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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병철 회장 자문한 日 하마다 박사와의 대화 “일본 정부가 수출을 실제 중단시키지는 않을 것” “한국 반도체가 피해를 입으면 주도권이 대만으로 갈 가능성은 있다”

황세희

2019.08.05

(재)여시재는 일본 ‘안전보장외교정책연구회’ 및 ‘일본자연에너지재단’과 함께 7월 31일부터 이틀간 도쿄에서 ‘한미일 협력의 지속가능한 번영과 미래’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개최했다(내용은 별도로 발신 예정).

여시재는 이 세미나와는 별도로 8월 2일 일본의 원로 반도체 전문가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94)와 한국 측 참석자들 간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하마다 박사는 NTT 도코모 전무로 있던 1980년대 후반 故 이병철 삼성 회장과 인연을 맺은 이래 기술이전과 관련해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이 회장은 자서전에서 ‘삼성 반도체의 은인’으로 여러 번 언급했고 형-동생으로 지냈던 사이라고 한다. 대화 자리에는 여시재 이광재 원장 등 한국 측 10여 명 외에 하마다 박사와 수십 년간 인연을 이어 온 양향자 전 한국공무원인재개발원장도 참석했다.

하마다 박사는 대화에서 “일본 정부가 3가지 품목의 공급을 실제 중단시킨다면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분업 체제는 붕괴하고 말 것”이라며 “(때문에) 일본 정부가 그런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마다 박사는 “한국 정부도 일본이 그런 조치를 취하도록 몰아세우지 않도록 냉정한 대응을 요청드리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참석자들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일본 국민들은 한국도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 이번 조치가 한국이 미래산업으로 키우려 하는 시스템 반도체를 타깃으로 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정치나 외교는 모릅니다. 일본의 일반 사회에 그런 인식은 없습니다. 이번 사태는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이며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끼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기업들이 구축해온 반도체 생산 분업체계를 절대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사태는 징용자 문제에 대해 일본의 중재위원회 구성 제안에 대해 한국이 계속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내놓을 카드가 없는 일본이 ‘안전보장’ 문제를 꺼내든 것 아닌가 합니다. 일본의 국민들 사이에 일본 정부가 좀 과하게 반응한 것 아니냐는 정도의 인식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체로는 한국 측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정부가) 깊이 있게 생각하고 내놓은 행동이라고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수출 중단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일 반도체 분업 체제의 붕괴를 포함한 여러 영향에 대해 일본 정부는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보십니까?

“현역을 떠난 지 오래된 입장이기는 하나 반도체 기술자로 말씀드리자면 반도체 기술은 진보와 변화가 매우 빠른 산업입니다. 일본은 D-램을 한국에 추월당했고 플래시 메모리도 그렇습니다. 일본은 앞으로의 핵심 기술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한 기초 연구에 힘을 기울여왔습니다. 한국에서도 과거 이번에 문제가 된 3품목을 국산화하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한국을 위해 국산화를 반대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첫째 시간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었고, 둘째 기술이 너무 빠르게 진보하기 때문에 투자를 한다면 다음 단계의 미래를 위한 기초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 (이번 일을 겪어나가면서) 새로운 기술 속에서 한일 반도체 분업체계가 다시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 조사 맡기는 것은 어떤가”

- 안전보장 상의 문제로 3 품목을 지정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일본 측이 우려를 갖고 있다면 ‘안전보장상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 어떤 체계를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까?

“3품목 중 하나인 불화수소의 경우 일본에서는 옴진리교 지하철 테러 사건 당시 사용한 사린 독가스로 유용될 수 있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때문에 일본 시민들이 안전보장 상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독가스로 활용할 염려가 없는 나라가 조사위를 담당하게 하자고 (한국이) 제안하는 것도 방법 아닐까 합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 같은 나라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만약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어서 한국 반도체가 타격을 입을 경우 주도권이 중국이나 대만 같은 다른 나라로 넘어갈 가능성은 없습니까?

“중국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대만이 주도권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한국이 앞으로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하려 하는데 과연 경쟁력은 있다고 평가하십니까?

“한국은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제조업에 큰 재능을 가진 나라입니다. 질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서 성장하게 된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 나라에 가서 기술이전에 협력했습니다만 자력갱생을 추구하는 나라도 있었습니다. 삼성은 (이와 다르게) 공장 자체를 통째로 가져갔습니다. 이게 훨씬 빠릅니다. 공장 자체를 가져다 두고 생산율이 높아지면 이후 연구개발에 들어갑니다. 성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을 못 맞추게 되고 따라갈 수 없습니다.”

“삼성은 공공연하게 수입 신청을 진행해보라”

- 지금 삼성의 고민이 깊을 것입니다. 조언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삼성이 현재 수입 금지를 당한 것이 아닙니다. 우대 조치가 없더라도 정식 절차로 수입 신청을 한다면 일본이 거절할 명분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정식 절차를 밟아 공공연히 수입 신청을 진행해서 실질적으로 영향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일 정부는) 우대조치에서 삭제하는 것일 뿐 다른 나라와 똑같이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공급에 실제로 차질이 생긴다면 이 부분에 대해 한국 정부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기업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데 언젠가는 살 수 없을 지도 모른다면 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수입 신청을 공개적으로, 떠들썩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식 절차를 밟아 신청을 했는데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면 실질적인 규제 아니냐고 공론화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 한국이 미국을 통해 우회 수입을 하고 협상은 협상대로 진행하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최종 소비자에게 판다는 측면에서 불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생산국이 사용할 분량만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 반도체 분업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베 총리,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마디씩 전하신다면

“아베 총리에게는 지금의 한일 분업체계를 수단으로 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수출 중단은 안된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집, 이상과 신념을 가진 분인 것 같습니다. 모쪼록 현실을 잊어버리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마다 박사는 최근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그는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공격당하면 미국은 3차 세계대전을 하더라도 일본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반면) 미국이 공격당해도 일본인들은 소니 TV를 통해 지켜보기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며 “일본은 앞으로 당분간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대응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는 “2차 대전 후 일본은 안전 보장 문제는 미국의 그림자에 숨어 지나쳐 왔지만 70여 년이 지난 현재 세계는 변하고 있다”며 “일본이라는 국가를 세계에 제대로 발신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들 사이에 이런 인식이 있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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