디지털 의료기술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결국 큰 비용이 들 텐데 누가 댈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며 사(私) 보험의 제한적 허용 문제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 소장은 “앞으로 새로운 장비와 약이 쏟아져 나올 텐데 모두 급여로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 약과 장비를 비급여로 쓰게 하지 않으면 전체가 어렵게 될 것이고 이것이 돌고 돌아 모든 환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보험 도입 전제조건으로 첫째 공적 보험과 사보험이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사보험으로 공보험을 보완하는 취지라는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 둘째 사보험 보험가 결정시 소비자 대표, 공급자 대표(병원), 보험사 대표, 전문가 등 다양한 집단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 소장은 사보험으로 공보험이 취약해져서는 절대 안 되며 오히려 공공의료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모든 문제를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협업 시스템을 어떻게 잘 구축할 것인지에 맞춰야 한다”며 “이제 진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나는 누구를 욕하려는 것도 아니고 상황을 과장하고 싶지도 않다”며 “다만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 풀어야 할지 직시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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