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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부상하는 중국의 민족주의 그리고 미국음모론

서정경

2017.09.22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각국의 고립주의와 민족주의의 전개 (2) 중국 - 부상하는 중국의 민족주의 그리고 미국음모론

저자: 서정경 (성균중국연구소 연구교수)

No.2017-047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각국의 고립주의와 민족주의의 전개"입니다. 각국에서 진행하는 고립주의, 민족주의, 배타주의의의 양상들과 이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봅니다. 전 지구적 고립주의의 바람 속에서 이를 타개할 협력의 솔루션을 고민해봅니다.



"중국인을 해치는 자는 아무리 멀어도 반드시 처형한다"(犯我中華者,雖遠必誅). 개봉 후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현재 중국 박스오피스를 점령하고 있는 최신 영화 “전랑2(戰浪)”의 포스터에 나온 문구이다. 영화 성수기에 외산 영화 개봉을 금지하는 ‘헐리우드 블랙아웃’의 덕을 보았다고는 하나 중국사회는 마치 타는 갈증을 해소하는 양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정서로 무장한 이 작품을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의 특수부대가 아프리카 국가 반란군의 학살에 맞서 아프리카 난민과 중국인들을 용감하게 구해낸다는 내용으로서 중국 민족주의와 우월주의 정서가 물씬 배어있다. 1970년대 베트남전의 아픈 상처를 회복시키고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세웠던  미국영화 “람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가 예상보다 훨씬 흥행한 것은 주연배우의 화려한 액션과 실감나는 전투장면 외에도 중국이 처해있는 시대적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데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민족주의 정서와 애국심을 적절히 배합시킨 컨텐츠와 마케팅이 크게 성공할 만큼 중국사회가 민족주의 정서에 목말라있었다는 뜻이다. 중국사회의 민족주의 정서 강화 추세는 우선 중국의 국력 강화라는 물질적 조건, 그리고 그에 따라 재구성 및 확대되고 있는 중국의 국가 정체성 및 핵심이익관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스미스(Anthony D. Smith)의 정의, 즉 “민족주의란 실재적 혹은 잠재적 민족을 구성하려는 특정 지역의 주민들이 그들의 자주, 통일, 정체성을 이루고 유지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운동이다”를 따른다면, 사실상 중국의 민족주의는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변천과정을 밟아왔다. 시진핑 주석은 특히 “중화민족의 대부흥”이라는 장기적 비젼을 제시하고 소위 중화자손들의 역량 결집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이는 강화된 국력에 수반되는 민족적 자부심과 자존감, 과거 서구세력에 의해 억울한 피해를 입었지만 이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중국 대중들의 보편적 인식과 결합하여 새로운 민족주의 양상을 형성하고 있다.


주지하듯, 민족주의의 전개 과정에는 그 집단의 역사, 세계관, 이데올로기 등 요인이 심도 있게 작용한다. 민족이란 “단순히 지역적 경계라거나 개인의 결집상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계속 확장되는 것”이라고 본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시각처럼, 중국의 민족주의 역시 시공을 초월해 연속적으로 확장되어온 역사적 흐름이 있다. 팽창의 유전자를 지닌 서구와 달리 중국의 민족주의는 고립주의적 성격을 갖는다는 일부 견해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시야를 과거로 넓혀보면 또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 중국의 국경선은 역대 당나라시기를 제외하고는 가장 국경선이 넓었던 청조의 국경선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중국의 장구한 역사에서 한족을 중심으로 한 중심 집단은 자기세력의 확장을 끊임없이 추구해왔다. 수천 년에 걸친 각 부족 및 종족들 간 세력집합과 전쟁의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에서나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세력들 간의 끊임없는 이합집산, 그리고 그를 통한 자기세력의 확장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확장의 기저에는 한족을 중심으로 한 중심 집단의 강한 소프트파워가 자리했다. 유교문명을 비롯한 우월한 문화와 언어를 바탕으로 중국 한족은 끊임없이 타자를 흡수해나갔으며, 설사 이민족에 의해 정복되었을 지라도 결국에는 그 이민족을 다시 우월한 중국문명권으로 재흡수함으로써 종국적으로는 자신의 몸집과 세력을 불려나갔다. 그리하여 북서쪽으로는 인종적으로 확연히 다를 뿐 아니라 수천년 간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녀온 위구르인들이 거주하는 동투르크 지역, 남서쪽으로는 수천년 간 고유문화를 이어왔던 티벳, 그리고 찬란한 징기스칸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몽골의 일부 등 주변지역을 하나하나 중국의 세력권으로 병합시켜왔던 것이다. 또한 이것의 완전한 정착을 위해 오늘날에도 서남공정, 서북공정, 동북공정 등 광범위한 역사재편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즉 오늘날 민족주의 정서의 대두와 함께 분리독립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모두 현재와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중국세력권으로 병합된 지역들이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시종일관 무력을 써서라도 독립을 막는 단호한 입장을 보여 왔고 이에 대중들은 적극 호응하고 있다.


중국의 민족주의와 고립주의 정서는 대미인식과도 밀접히 연관된다. G2라고 불릴 정도로 강대국이 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실은 중국사회 기저에 미국의 “검은손”이 중국 자신을 방해하고 흔들어댄다는 뿌리 깊은 피해의식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천안문 사태 이후 한때 성행했던 미국의 “검은 손”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 외에도 1990년대 중반 들어 중국사회에서는 다수의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 미국의 음모에 따른 것이라는 소위 “미국 음모론”이 성행한 바 있다. 1999년 주유고 중국 대사관이 피폭되었을 때 중국 대중들은 오폭이라는 설명을 믿지 않았다. 특히 미국의 취약성이 명시적으로 표출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 사회에는 각종 버전의 미국음모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 증시의 하락은 미국 월가의 금융전쟁에 따른 것이다, 유전자변인은 세계 농산물 시장을 장악하려는 미국 회사의 음모이다, 사스와 조류독감은 미국이 중국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기 위해 만든 심리전이다 등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비이성적이고 비객관적인 대중들의 인식이 중국사회 기저에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중국 공산당과 관방은 끊임없이 중화민족의 위대함과 공산당의 신성한 임무를 부르짖고 있다. 외부에선 시진핑 시기 중국이 과거보다 공격적이고 공세적으로 변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오히려 중국 내부에선 중국정부가 국제사회에 더욱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는 비판과 응원의 목소리가 높다. 국력의 확대에 따른 자신감 증강은 미국과의 관계를 강대국외교의 차원에서 잘 처리해야 한다는 정책적 주문과도 접목된다. 많은 중국학자들은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가 부상국과 패권국간의 관계로 비춰지고 논의되는 것을 피한다. 그래서 중미 양국관계는 ‘세계 최대의 개도국’과 ‘세계 최대의 선진국’간의 관계라고 규정했고, 두 대국이 국제평화와 안정을 위해 건설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공산정권 수립이후 중국의 대외전략에는 ‘강대국관계’ 혹은 ‘선진국과의 관계’ 개념이 종종 쓰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개도국과의 관계발전을 중시한 외교전통으로 인해 정부는 줄곧 ‘강대국외교’라는 표현을 자제해왔다. 중국정부의 정책강령 및 공개적 발언에서 ‘강대국외교’로 표현되는 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하여 중미 간 건설적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천명한 이후이다. 하지만 오늘날 시진핑 시대는 강대국 외교라는 용어가 매우 빈번하게 쓰이고 있을뿐 아니라 중국이 먼저 신형대국관계를 미국에게 제시하는 수준까지 왔다. 왕이 외교부장은 시주석 출범 후 약 100일 가량 되는 시점에서 “중국 특색의 강대국외교(有中國特色大國外交)”를 추구하겠다고 정식 공언하였다. 중국학계에서 중국이 국력에 걸맞는 강대국으로서의 외교자태 및 행위를 취해야 한다는 시각은 이미 도광양회(?光?晦) 전략을 압도하는 형국이다. 비록 중국이 미국에 대한 도전국으로 외부에 비춰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중국내 주류적 관점이자 중국관방의 공식 입장이기는 하지만 국력의 증강과 함께 중국학계 내에서 강대국과 강대국 간의 관계 또는 강대국 중국이 가져야 할 태도 및 행위에 관한 글들이 양산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올해 양회에서 리커창 총리는 미국의 TPP 중단 등 고립주의 성향 속 국제무역시스템내 중국의 역할 및 자유주의 무역에 대한 입장을 질문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중국에 관련되거나 조건이 되는 역내 자유무역레짐에는 개방적 태도로 임하겠으며, 지역을 초월하거나 중국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안하겠다고 답변하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비록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의 미국에 대해 고립주의 성향이 점쳐지는 상황 속에서 중국의 대응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발언이었다. 


시진핑 시기 중국은 “중국 특색의 강대국 외교”를 천명했고, 두 개의 백년을 통한 “중국의 꿈”을 역설하고 있다. 과거 치열한 이데올로기적 대립에 기반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혁명을 꿈꾸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스스로를 개방하더니 현재 과거 어느 시점보다도 더욱 세계무대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년 9월 G20 정상회담 관련해서도 왕이는 장기침체에 빠진 세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중국의 역할을 언급했다. “국제체제에서의 중국이 갖는 제도적 권력이 현저히 제고되었다”는 그의 평가와도 같이, 향후 국제 거버넌스 특히 국제금융질서에서의 위상과 담론권을 제고하려는 중국의 의도는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향후 일대일로, 상하이자유무역시범지대, ASEAN을 중심으로 한 역내 자유무역 레짐 확대, 개도국 지원 등을 통하여 국제무역질서의 규범과 거버넌스에서 점차 주도권을 잡아가려는 중국의 노력은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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