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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COVID-19: 글로벌 미래대화 ⑦] 모두가 주연이 되는 디지털 사회 혁신 - 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 장관

정리: 박설믜 (여시재 SD)

2020.11.11

COVID-19 사태로 디지털 전환에 가속도가 붙었다. 디지털 경제의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의 위력 역시 주목받게 됐다. 데이터를 어떻게 공유하고 활용하는가에 따라 팬데믹 대응의 성과가 갈렸다. 대만은 데이터를 활용한 혁신으로 COVID-19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 장관은 그 혁신을 이끈 주역이다. 실시간 마스크 공급지도 어플과 마스크 예약제 도입도 그의 작품이다.

여시재는 11월 9일 대만의 성공적인 COVID-19 대응을 이끈 디지털 혁신 사례를 듣기 위해 오드리 탕 장관을 초청, ‘COVID-19 시대의 디지털 혁신’을 주제로 일곱 번째 글로벌 미래대화를 진행하였다. 취임 당시 35세 최연소, 중학교 중퇴의 최저 학력, IQ 180의 천재 프로그래머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화제를 모은 탕 장관은 취임 후 사무실을 ‘사회 혁신 실험실’로 운영하는 등 기존의 틀을 깨는 정책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대담은 Zoom을 통한 화상회의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진행은 허태욱 경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맡았다.

사회 혁신은 ‘공동 창작(co-creation)’
신속, 공정, 재미의 세 가지 원칙이 이끌어

오드리 탕 장관은 기조 발제에서 대만 디지털 사회 혁신의 핵심으로 ‘공동 창작(co-creation)’의 원칙을 꼽았다. 그는 대만에서 사회 혁신은 “모두의 일을, 모두가 돕는다”는 의미로 통용된다고 소개하며, 대만에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공동 창작자’로서 사회 혁신을 ‘공동 창작’해 나간다고 강조했다.

대만의 COVID-19 대응 원칙은 세 가지다. “Fast, Fair, Fun”. 신속하고, 공정하며, 재미를 주는 방식이다. COVID-19으로 야기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응해온 대만은 팬데믹의 위기 상황에서도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시민들과 함께 움직였다. 일례로 한 소년이 배급 받은 분홍색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것이 부끄럽다며 대만 정부의 시민 의견 청취용 전화 ‘1922’에 고민을 털어놨다. 정부는 이 소년의 의견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위생복리부 장관을 포함해 모든 정부 관리들이 핑크색 마스크를 쓰고 브리핑에 나왔다. 위생복리부 장관 역시 자신의 영웅은 캐릭터 ‘핑크팬더’라고 소개하며 핑크색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을 줄였다. 이 소년은 자랑스럽게 핑크색 마스크를 쓰고 등교를 했고, 학교에서 영웅이 됐다.

정부가 공개한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개발된 Ruijun Technology 사의 약국 별 마스크 재고 지도
(출처: https://richitech.carto.com/u/manage/builder/f1ac72ff-499d-4b5c-8432-903ef164b8a8/embed)

대만의 실시간 마스크 재고 어플도 시민 기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진 역(逆) 조달 (procurement) 및 ‘공동 창작’의 결과였다. 정부는 시민 기술자들이 데이터를 활용하여 더 다양한 툴을 만들 수 있도록 공공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개했고, 이 결과 마스크 배급 관련 어플과 지도가 100여 개 가까이 제작되어 사용되었다.

유머가 분노보다 빨라

재미, 즉 유머도 적극 활용한다. COVID-19에 대한 허위 정보 유포로 발생되는 인포데믹(infodemic)을 막기 위해 진행한 “루머를 유머로(Humor over Rumor) 극복하자” 캠페인에서는 대만 정부와 시민 사회를 연결하기 위해 도입한 참여관(Participation Officer)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참여관들은 정부 각 부처의 정책을 시민들이 알기 쉽게 해석해 배포하고, ‘해시태그’에 반영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수렴하여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일례로 위생복리부 소속의 참여관은 자신이 키우는 시바견 사진을 이용하여 매일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코로나 관련 대응 수칙을 정보성 밈(meme)으로 제작하여 발신했다. 유머는 분노보다 빠르다. 바이러스 관련 허위 정보나 정책 관련 루머보다 재미있거나 귀여운 정보성 밈이 더 빠르게 해시태그 트렌드를 타고 시민 사회로 퍼질 수 있도록 했다.

“디지털은 사회 영역의 다원성을 향상시키는 기술”

중국어로 디지털은 “数位[shùwèi]”, 직역하면 디지털 외에도, 복수(複數, plural)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점에 착안해, 탕 장관은 디지털 기술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회, 환경, 지구를 연결하여, 사회의 다원성(plurality)을 높이는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즉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과 이들의 아이디어가 단절되어 떨어져 고립되어 있지 않도록, 이들을 서로 연결하고, 정부와 연결하는 것이 대만의 사회 혁신을 책임지는 디지털 장관의 역할인 것이다.

탕 장관은 디지털 장관으로서 시민과 정부를 연결하기 위해 장관 사무실을 ‘사회 혁신 실험실’로 개조했다. 사무실 내벽을 허문 열린 공간으로, 누구나 방문해 40분 동안 탕 장관과 면담을 할 수 있게 했다. 시민들과 나눈 대화 내용은 모두 녹화되어 녹취록과 동영상으로 공개된다.

지난해 총통배 해커톤 대회 결선 모습 (출처: 타이완투데이)

탕 장관은 시민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정부 정책과 연결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그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쓸 수 있어야 사회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 탕 장관은, 매년 개최되는 총통배 해커톤의 사례를 공유했다. 해커톤을 통해 각 분야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선발하고, 그렇게 선발된 5개의 아이디어를 매년 대통령의 권한으로 1년 동안 공공정책으로서 추진한다. 머신 러닝을 이용해 수도관 누수를 감지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두 달에서 단 이틀로 줄인 팀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해커톤을 통해 채택되어 정책에 반영되었다.

“AI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아닌, 보조지능(Assistive Intelligence)”

탕 장관이 공유한 대만의 디지털 전환 전략에는 네 개의 축이 있다. 사회기반시설의 전자화, 혁신, 거버넌스, 그리고 포용(inclusion)이다. 대만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기술 활용에 능숙하지 않은 세대까지 모두 포용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아이디어가 디지털 전환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지 평가하고 발전을 모색한다. 대만 사회혁신의 핵심인 ‘공동 창작(co-creation)’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AI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자가 아닌 보조지능(Assistive Intelligence)의 약자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탕 장관은, 디지털 기술은 시각장애인 보조견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사람들이 기술의 발전에 맞추어 적응하기를 요구하기보다, 기술이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맞추어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만의 마스크 배급제 도입 시에도 이러한 탕 장관의 철학이 발휘되었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이 마스크 배급제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배급제 도입 전 70대인 대만의 행정원장(국무총리)이 직접 체험해보며 노년층으로서의 경험을 공유했고, 80대인 탕 장관의 할머니와 친구들의 경험과 의견에 귀 기울였다. 탕 장관이 노년층과 함께 “공동 창작”했다고 설명한 마스크 배급제는 노년층에게 친숙한 동네 작은 약국들과의 협업을 통해 마스크를 마치 약을 처방받는 것과 같이 익숙한 경험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비밀번호 입력이 필요한 은행 카드보다, 99.9%의 보급률을 자랑하는 국민보험카드로 본인 확인을 진행하여 포용성을 강화했다. 탕 장관은 마스크 배급제를 통해 기술이 노년층의 삶에도 스며들 수 있도록 했으며, 이것이 진정한 ‘디지털’, 진정한 ‘다원성(plurality)’의 실현이었다고 밝혔다.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교육은 디지털 리터러시 아닌
데이터 역량(data competency) 교육”

COVID-19로 디지털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데이터 정보를 읽고 분석하는 능력인 디지털 리터러시, 디지털 문해력을 길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탕 장관은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데이터를 단순히 읽고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서, 데이터를 직접 생산하여 기여하고, 이를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와 정보 생산자로서의 능력, 즉 ‘데이터 역량(data competency)’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시대에 시민들은 더 이상 중앙에서 만들어져 보급되는 데이터의 소비자가 아니다. 대만이 공공데이터 구축에 시민의 적극적인 기여와 참여를 강조하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대기오염, 수질오염 데이터를 구축해오고, 마스크 앱 제작 시에도 시민사회가 기여한 데이터를 활용했던 것처럼, 시민은 이미 데이터를 공동생산하는 생산자이자, 주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단순히 소비자로서 데이터를 읽고 활용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에서 한발 더 나아가, 데이터를 직접 생산하고 공공데이터 구축에 기여하며 활용의 주체가 되는 디지털 정보 생산자로서의 능력을 가르치는 데이터 역량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만은 작년부터 12년간의 기초교육 과정을 개편하며,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데이터 역량 교육으로 전환했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가 무엇인지, 어떻게 측정하는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 데이터 생산자로서의 사고를 가르치기 위한 변화였다. 기존 교육 과정은 정해진 답을 구하기 위해 개별 학생들 간의 경쟁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교육과정에서는 학급의 학생들이 팀으로서 함께 사회 및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며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했다. 작년에 도입됐지만 그 변화는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2019년, 대만의 16살 학생들이 대만의 국민 음료인 버블티에 플라스틱 빨대를 무료로 주는 것을 금지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법안으로 발의되었고, 대만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이 금지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포스트 COVID-19 시대에는 5G 활용한 혁신으로 ‘공존(co-presence)’을 추구하고파”

‘공동 창작’의 정신으로 대만의 사회 혁신을 이끌어 온 탕 장관이 포스트 COVID-19 시대에 추구하고 싶은 혁신은 무엇일까? 탕 장관은 ‘공동 창작(co-creation)’에서 더 나아가, ‘공존(co-presence)’을 이야기했다.

탕 장관은 대만과 한국을 연결하여 실시간으로 웨비나가 진행되는 것처럼, 이미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 간에 연결은 이뤄지고 있지만 2차원 컴퓨터 화면이기에 아직은 서로의 지식 정도만이 공유되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5G 네트워크를 활용한 확장현실 (XR, eXtended Reality)을 이용하게 되면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람들은 지식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서로를 둘러싼 환경을 공유하고, 경험을 공유하게 되어 떨어진 곳에서도 함께 있다는 ‘공존(co-presence)’의 감정을 공유하며 ‘연대(solidarity)’ 의식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 사회 곳곳의 목소리를 듣고 정부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사회 혁신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탕 장관은 이미 5G를 이용한 기술을 활용하며 이 ‘공존’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대만의 외진 지역에 직접 방문하여 주민들과 회의를 진행할 때도 원격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중앙 정부 부처의 공무원들과 연결할 뿐만 아니라, 5G 네트워크를 이용한 VR 장비를 동원한다. 탕 장관과 함께 지역에 직접 오지 못한 타이베이의 공무원들이 VR 기술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현장에 있는 탕 장관의 입장에서 지역 주민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젊은이들이여, 세상의 틈을 만들어라”

그 스스로도 젊은 혁신 리더인 탕 장관은 대담 마지막을 젊은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마무리했다.

“모든 것에는 흠이 있고 틈이 있기 때문에 빛이 비출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 틈을 젊은이들이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청년들이여, 목소리를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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