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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공존의 해법을 찾아서 ①] 새 시대를 위한 한일간 협력 전략 - 미중 대립구도 심화 속 한일협력의 필요성 높아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기주쿠대학 명예교수)

2020.12.29

일본 안전보장외교정책연구회(SSDP), ‘Security Studies’ 2020년 12월. Vol 2, No 4.

얼어붙은 한일 관계가 개선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조해온 바이든 정부가 등장하고 코로나 극복을 위한 경제협력의 필요성이 커지며 경색 국면을 해소할 모멘텀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특히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간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시재는 연구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안전보장외교정책연구회(SSDP)와 한일 양국 앞에 놓인 과제를 논의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갈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공동 세미나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올해 7월에는 한일 양국의 코로나 대응 경험을 공유하는 준비 세미나를 연데 이어 11월에는 양국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한일미래대화’를 발족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일협력 방안과 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

SSDP는 12월 발간한 학술지 ‘Security Studies’를 통해 여시재와의 세미나에서 논의된 한일 협력을 위한 제안을 실었다. 아키야마 마사히로 SSDP 대표는 ‘대화를 통한 한일관계 정상화’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북한의 핵개발 문제, 남북화해 움직임, 미중대립 격화와 납치 가족 문제 등에 대해 일본이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를 이대로 둘 수 없다”며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라도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며 새로 출범한 ‘한일미래대화’가 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 중 협력적 한일 관계를 위한 제언을 실은 두 편의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첫 번째는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기주쿠대학 명예교수의 “새 시대를 위한 한일협력 전략”으로, 지난 11월 열린 ‘한일미래대화’에 대한 소감과 역사 갈등을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기 위한 제언을 담았다. 두 번째는 와타나베 츠네오 사사가와평화재단 수석연구원의 “미중 대립의 시대, 미들파워 협력의 전략적 사고”로, 격화되는 미중패권 경쟁 속에서 한일 양국이 취해야 할 미들파워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두 편 모두 미국 대선 전에 작성된 것으로 일부 문장은 시차를 감안해야 한다. 번역은 가급적 원문의 표현을 그대로 살렸다. [편집자주]

‘안전보장외교정책연구회(SSDP)’는 2016년 10월 출범한 외교 안보 분야 민간 싱크탱크다. 일본의 안전보장 정책, 외교정책에 대한 연구모임과 정책 제언을 하고 있으며, 여시재와 2018년 여시재포럼, 2019년 한일 공동세미나인 FUTURE CONSENSUS DIALOGUE 등을 공동주최하고 있다. SSDP 아키야마 마사히로(秋山昌廣) 대표는 방위 사무차관 출신으로, 여시재 특별연구원도 겸임하고 있다.


이 시점에 한일 관계 전반에 걸친 솔직한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가 충분치 못했던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불충분했던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한일 양국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데 있어 협력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바이러스 확산으로 비행 편수가 줄었을 때 해외에 있던 일부 일본인들은 한국 항공기를 이용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해외에 있던 한국인 역시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이 중에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한국인 소녀가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일본이 도와준 미담도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협력 사례는 찾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한국 경주시는 일본의 자매도시인 나라(奈良)시에 마스크를 지원했다가 본국의 비난을 받고 계획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현재 한일 관계가 심각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로 인한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압류 문제와 한국에 대한 반도체 부품 수출관리 강화 문제는 정책적 차원에서는 각각 독립되어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연계되어 있다. 이는 ‘연계 정치(Linkage Politics)’의 한 예다. 따라서 어느 한 쪽 문제만 해결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더군다나 사법 절차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강제징용 문제에는 데드라인이 존재한다. 일본 기업의 자산이 현금화되면 일본 정부로서는 대항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역사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 마찰이 한일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미중 대립 구조는
한일 관계에 장기적∙다각적 영향

이 같은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몇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한일 관계를 관통하는 국제정치 시스템의 변화에 대한 것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냉전 종식 등으로 한일 협력과 역사적 화해가 증진됐다. 독일 통일이나 유럽 통합 등 국제적으로도 이웃 국가 간에 화해가 진전되는 분위기였다. 이는 당시의 무라야마 담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 등 한일 사이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2010년대로 들어서며 중국의 힘이 커지고 한국이 선진공업국으로 부상하면서 한일간 역사 갈등이 재연되며 현재까지 지속되는 형국이다.

국제 정치 시스템에서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변화는 미중 대립이다. 이는 이미 체제 경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 향후 한일 관계도 향후 다양한 방식으로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들파워 협력 외에
한일간 선택지 없어

미중 냉전이라는 표현까지는 쓰지 않으려 한다. 미소 냉전의 경우 지정학적 안보, 즉 군사 대립이 가장 부각된 것이다. 미국과 소련 간에는 경제적 상호의존성도 없었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갈등은 IT 기술 경쟁에서 시작해 중국을 현재의 기술과 시장으로부터 단절시키려는 방향, 즉 중국 디커플링으로 향하고 있다. 현 상황이 심화할 경우 우리는 한일 관계가 어떤 영향을 맞게 될지를 고민해야 한다. 미중 사이에 낀 선진공업국가로서 한일은 전략적으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도 한국도 미국만을 선택한다거나 중국에만 치우칠 수는 없다. 이를 공통분모로 삼아 양국 간에 전략적 미들파워(middle power) 협력이 이뤄질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이 창조적 외교를 모색한다면 그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이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가능성으로 우리에게 역사적인 기회가 주어졌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
어려운 외교적 상황 놓여

반면 북한의 선택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지난 1~2년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중국의 눈치를 보며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외교를 진행해왔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단계적 비핵화’를 용인하도록 시도하며 경제 제재를 완화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남북 간 대화와 교류도 확대된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면 그 노선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 경우에도 김정은 위원장은 어려운 외교적 협상을 해야 한다. 트럼프가 다시 4년의 임기를 얻는데 성공한다면 북한과의 ‘딜(deal)’에 관심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임기의 후반기에 자신의 정치적 유산(legacy)을 남기기 위해 북한과 일종의 타협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북-미 정상외교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다. 오바마 정부 시대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갈 일은 없더라도 바이든 정부는 대북 정책 검토부터 시작할 것이다.

남북대화의 일시 중단을 비롯하여 북한은 이미 대외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 결과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2020년 말까지 정책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것이다. 따라서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행사는 성대하게 거행되고 군사 퍼레이드에는 새로 개발된 전략 미사일도 등장하겠지만, 거기서 구체적인 대외, 대남정책이 제시될 일은 없을 것이다.

북한으로선 미중 갈등 확대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갈등이 심각해질수록 북-미간 정상외교도 어려워진다고 봐야 한다. 그러한 복잡하고 유동적인 정세 속에서 북한이 북-일 협상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본인 납치 문제는 해결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한일 간 역사인식 조율 어려워
공통의 전략적 이익부터 찾아야

마지막으로 한일 간 역사 마찰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싶다. 한국의 친구들은 역사 인식만 일치하면 한일은 전략을 공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발상을 전환해 오히려 공통의 전략적 이익을 찾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앞서 지적했듯이 미중 강대국 사이에서 일본과 한국이 전략을 공유하고 그것이 한 세대에 걸쳐 정착되면 일본과 한국의 국민 의식도 크게 변화할 것이다. 그것이 양측의 역사 인식 변화를 도모하고 최종적으로 역사 마찰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본다. 양국 정부는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새로운 이웃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번역: 노조에 타마미 (SD)




필자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 政夫)는 일본을 대표하는 한반도 전문가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를 연구하고 있다.

게이오대 석∙박사를 거쳐 1972년 연세대에 유학을 가면서 한반도 연구를 시작하였다. 게이오대 정치학과 교수, 연세대 객원교수, 동서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50년 가까이 한반도 문제를 다뤄왔다. 오코노기 교수는 2020년 1월, 그간의 공적을 인정 받아 한국 정부에서 훈장(수교훈장 흥인장)을 받았다. 2019년 출간한 <한반도 분단의 기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관한 탁월한 저술에 주어지는 ‘아시아태평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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