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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인사이트] 플라스틱 없이는 밥도 먹을 수 없는데 - 환경과 산업, 雜種의 길에서 길을 찾아보자

백우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9.08.13

민간 싱크탱크인 (재)여시재는 현대 사회, 특히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주요 연구 분야로 정해 국∙내외 전문가들과 꾸준히 세미나, 워크숍을 진행해왔다. 수자원과 수질,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의 질, 자연 및 생태 순환 등이 주요 연구과제다. ‘플라스틱 코리아’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가 된 플라스틱 및 미세 플라스틱 문제도 세부 과제에 포함된다. 이번에 여시재 워크숍에 참여해 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백우열 교수가 우리 생활 그 자체가 됐으면서도 동시에 그럴수록 환경을 파탄으로 내몰고 있는 플라스틱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요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백교수는 환경과 산업을 모두 아우르는 ‘플라스틱 신진대사’의 새로운 생태계를 사회적 논의를 통해 만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2016)>

신성한 플라스틱, 그 위대함

플라스틱은 현대 인류의 삶의 질을 극단적으로 향상시킨 천사와 같은 소재이며 제품 원료이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시라. 그러면 ‘나’는 플라스틱에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어찌 보면 휘감겨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써 내려가는 키보드도 플라스틱이며 커피를 담아놓은 텀블러도 플라스틱, 회의 후 가져온 생수 페트병도 플라스틱, 이젠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스마트폰도 플라스틱... 휘 둘러보면 연구실 안의 플라스틱 제품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문밖을 나서 어디론가 이동하면 더 많은 플라스틱과 섞이게 된다. 플라스틱 소재의 의류와 장신구뿐이겠는가. 미세 플라스틱은 몸 안으로 들어와 우리 몸의 일부가 되었다.

플라스틱 없이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도시나 시골이나, 일상생활이 유지되기 어렵다.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전동 킥보드나 자동차를 탈 때도, 스마트폰을 볼 때도 플라스틱은 거기에 있다. 일상생활에 그치지 않는다. 플라스틱 없이는 현재와 미래에 각광받는 최고 수준의 혁신 제품들을 제조할 수 없다. 석유화학 등의 최첨단 공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플라스틱 소재들은 그 혁신의 시초인 나일론을 필두로, 극세사 섬유, 반도체 소자, OLED, 폴더블 디스플레이, 태양광 전지, 2차 저장 전지 등 기존에 불가능하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인류 진보의 중요한 기초 역할을 한다.

플라스틱은 아마도 인류가 자연에서 추출한 물질로 창조한 물건(thing) 중에서 물, 공기, 토양과 같은 존재와 가장 가까운, 달리 말해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遍在, the ubiquity of plastic)’, 신성한 물건이다.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는 것은 신성한 신과 같은 존재들의 본질인 선과 악,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 19세기에 발명/발견된 후 20세기를 거치며 다양화, 보편화, 편재화되어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고 그 격차를 줄였으며, 21세기에 들어 더욱더 기술 진보의 총아가 된 플라스틱은 인류에게 ‘천사’로 존재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신성한 플라스틱이 요 근래 ‘악마화’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유럽이나 북미에서도, 중국에서도, 동남아에서도, 동아프리카에서도 그렇다. 왜 그런 것인가?

플라스틱은 무엇인가

우리는 플라스틱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플라스틱을 하도 많이 쓰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사람이 있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지 않는가? 그러나 정작 ‘플라스틱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막상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학자인 필자도 사물정치론(Politics of Things)이란 새로운 학문 영역을 만들어 가면서 해당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플라스틱이란 사물에 대해 주목하고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씩 들여다보면서 플라스틱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플라스틱에 대해서 그리 자세히 알 필요가 있는가? 석유화학산업이나 플라스틱 제품 생산, 제조, 재활용, 폐기 전 과정(life cycle)에서 일하는 전문가들만 알면 되지, 아니면 해당 정부 부처나 시민단체 직원들 정도에게나 필요한 것 아닌가? 아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플라스틱 시대가, 세상이 달라졌다. 천사였을 때는 괜찮았지만 악마화되고 있는 지금은 안 괜찮다. 긍정적인 본질도 지속적으로 진보하고 있지만 부정적인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y)가 임계치를 넘어섰다. 이젠 알아야 한다. 플라스틱.

이는 인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사물(thing)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선한 본질적 효과가 지배할 때는 몰라도 되지만 악한 부정적 효과가 증가하여 그 평형점(equilibrium) 마저 넘어설 때는 알아야 한다. 도가에서 설파하듯 ‘가장 좋은 통치자는 백성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이지만 이 통치자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망쳐 놓으면 백성들은 이 자에 대해 알게 되고 알아야 한다. 그래야 처단하고 새로운 통치자를(가능하면 민주주의적인 방법과 절차를 통해서!) 옹립할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신성한 존재인 플라스틱의 정의, 특성, 유형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면 이 플라스틱이라는 사물의 생애 주기 및 생태계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 불가능하다.

플라스틱은 일반적으로 고분자 소재인 폴리머(polymer)를 원료로 한 소재들이며 가열·가압 또는 이 두 가지에 의해서 성형(成型)이 가능한 재료, 또는 이런 재료를 사용한 열경화성 수지와 열가소성 수지 제품인(천연수지가 아닌) 합성수지로 나뉜다. 조금 더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플라스틱은 석유(또는 천연가스, 석탄)에서 분별증류(fractional distillation, 끓는 점이 상이한 혼합물을 가열하여 끓는 점이 낮은 것부터 추출하여 혼합물을 분리하는 과정)을 통하여 75도-150도 사이에서 추출되는 나프타(Naphtha)가 기본 원료이다. 핵심은 이 폴리머 중 폴리에틸렌은 합성수지, 폴리프로필렌은 함성 섬유, 폴리부타디엔은 합성고무의 원료가 된다. 플라스틱은 분자량이 적은 고정형이지만 제조공정 단계에서 여러 가지 배합제(가소제, 안정제, 충전제, 착색제 등)를 추가하여 유동성 가변성, 색상성을 가지도록 변형하여 최종 제품을 만들어낸다. 이에 플라스틱은 거의 무한대의 종류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소재의 유연성, 복합성, 다양성이 축복이자 저주이다.

이러한 플라스틱은 자연 물질/소재를 대체하는 합성 물질/소재이다. 19세기 코끼리 상아 소재의 당구공을 대체할 소재로써 등장하여 20세기를 거치며 플라스틱은 자연에서 획득하여 사용할 수 있는 여러 물질/자원의 고갈과 비경제성을 극복하는 신소재로써 인간의 삶의 모든 측면에서 성장해왔다. 지구의 한정된 자연 자원의 무분별한 사용을 억제하고 급성장-급팽창해온 수많은 산업(소재산업, 화학산업, 생명공학산업, 자동차 산업, 스마트폰 산업, 식품산업, 보건 건강산업 등)에 사용되는 금속, 세라믹, 나무 등의 대체재로서 엄청난 역할을 수행한 것이 바로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아마도 위의 자연 추출 자원들의 고갈이 훨씬 더 앞당겨졌을 것이다. 또한 연간 5000억 달러 규모의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생산물이자 전 산업 생태계의 기초 투입 요소(feedstock)로서 기능한다. 2015년 기준 83억 톤의 각종 플라스틱이 전 세계에서 생산되었으며 이 중 63억 톤이 폐기물로 처리되었다.

이러한 막대한 생산량의 플라스틱은 산업용과 생활용으로 분류된다. 특히 생활용 플라스틱에서 플라스틱 포장재(plastic packaging)는 플라스틱의 용이성, 범용성, 경제성을 극대화한 것으로써 가장 광범위하게 생활에서 활용되며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소비량의 26%를 차지하고 있다.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큰 공헌을 하였고 그러니 당연히 가장 큰 생산량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엄청난 생산량은 당연히 플라스틱 폐기물/쓰레기 증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single-use package)’는 플라스틱 제품 중에 가장 짧은 생명주기(life span)를 지니고 있어 플라스틱 오염(plastic pollution)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매우 낮은 수준의 재사용(recycling) 비율에 기인하며 리사이클이 가장 효과적으로 되고 있는 페트병(PET) 조차도 7% 정도에 그치고 있다. 결국 극소량인 2% 플라스틱 포장재가 소위 자원순환형 신진대사(circular metabolism/closed loop)에서 순환하고 있으며 40%는 매립되고 32%는 토양과 해양으로 흘러들어가는 선형 신진대사(linear metabolism) 구조를 형성하여 재앙적인 환경오염과 전 세계적으로 연간 40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킨다. 이 전 지구적, 전방위적 차원의 플라스틱 오염과 이에 대한 인류의 자각과 공포가 플라스틱 악마화의 원인이다.

이러한 플라스틱은 현재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자원이자 사물이다. 한국과 세계 여러 미디어의 다큐멘터리 등에 보여진 ‘플라스틱 없는 생활의 지속 불가능성’은 한국뿐만 아니라 이를 인지한 인류에게 충격을 주었다. 소위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기’라는 체험형 미디어 및 SNS 프로그램들과 시민환경운동들이 주목을 받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위에서 설명한 플라스틱의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Ubiquity of Plastic)’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플라스틱 없이는 정말 ‘살 수 없다’고 체험자들은 말한다. 더구나 이는 일상생활용품에만 국한된 것이다. 우리의 통신, 교통, 주거를 가능하게 하는 제품들의 소재에서 플라스틱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플라스틱 없는 삶’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공기, 물, 흙과 같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신성한 특성은 인간에게 공포를 주기도 한다. 이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기의 움직임, 그것도 매우 정치적인 움직임은 플라스틱 없는 삶의 불가능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되었다. 플라스틱을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줄여야 한다는 압박감과 절박감. 어디서 온 것인가?

위부터 영화 <알바트로스>, KBS 뉴스, 한겨레

위 이미지들은 이미 여러 매체와 SNS를 통해서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이다.

이런 이미지들이 보여주는 해양 쓰레기 섬, 다양한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바닷새와 고래, 그리고 궁극적으로 먹이사슬을 통해 사람의 몸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미세 플라스틱은 현 세대와 미래세대의 삶의 지속성에 큰 위협이다. 그리고 이러한 플라스틱의 악마화는 플라스틱 폐기물/쓰레기의 국제무역 구조에 의해서 가려지고 외면되고 비인지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중국의 한 조치에 의해서 증폭되었다. 2018년 1월 중국의 비산업적인 재활용 폐기물 수입 전면 금지로 인해 소위 플라스틱의 천사표 얼굴에 익숙했던 잘 사는 북미, 유럽연합, 동북아(한국 포함) 국가들의 플라스틱 폐기물은 갈 곳을 잃었다. 추정치로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1억 1000만 톤이 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재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진다. 1992년 이후 중국이 전 세계로부터 수입한 플라스틱 쓰레기는 약 1억 600만 톤에 달하여 전 세계 수입량의 50% 가까이를 차지했고 위의 선진국들이 이의 85%를 중국과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보냈다. 플라스틱의 선한 얼굴만 보고 악한 얼굴은 가려왔던 이 국가들의 플라스틱 신진대사는 바로 크게 탈이 났다. 먼 태평양의 불쌍한 동물들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내 하루하루의 삶이 급격히 불편해지고 어려워지는 또한 비싸지는 플라스틱 세계에 위기가 왔다. 이러다 보니 이 국가들의 도시 폐플라스틱 쓰레기 미수거 대란과 중국이 아닌 동남아 국가로의 불법 폐기물 수출 및 범죄, 그리고 이로 인한 외교적 마찰로 인해 한국, 캐나다, 유럽연합국들의 도시 플라스틱 자원의 순환이 매우 낮은 수준인 것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러한 배경에서 심지어 환경 또는 생태계 전체의 지속성을 해치는 오염원으로서 또한 나의 저렴하고 편안하고 평안한 삶을 위협하는 존재로서 ‘플라스틱의 악마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플라스틱을 쓰면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모든 플라스틱, 특히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모두 해악적이고 사용하지 않거나 줄여야 한다는 압박이 사방에서 밀려들게 된다. 이는 다분히 환경운동적 사고와 접근법에 기인한 현상이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라 또는 없애라’라는 구호와 압박은 이 악마화된 플라스틱을 다시 천사의 긍정적 산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자극이자 움직임이지만 이러한 ‘환경정치적’ 접근만으로는 절대 플라스틱 자원 순환의 지속 불가능성이 개선되기 어렵다. 플라스틱 오염이라고 갈무리될 수 있는 이러한 부정적인 환경 현상은 그 글로벌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토양과 해양,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에게 물리적, 화학적 해악을 어느 정도로, 어떠한 경로로 끼치는가에 대한 명확한 과학적 분석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분석은 단면적이 아닌 다면적, 다층적, 복합적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이며 이에 정치경제적, 국가사회적, 국제정치적, 정치문화적 분석과 대응 방안이 필요하기도 하다. 한마디로 현재까지는 대책이 미흡, 또는 무대책이라는 이야기다.

플라스틱 차이나, 플라스틱 코리아, 플라스틱 월드

위에서 언급한 중국 정부의 플라스틱 폐기물 전면 금지는 잘 알려져 있듯이 2016년 중국과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준 ‘플라스틱 차이나(塑料王國, 왕지우리앙 감독)’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 시초였다.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2016)>

한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당국자 중심의 권위주의 체제인 중국에서 그 사회의 부정적이고 불편한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예술 작품은 대체로 검열당하고 금지당한다. 이 영화에서 보여진 한국, 일본, 미국, 유럽에서 수입된 폐기 플라스틱을 아주 더럽고 힘들고 비환경적인 방법으로 낮은 등급의 재생(recycle) 플라스틱으로 만들며 살아가는 두 가족과 그 주변 환경, 그리고 중국과 소위 선진국 경제가 얽혀 들어가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전 중국에서 상영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통제를 우회하여 SNS 등을 통해서 확산되었고 더 이상 정부가 외면할 수 없게 되자, 중국 정부는 오히려 급격한 산업 정책적 변화를 발표하며 폐기물 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했다. 엄청난 변화였고 그 여파는 전 세계에 미쳤다. (그런데 그 두 가족과 그 주변의 5천여 소형 재생공장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소위 권위주의적 환경 주의(authoritarian environmentalism), 즉 권위주의 체제가 환경 보호에 더 효과적, 효율적일 수 있다는 주장의 실현이기도 했다.

플라스틱 차이나는 플라스틱 정치의 한 단면이며, 플라스틱 코리아도 마찬가지이다. 플라스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국 내의 수많은 행위자의 정치적 상호작용은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정치 현상으로 반드시 면밀히 분석되어야 한다. 중국과 달리 한국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개방성은 중국과는 다른 플라스틱 정치 현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플라스틱 코리아. 한국은 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 1위 국가이다. 2016년 한국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일본(66.9kg), 프랑스(73kg), 미국(97.7kg), 한국(98.2kg) 등이었다. 또 한국은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 2위 국가이다. 2017년 기준 64.12kg으로 미국(50.44kg), 중국(26.73kg)을 능가했다. 1회용 컵은 2015년 기준 257억 개 사용, 플라스틱 페트병은 2016년 기준 27.4만 톤 사용으로 가히 플라스틱의 세상이다. 당연히 1일 평균 전국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2011년 3,949톤에서 2016년 5,445톤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엄청난 플라스틱 소비량 및 폐기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중국발 플라스틱 폐기물 대란은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에 산더미만 한 플라스틱 쓰레기 산을 창조하였고 전 국가 차원의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플라스틱의 악마화가 보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이 플라스틱 코리아의 전부인가?

한국에 플라스틱은 악마이기 보다 천사

단언컨대 플라스틱 코리아는 천사로서의 플라스틱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 앞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듯이 플라스틱이 없다면 현대, 특히 도시 거주민들의 삶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들 중 특정한 품목(예를 들어 일회용 포장재, 빨대 등)들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과 별개로 생활 전반, 그리고 산업 용도로 생산되는 플라스틱은 줄이거나 소멸시킬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구분’이 필요하다. 플라스틱 코리아는 소비도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생산도 그렇다. 한국의 대표 산업인 석유화학산업은 세계를 주도하는 수준으로써 막대한 플라스틱 소재 생산을 책임지고 있다. 세계 총생산(GDP)에서 제조업 중 화학산업은 15%로써 가장 큰 비율을 점유하고 있고, 이 중 50%가 석유화학 관련 산업이다. 한국의 석유화학 산업은 울산, 여수, 대산 3개의 석유화학 단지에 약 50개 업체가 계열화되어 있으며 2017년 에틸렌 생산능력 기준으로 세계 4위(9,005천 톤/년)의 위치이며 국내 자동차, 기계, 반도체에 이어 국내 제조업의 11% (162조 원)를 책임지며 수출도 447억 달러로 반도체, 자동차, 기계 다음으로 4위다.

이처럼 동일한 대상에 대한 상반된 태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한국을 ‘플라스틱 코리아’라고 불러야 한다. 플라스틱에 관한 한 우리는 열정(부정)과 냉정(긍정)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하며 그 전자를 후자로 전환하는 파괴적 창조(disruptive creation)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우선 생각할 문제는 플라스틱을 전면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소재가 있는가이다. 물론 플라스틱 오염을 유발하는 석유(나프타) 기반의 합성수지 플라스틱의 일부는 사용을 줄이거나 소멸시키면서 대체재로 사용할 수 있는 비합성소재, 즉 자연으로부터 추출하는 나무, 광물, 섬유 등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플라스틱을 포기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핵심 산업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오히려 플라스틱의 소멸이 아닌, 화석연료인 석유가 고갈되면 대체할 수 있는 플라스틱 소재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최근 시스템 대사공학(system metabolic engineering), 즉 바이오매스(biomass)와 공기 속 탄소, 수소, 산소, 질소 등이 미생물의 대사 반응을 통해 원하는 에너지와 화학물질, 산업원료를 만드는 과학적 산업적 접근법이 주목받고 있고, 이를 통해 연료와 플라스틱, 산업 용매 등의 화학원료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매우 기초적인 단계다. 연간 5,000조 원 규모의 글로벌 화학 시장은 단기적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대부분 원유와 같은 화석 연료에 근거할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스틱의 악마적 특성을 파괴적 창조를 통해서 천사적 특성으로 변환시킬 사고의 전환은 무엇일까?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이 막혔고 그것들은 쌓여 간다. 이것은 한국뿐만이 아니고 잘 사는 그리고 못 사는 국가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 과학적 시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 내에서 열정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플라스틱의 악마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에 대한 시장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렇다면 냉정하게 이 문제에 접근하여 새로운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접근법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앞에서 자세히 설명한 복잡다단한 플라스틱의 종류와 특성, 그리고 활용되는 산업 영역과 생활영역에 대한 전문가적 지식과 더불어 일반 대중의 이해가 기반이 되면 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에는 개방적 민주주의 체제의 특성과 IT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플라스틱에 대한 정보, 시각, 의견을 확대 재생산하고 그 안에서 옥석을 가리는 엘리트와 대중의 행위가 필요하다.

글로벌 플라스틱 가치사슬에서 어디에 놓일 것인가

즉, 한국은 플라스틱을 비판하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역으로 글로벌 수준에서 도시 플라스틱 신진대사 시장(Market of Urban Plastic Metabolism)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 세세한 국가적 산업적 차원의 전략과 정책 대안을 여기서 일일이 다 논할 수는 없지만 일단 ‘Plastic Korea 2030’과 같은 정부, 산업, 학계(공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정책계, 시민사회의 주체들이 개방적으로 참여하는 R&D, 투자, 무역, 환경, 정치, 문화 전략의 잡종적 종합적 대책 수립을 제안한다. 물론 이러한 탑-다운형 접근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수많은 독립적 움직임도 결합되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의 여러 주체들은 글로벌 플라스틱 가치 사슬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각 층위의 리더들로 떠오를 수 있다. 플라스틱의 악마화는 환경 보호 문제로 시작했지만 막대한 산업적 정치경제적 환경적 부가가치 창출의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환경부가 아니라 산업자원통상부가 주도하거나 최소한 공동 리더십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다. 환경문제를 환경문제로만 접근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를 기반으로 어려운 관계를 겪고 있지만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동병상련’인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협력의 시공간 또한 만들 수 있겠다.

현재 한국 그리고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플라스틱 월드(Plastic World)는 악마와 천사의 두 얼굴, 그리고 그 안에서 천사와 악마를 발견할 수 있는 복합 이중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신과 공기와 물과 흙이 그렇듯이 플라스틱의 위대한 신성함은 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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