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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긴 전문(Long Telegram)’을 둘러싼 논쟁들, 그리고 한국

황세희 (여시재 미래디자인실장)

2021.02.05

지난 1월 애틀랜틱 카운슬에 발표된
<더 긴 전문: 새로운 미국의 중국 전략을 위해> 보고서
(출처: 애틀랜틱 카운슬 홈페이지)

바이든 행정부 취임과 함께 미국 국제정치학계에서는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대한 논쟁이다. 발단은 지난 1월 말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에 발표된 <더 긴 전문: 새로운 미국의 중국 전략을 위해 (The Longer Telegram: Toward A New American China Strategy)>에 있다. 보고서는 냉전시대 미국의 소련에 대한 봉쇄 전략을 구상한 조지 케넌(George Kennan)의 <긴 전문(Long Telegram)>을 다분히 의식했다.

보고서가 의도하는 바는 명확하다. 소련을 이해하고 소련에 대응하기 위한 냉전시대 구상을 설계했던 것처럼, 미중 대립이라는 새로운 냉전을 본격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중국을 이해하고 중국 전략 구상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주장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분분하지만 논쟁의 공통된 고민은 명확하다.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미국은 어떻게 중국을 견제할 것인가. 미국의 리더십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냉전의 포문을 연 ‘긴 전문’, 어떻게 소련을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

‘더 긴 전문’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케넌의 ‘긴 전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냉전 초기인 1946년, 모스크바 대사관에 주재하던 조지 케넌은 소련의 전략과 행동을 이해하고 미국의 대응전략을 제안한 ‘긴 전문’을 국무부에 제출했다. 국무부 내부의 회람을 거쳐 보고서는 1947년 포린 어페어즈에 <소련 행동의 근원(The Sources of Soviet Conduct)>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X’라는 익명의 저자가 작성했다는 의미에서 Article X라고 불리기도 했다. 논문은 제정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소련으로의 변화 속에 권력을 획득한 소련 지도부의 심리를 분석하였다. 케넌은 당시 소련 지도부들이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절대화하기 위한 국내적 투쟁과 외부 세계로부터의 위협에 맞서왔다고 분석했다. 특히 국내 투쟁의 성공으로 국내 자본주의의 위협이 사라진 소련은 해외 자본주의로부터의 위협을 강조하며 독재 정권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로 인해 소련 내부 권력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자본주의 세계와 공산주의 소련과의 반목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때문에 케넌은 소련에 대한 미국 정책의 주요 요소로 러시아의 확장적 경향에 대한 장기적이고 인내심이 강하지만 확고하고 경계심이 강한 억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 봉쇄 전략(containment)의 기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조지 케넌의 ‘긴 전문(Long Telegram)’

케넌이 지적한 소련에 대한 분석과 봉쇄 전략의 이론적 논리는 냉전시대 미국의 핵심 전략이 되었다. 케넌은 긴 전문의 40주년을 기념해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제안했던 봉쇄 전략이 군사적 의미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념적∙정치적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2) 케넌은 1946년이라는 시점이 2차 세계대전의 직후였다는 점을 상기하며 미국이 더는 소련에게 불필요한 양보(특히 서유럽과 일본에 대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 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의도보다 미국의 봉쇄 전략이 소련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확대해석하고 대응했다는 점을 케넌은 자주 피력했다.

본인이 냉전의 전격적인 개막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의 전개 속에 대응 방향을 고심하던 미국에게 있어 ‘긴 전문’은 유익한 지침서였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긴 전문’을 통해 소련이 어떤 나라인지를 이해하고 소련과의 경쟁에 대응할 전략을 설계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조지 케넌은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일본의 많은 연구자들은 케넌의 ‘긴 전문’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패전 직후 일본의 영구적인 비무장을 계획하던 미국이 냉전의 발발 속에 소련에 대항할 전초기지로 일본의 지위를 재정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동북아는 지역 열전(Hot War)인 한국전쟁을 통해 냉전의 본격적인 개막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군사전략적 역할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는 미일안보조약 체결로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대일 정책의 전환을 ‘역코스(reverse-course)’라고 부른다. ‘긴 전문’이 불러온 나비효과가 대소전략에서 세계전략으로, 그리고 다시 동북아 전략으로 이어져 오늘날의 일본을 만들었다.

‘더 긴 전문’의 미국 비판, “중국 전략의 부재는 미국의 정치적 관성과 전략적 표류”

조지 케넌의 ‘긴 전문’은 외교관을 비롯한 국제정치 전문가들에게는 매력적인 지향점이다. 애틀랜틱 카운슬에 실린 ‘더 긴 전문’은 미국의 다음 시대 전략을 제시하겠다는 야심이 노골적일 정도로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조지 케넌이 X라는 익명으로 기고한 것을 의식해 보고서의 저자 역시 익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치전문 사이트 폴리티코(Politico)는 이 보고서의 저자를 ‘중국에 대한 깊은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전직 고위 관료’라고 소개했다. 제2의 케넌을 암시하는 듯한 소개임이 분명하다.

‘더 긴 전문’은 시진핑의 중국을 분석한다. 저자는 시진핑의 중국이 등소평 이후의 중국과는 달리 더 이상 현상 유지 국가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중국은 현재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외교 정책을 채택하고 있으며 자국의 국경을 넘어서 세계적 수준의 군사 프레젠스를 투사하려 한다고 경고한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환경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때문에 민주주의 세계 전체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더해 중국은 오랜 기간 미국을 대하는 단일한 내부 전략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대응해 온 것에 비해 미국은 이러한 통일된 대중국 전략을 가지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냉전시대의 대소련 봉쇄 전략과는 대비되는 대중국 전략의 부재를 저자는 ‘국가적인 책임의 직무유기(a dereliction of national responsibility)’라고 표현하기도 한다.3)

이어서 표류해온 미국의 정책을 ‘정치적 관성과 전략적 표류라는 치명적인 칵테일(lethal cocktail of political inertia and strategic drift)’이라고 비판했다. 저자의 지적대로 오바마 정부의 리밸런싱 정책, 트럼프 정부의 인도태평양 구상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전략 구상은 존재했으나 일관되고 통일된 대중국 전략이라고 할만한 실체는 부재했다. 무역 전쟁과 기술 마찰 등 사안별로 미중 대립은 격화되고 있으나 중국에 대한 전체적인 전략 구상은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제 미국은 중국의 국가 전략의 목적뿐만 아니라 중국 정책 행동의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진핑 리더십과 중국 국내정치를 더 잘 이해해야

‘더 긴 전문’은 또한 중국 국내 정치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며 시진핑 주석의 리더십에 주목한다. 시진핑은 중국 정치를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성과 정치 규율, 중앙당 장악에 중점에 두고 운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장한 기업가 계층의 자본주의적 과잉을 통제하고 국영기업을 부활시켜 중국의 부유층 역시 당의 통제하에 있음을 인지시킨다는 것이다. 저자의 분석을 증명하듯, 지난해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중국 금융당국을 비판하자 중국 당국이 알리바바의 핀테크 자회사인 앤트그룹의 홍콩 증시 상장을 중단시켰다. 2021년 1월에는 중국 중앙은행이 비은행권 기업들의 독과점 기준을 심사하는 규제 초안을 발표했다. 규제 초안에는 ‘비은행 결제 서비스 시장’과 ‘전국 전자 결제 시장’을 동시에 사용하여 서로 다른 시장을 언급하였다. 중국 인민은행(PBOC)이 이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29조 달러 규모의 중국 전자결제 시장과 중국 양대 이동통신 결제 사업자의 미래가 좌지우지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4)

이러한 시진핑 정부의 강압적인 경제 통제는 동시에 중국 사회에 시진핑과 공산당 체제에 대한 불만을 축적시키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이 중국 내부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한 가지 인식으로만 중국에 대응하여 오히려 시진핑에게 활로를 열어주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정부의 대중 강경책들은 중국 내부의 불만을 미국으로 돌리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레드 라인’을 명확히 해야

기존의 미국 정책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더 긴 전문’은 미국이 자국의 ‘레드 라인’, 즉 중국이 넘어서는 안될 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저자가 제시한 레드라인에는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중국의 핵, 화학 또는 생물학적 무기를 이용한 군사공격 ▲중국이 북한의 군사행동을 막기 위한 결정적 조치를 방치하는 것 ▲대만과 주변 해역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포함한 군사공격 ▲동중국해 및 센카쿠 제도에서의 일본에 대한 공격 ▲남중국해를 둘러싼 적대 행동 등이 포함된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안전이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레드라인임을 확실히 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태지역에서 진행될 미중간의 전략 경쟁을 대비하기 위해 미국의 군사적 프레젠스를 유지하고 현대화할 것을 주문했다.

‘더 긴 전문’은 성공적으로 대중국 전략을 수행할 경우 시진핑 지도부가 전통적인 중국 지도부(아마도 현상유지적일)로 교체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중국 전략의 목표는 시진핑의 집권 여부와 관계없이 중국 지도부가 장기적으로 전략적 방향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더 긴 전문’의 저자는 미국이 시진핑의 중국과 맞서고 있는 핵심은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신념의 문제라고 결론짓는다. 미국의 쇠퇴를 전망하는 많은 시각을 배제하고 미국이 여전히 혁신과 희망을 가질 나라임을 미국 스스로가 확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모호해진 ‘더 긴 전문’

개인적으로 ‘더 긴 전문’이 야심찬 이름의 목표를 달성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케넌의 ‘긴 전문’은 5,000여 단어로 이루어진 간결하며 명확한 보고서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쓸어 담는 것이 아니라 소련에 대해 당시 미 국무부가 가지고 있던 고민에 대답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소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비교적 선명했다. 그랬기에 ‘긴 전문’을 바탕으로 대강의 전략 방침을 정하고 세부적인 정책들이 파생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냉전 전략의 ‘스케치’였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 정책결정자들이 다양한 정세 분석을 통해 전략을 함께 채워가며 그야말로 통합적인 대소련 전략, 냉전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여백이 존재했다.

이에 비해 총 86페이지에 달하는 ‘더 긴 전문’은 우선 너무 길다. 오랜 고민과 논쟁을 거쳐 작성되었을 보고서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 설계를 모두 책임질 기세로 다루고 있다. 모든 것을 다루다 보니 논점은 방대해지고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세밀한 대신 모호해졌다. 그래서 야심찬 제목이 아니었다면 그간 수없이 공개되었던 워싱턴의 여느 싱크탱크 보고서 중 하나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부재에 대한 비판 등은 가치 있는 지적이나, 이를 제외하면 시진핑의 리더십 교체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 특별한 정도다.

‘더 긴 전문’에 대한 반박, “중국 전략으로는 현실적이지 않다”

‘더 긴 전문’에 대한 반박은 곧 제기되었다. ‘더 긴 전문’의 공개 일주일 후에 정치외교안보 전문지인 내셔널 인터레스트에는 <‘더 긴 전문’이 중국의 도전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 (Why the ‘Longer Telegram’ Won’t Solve the China Challenge)>라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반박문을 작성한 폴 히어(Paul Heer)는2007년부터 2015년까지 국가정보국에서 동아시아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는 케넌과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다룬 이라는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히어의 반박 논지는 명확하다. 히어 또한 ‘더 긴 전문’이 중국의 전례 없는 전략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포괄적이고 초당적인 국가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을 강조한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진단은 케넌의 ‘긴 전문’만큼 정확하지 않으며 제안된 전략 또한 케넌의 것만큼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5)

히어는 ‘더 긴 전문’이 중국에 대해 유의미한 분석과 문제 제기를 하고 있으나 두 가지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와 야망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야망이 광범위하고 세계적이긴 하나 중국이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심이 되려는 것은 아니라고 히어는 설명한다. 그는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지속불가능하며 역효과만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중국 지도자들 또한 인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오류는 시진핑에 대한 단선적인 관심이다. 히어는 시진핑의 중국이 이전의 중국과 다르다는 분석이 부정확하다고 지적한다. 시진핑의 전임자들 시대부터 이미 중국은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에 입각한 공산주의 정당이었고 민족주의를 공산당의 정당성 확보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변화, 혹은 교체가 있으면 미국과 대립이 덜한 온건한 지도체제로 나아갈 것이라는 예측이 대단히 잘못된 접근이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관측은 시진핑과 그의 대안적인 지도부 간의 잠재적 차이를 과장하여 오산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아울러 ‘더 긴 전문’이 미국의 핵심 목표를 ‘향후 국제질서에서의 우위 유지’로 둔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히어는 ‘미국이 건설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현재 적어도 미국의 지도 아래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지만 이전과 같은 지위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고 이를 국가의 핵심이익으로 삼아서도 안된다고 단언한다.

미국 리더십의 재건 가능성에 대한 회의 제기

히어의 비판은 현재 미국의 지위를 솔직하게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작년 가을 여시재의 글로벌 미래대화에 참여했던 찰스 쿱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겸 조지타운대 교수는 미국 외교에 존재하는 고립주의의 전통이 강해지고 있음을 설명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쿱찬 교수는 ‘트럼프주의는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6) 바이든 시대의 미국에도 여전히 고립주의적 시각이 강하다. 국제질서 속의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수긍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진 것이다. 혹자는 ‘윌슨주의의 종말(The End of the Wilsonian Era)’7) 을 이야기한다. ‘지배하겠다는 것은 망상’이며 미국의 우위를 추구하려는 충동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8) 과거의 고립주의가 우월적 지위를 가진 미국이 세계 패권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을 ‘부담’이라 느끼고 힘의 쇠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배경이었던 것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더 이상은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할 여력이 없다는 ‘체념’ 혹은 ‘원망’이 오늘의 고립주의를 구성한다.

지난 달 20일 취임식에서의 조 바이든 대통령 (출처: AP)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제정치 전문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은 여전히 미국의 재건, 부활을 꿈꾼다. 바이든 대통령이 내건 ‘미국 리더십의 회복 (Restoring American leadership)’이 가장 대표적이다. 유럽과 미국의 동맹관계를 회복해 ‘대서양을 횡단하는 힘의 재활성화 (Revitalize Transatlantic Power)’10) 를 도모하는 의견도 있다.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총괄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조정관에 지명된 커트 캠벨은 지명 직전에 아시아에서 균형과 정통성 회복 (Restoring Balance and Legitimacy)을 위한 전략을 제안하기도 했다.9) 많은 전문가들이 트럼프 시대의 비정상적인 미국을 정상적인 미국으로 ‘회복’시키려 한다. 냉전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를 설계하던 미국처럼, 미국의 재건을 위한 희망을 바이든 시대에 기대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미국이 과연 재건, 즉 좋았던 시절로의 ‘회복’이 2021년에도 가능하냐는 점이다. 1945년의 미국은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서 세계질서와 평화를 ‘재건’하려 했다. 베트남 전쟁 시기의 미국은 일시적인 혼란을 겪었으나 데탕트라는 세계 전략의 재건을 통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다. 데탕트의 창시자인 키신저의 저서 제목처럼 ‘세계는 회복되었다 (A World Restored).’ 역사상 최초의 본토 공격이라는 충격을 안겨주었던 9/11테러 역시 미국의 글로벌 패권이 가져온 ‘역습 (blowback)’에 지나지 않았다. 누구도 미국의 우월적 지위에 의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에 비해 2021년의 미국은 어떠한가. 2020년, 미국은 승자보다는 패자에 가까웠다. 코로나 19라는 인류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시험에서 명백한 낙제점을 받았다. 세계 인구의 4%에 불과한 미국에서 전체 확진자의 20% 이상이 발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유례없는 양적 완화를 퍼부으며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있으나 코로나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를 해소하지는 못 했다. 1조 9,000억 달러에 달하는 바이든의 첫 번째 경기부양안에 대해 공화당은 6,000억 달러라는 삭감안을 내놓은 상황이다. 자유의 번영의 나라, 세계가 선망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재건은 가능할 것인가. 중국에 대한 ‘긴 전문’을 설계하기 앞서 미국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재건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지평에서 미국을 새로 세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달라진 미국을 전제로 한 중국 대응 전략이 구체화되어야 만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유의미한 미국의 리더십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국만의 중국판 ‘긴 전문’, 미국판 ‘긴 전문’이 필요하다

‘더 긴 전문’은 야심찬 제목만큼 주목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목적은 달성했는지 모른다. 적어도 중국판 ‘긴 전문’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분위기가 워싱턴에는 공유되고 있는 듯하다. 중국판 ‘긴 전문’의 설계는 비단 미국만의 과제가 아니다. 정부 변화와 상관없이 일관되고 통합적인 국제 전략이 부재한 것은 한국 외교의 오랜 현상이다. 미중 경쟁과 대립이 심해질수록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은 한국이라는 논설은 이제 식상할 정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곤경을 해소할 솔루션은 딱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한국만의 중국판 ‘긴 전문’, 미국판 ‘긴 전문’이 필요하다. 수많은 미국 전문가, 중국 전문가들이 모여 중국 행동의 본질, 미국 행동의 본질을 분석하고 한국의 대전략을 설계하는 작업이 어느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오늘을 성실히, 객관적으로 고찰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1년 동안 2021년의 한국을 중립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중국판 ‘긴 전문’, 미국판 ‘긴 전문’을 고민해야 한다.


1) 전문은 X(George F. Kennan), “The Sources of Soviet Conduct,” Foreign Affairs , July 1947.
2) 전문은 George F. Kennan, “Containment: 40 Years Later,” Foreign Affairs, Spring 1987.
3) 전문은 Anonymous “The-Longer Telegram: Toward A New American China Strategy,” Atlantic Council, 2021.
4) South China Morning Post, “Do fintech giants Alipay and WeChat Pay have monopoly power?,” 21 Jan, 2021.
5) Paul Heer, “Why the ‘Longer Telegram’ Won’t Solve the China Challenge,” National Interest, February 1, 2021.
6) “미-중 냉전식 양극체제는 불가능... 대선 후 전략 대화 시작될 것” -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 교수, 여시재 인터뷰, 2020.10.16.
7) Walter Russell Mead, “The End of the Wilsonian Era: Why Liberal Internationalism Failed,” Foreign Affairs, January/February 2021.
8) Stephen Wertheim, “Delusions of Dominance: Biden Can’t Restore American Primacy—and Shouldn’t Try,” Foreign Affairs, January 25, 2021.
9) Nicholas Burns, etc., “Stronger Together: A Strategy to Revitalize Transatlantic Power,” Belfer Center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Affairs, Harvard Kennedy School, December 2020.
10) Kurt M. Campbell and Rush Doshi, “How America Can Shore Up Asian Order: A Strategy for Restoring Balance and Legitimacy,” Foreign Affairs, January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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