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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촹반(科创板)을 통한 ‘기술-자본협력모델’이 필요하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2020.11.03

- 미중 전쟁과 과학기술 혁명시대의 한중 금융협력

cf. 커촹반(科创板-Sci-Tech Innovation Board: STAR Market)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기술·창업주 전용 주식시장. 우리나라 말로 과학혁신판이라 부른다. 커촹반은 중국 정부가 자본시장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기술·벤처기업 전문 증시로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설치됐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018년 11월 중국국제수입박람회 기조연설에서 “미국의 나스닥과 같은 기술·창업주 전문 시장을 추가로 개설하겠다”고 밝혔고 8개월 뒤인 2019년 7월 22일 25개 종목으로 출범했다.

대국으로 가는 길에서 본 중국의 번뇌, “기술”과 “금융”

최근 500년간 대국의 굴기 과정을 보면 모든 대국은 제조대국으로 시작해서 무역대국으로 융성하고, 군사대국으로 강해지고 금융대국에서 끝이 났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이래 미중이 제조를 기반으로 하는 무역전쟁을 한 것을 대국의 굴기 과정에서 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소국(小國)은 소국의 번뇌(煩惱)가 있고 대국은 대국의 번뇌가 있다. 중국은 78년 개혁개방 42년만에 미국 GDP의 71%에 달하는 대국으로 일어섰지만 대국의 번뇌가 있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이 2년간 무역전쟁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자 서방세계는 중국의 시진핑이 도광양회(韬光养晦)를 하지 않고 너무 서둘러 “중국의 꿈(中国梦)”이라는 샴페인을 터트렸다는 비판을 했다.

대국 굴기의 전형적인 패턴과 미중관계 (출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하지만 중국의 입장은 다르다. 지금 중국의 몸집을 보면 어둠 속에 숨어 있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역사 이래 미국 다음으로 가장 크다. 미국 GDP의 71%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숨길 수가 없다. 숨길 수 없다면 무릎 꿇기보다는 강하게 나가는 것이 답이라고 중국은 본 것이다. 최근 2년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무역 압박을 가했지만 중국이 사사건건 대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제조, 무역, 군사, 금융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중국의 실력을 미국에 대비해 살펴보면, 2019년 기준 중국은 제조업에서 미국의 179%, 무역에서 110%로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중국이 미국과 최근 2년간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무역전쟁에서 미국에 굴복하지 않고 대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력(기술력)에서 중국은 미국의 36%, 금융력에서는 3%에 불과하다. 미국이 중국 1위의 통신장비회사인 화웨이에 대한 기술 제재와 중국 1위의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SMIC에 대한 기술 제재를 시작하자 중국이 화들짝 놀라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당장 마땅한 대안은 없다.

미국과 중국의 실력비교 (출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중국은 2001년 WTO 가입 이후 시차를 두고 모든 산업을 대외에 개방했지만 아직도 완전 개방을 하지 못한 산업이 있다. 바로 금융이다. 자본이 필요 없는 공유경제, 사회주의 사회에서 자본시장의 낙후는 피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제조업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었지만 금융업에서는 몸집만 큰 아기 코끼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쟁에서 “무역”으로 시비 걸고, “기술”로 목을 조르고, “금융”에서 돈 털어 가는 전략을 쓸 심산이다. 미국이 1985년부터 시작한 당시 세계 2위였던 일본에 대해 써먹었던 방식이 바로 이것이었고 최근 2년간 미중 간 전쟁의 확산 양상을 보면 이 패턴이 그대로 나타난다. 미국에 비해 치명적으로 약한 기술과 금융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의 번뇌다.

“살을 주고 뼈를 얻는” 중국의 기술 유입 전략 - 커촹반(科创板)

중국, 지금 미국의 첨단 기술 봉쇄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간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통한 금융시장에서 지배력 강화를 떠들었지만 지금 위안화 국제화보다 더 급한 문제가 기술 국산화와 미국 기술을 대체할 기술의 확보다.

중국 말에 “살을 주고 뼈를 얻는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 중국은 “주식을 주고 기술을 얻는 전략”을 쓰고 있다. 자본이 없는 나라, 공산주의 나라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자본에 레버리지를 걸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기술 견제를 자본시장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것이 시진핑의 전략이고 이것이 구체화된 것이 “커촹반(科创板: STAR Market)”시장이다.

(출처: CCTV)

2018년 11월 5일 미중의 무역전쟁이 가속화할 시점에 중국은 상하이에서 제1회 수입박람회(China International Import Expo)를 개최했는데 개막식 연설에서 칭화대 화학과 출신의 테크노크라트 시진핑 주석은 첨단기술주 만을 전문적으로 상장하는 주식시장인 커촹반(科创板-Sci-Tech Innovation Board: STAR Market)을 상하이에 개설하라는 지시를 한다.

세계적인 과학기술 경쟁시대에 첨단과학기술의 육성과 중국의 국가전략에 부합한 핵심기술의 육성 발굴에 자금을 지원할 기술주 전용 증권시장을 개설하라는 것이었다. 대상 상장 업종은 차세대 정보기술, 첨단 장비, 신소재, 신에너지, 바이오산업과 중국의 전략적 신흥산업인 빅데이터, 클라우드컴퓨팅, AI 분야의 기술 산업이다.

(출처: 비즈니스워치)

통상 창업반(创业板), 중소반(中小板) 등 중국의 증시개장은 최하 2년 이상의 준비 기간을 거쳤는데 커촹반(科创板)은 주석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7개월 만인 2019년 7월에 바로 뚝딱 만들어졌다. 78년 개혁개방 이후 40여 년간 중국은 시장과 노동력을 미끼로 선진기술을 흡수했지만 미중 기술전쟁으로 이젠 미국 기술을 수입하는 것은 끝났다. 그래서 중국이 새로운 돌파구로 찾은 것이 바로 “시장이 아닌 주식”으로 서방 첨단 기술을 유혹하는 것이다.

중국은 상하이에 첨단 기술주 전용시장인 커촹반을 개설하면서 첨단기술만 있다면 기업의 규모도, 이익이 나지 않아도 “기술력만 평가해 상장을 허용”하고, IPO 과정에서도 감독원과 거래소의 상장 승인이 필요 없이 상장요건만 맞으면 IPO를 허용하는 “등록제”를 채택했다. 레드칩기업의 경우 홍콩시장에서 허용하고 있는, 초기 자금이 약한 벤처기업의 창업자 경영권 보호를 위해 만든 “차등의결권제도”도 도입했다. 또한 시장 개장 전에 이미 기관투자자들에게 커촹반 주식에 전용으로 투자하는 전문 펀드를 허용해 수요 진작책까지 준비를 했다.

커촹반은 개장 1년여 만에 183개의 회사가 상장을 했고 시가총액도 2조 8,754억 위안, 한화 489조 원에 달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주가가 이익의 몇 배인지를 말하는 PER(주가수익비율)인데 상하이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이 15.4배, 선전 증권거래소가 32.3배인데 반해 커촹반 기업은 90.3배로 상하이 증권거래소의 5.9배 선전 증권거래소의 2.8배나 높은 가치평가(Valuation)을 받고 있다.

중국의 기술전용 커촹반 시장 비교 (출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한국 KOSPI가 27.8배, KOSDAQ IT기업이 43.7배, 미국 다우지수가 25.7배, S&P 500이 37.2배, 나스닥이 36.8배 수준이다. 예를 들면, 100억 원의 이익을 내는 기업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면 3,680억 원의 시가총액이 되고 한국 KOSDAQ에 상장하면 4,370억 원이 되지만 중국의 커촹반에 상장하면 9,030억 원이 된다는 말이다.

(출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2020.10.30 기준)

미중의 기술전쟁의 와중에서 중국은 첨단 기술이 있다면 상장 문턱을 낮춰주어 자금조달을 쉽게 만들어 주었다. 또한 전 세계 최고의 Valuation으로 단박에 상장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는 금융시장을 개장해 중국 첨단 기술 기업의 기술 개발 의욕을 북돋우고 서방의 미국 이외 국가들의 신기술을 유입시키려는 방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중국은 유럽 첨단 기술 기업의 유치를 위해 카지노의 본고장 마카오에도 기술주 전용 증권시장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마카오를 유럽첨단기술을 유치하는 창구로 쓰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가지고 갈 기술과 버려야 할 기술을 구분해야

그간 한국이 중국을 물로 봤던 것은 한국의 경제력 때문이었다. 중국 인구의 4%, 국토 면적은 0.6%에 불과한 한국의 중국 GDP 대비 비중은 1980년 22%에서 94년에는 83%까지 올라갔다. 큰소리 칠만 했다. 그러나 2010년 19%대로 떨어졌고 2020년에는 10.7%대로 낮아졌고 IMF의 2020년 10월 예측에 따르면 2025년에는 8.8%로 추락할 전망이다.

한국의 중국 대비 경제규모 변화 (출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IMF(2020.10))

중국의 사드 보복, 코로나 발병으로 지금 한국의 반중 감정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이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국이 중국 GDP의 10%대로 추락한 2018년부터 중국의 사드 보복이 묘하게 맞물렸다. 한국에는 사드 사태 이후 반중 정서가 넘쳐나지만, 한국은 혁명의 나라 중국을 잊고 전통의 나라 중국을 다시 보며, 패권의 나라 중국을 경계해야 한다.

2000년 전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사람들은 자기보다 열 배 부자에 대해서는 헐뜯지만, 백 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의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의 노예가 된다.” 빈부격차가 심화될수록 사람들의 태도가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서 한국이 중국 GDP의 8할을 넘었을 때 큰소리쳤지만 중국이 한국 GDP의 10배에서 100배로 커지는 상황에서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대중 공포의 해법은 무엇일까? 결국 최고의 복수는 중국보다 더 잘 사는 것이고 더 많이 버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제조업과 무역 부문에서 세계 1위인 중국과 맞붙어 백전백승하려면 ‘적을 100명 죽이려면 나도 70-80명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이 지금까지 공장과 기술 제조로 돈을 벌었다면 이젠 차도살인의 묘수를 생각할 때다.

외국인이 1992년 한국의 자본시장 개방 당시 들어와 한국 자본시장을 이용해 떼돈을 벌었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에 반도체를 넘겨주었지만 반도체 회사의 주인이 되어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삼성전자가 번 돈을 차곡차곡 챙겨간다. 한국도 이젠 중국에서 돈이 일을 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의 기술을 미끼로 중국의 큰돈을 빨아들여 차세대 기술 개발의 자금으로 쓰는 방법을 구사하여야 한다. 기술은 영원히 한곳에 버물지 않는다. 첨단 기술의 시발지와 종착역은 같지 않다. 기술은 연구실에만 있으면 “돈 먹는 하마”로 오래가지 못한다. 기술은 시장을 찾아 천리만리 떠난다. 기술은 지속적인 연구개발 자금이 나오는 곳으로 간다. 기술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

한국에서 사양화 추세이고 중국이 무섭게 추격하는 기술을 그냥 쥐고 있다면, 시간 문제일 뿐 언젠가는 도태된다. 그때가 오기 전에 7-8부 능선에서 중국에 비싸게 넘기고 그 자금으로 차세대 기술을 준비해야 한다. 방법은 중국의 기술주 전용 시장인 커촹반에 상장을 하는 것이다.

한국 기술의 중국 상장을 보는 상반된 입장
국부 유출인가, 창출인가?

한국 기술의 중국 상장을 보는 관점은 두 가지다. 기술과 국부 유출로 보는 시각과 국부 창출로 보는 시각이다. 좋은 예가 중국 기업들의 미국 상장이다. 중국의 첨단 인터넷 기업은 모조리 미국 나스닥과 뉴욕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다. 중국 증시의 상장 조건은 엄격하다. 우량 기업만 상장이 기능하고 적자 기업은 상장 자체가 불가능했다. 인터넷 기업은 손익분기점 도달 전까지는 대규모 자금 투입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기 때문에 인터넷 기업의 중국 증시 상장이 불가능했고 그래서 인터넷 기업들은 모조리 미국으로 갔다.

미국은 만리장성으로 둘러쳐진 폐쇄된 중국의 인터넷 시장에 진출할 수는 없었지만 미국에 상장한 중국 인터넷 기업을 통해 거대한 중국 인터넷 시장의 고성장 수혜를 알리바바, 징동, 바이두 등의 주식을 통해서 짭짤하게 누렸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입장에 따라 이를 보는 관점이 디르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면서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이 미국인의 돈으로 거대한 자금을 조달해 중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였고 미국 기업의 이익을 침해했다고 미국 상장 중국 기업을 모두 상장 폐지시켜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중국 정부는 알리바바, 징동, 왕이, 바이두 등의 주가 폭등으로 인한 중국 기업의 성장 과실을 중국인이 아닌 미국인들이 누린다고 생각하고 미국 상장 인터넷 기업들의 중국으로 회귀를 종용했다. 미국의 상장폐지 위협과 중국정부의 본토 회귀 요청에 알리바바, 징동, 왕이 등은 이미 홍콩시장으로 돌아왔다.

누가 맞는 것일까? 결국 판단은 기업이 하는 것이다. 미국이 자금조달 원천으로서 중요하다면 미국으로 갔다가, 중국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중국으로 가는 것이다. 돈은 애국심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수익률을 따르기 때문이다. 2014년 9월 알리바바는 미국 뉴욕시장에 상장해 217억 달러, 한화 22조 7,000억 원을 챙겼고 2019년 11월 홍콩거래소에 재상장해서 131억 달러, 한화 15조 2,000억 원을 챙겼다. 알리바바는 미국과 홍콩에 번갈아 상장하면서 38조 원을 챙겨 미래 투자의 원천으로 삼았다. 이는 2019년 알리바바 순이익 97억 달러의 3.6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의 커촹반 시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기술 유출의 위험을 최대한 줄이고 늦추면서 중국 시장에서 단기간에 최대의 자금을 모으고 이를 차세대 기술 개발의 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중국에 3-5년 내에 추격당할 기술을 그냥 맥없이 쥐고 있으면 시장도 잃고 기술도 낡은 것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한중 기술-자본 협력 투자 모델 (출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방법은 중국기업이 아닌 정부의 첨단 기술 유치에 압박을 받는 지방정부와 합작사를 설립하고, 이를 커촹반에 상장하는 투자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 기술과 장비를 현물출자하고 중국은 자금과 토지 공장 그리고 운영자금을 출자한다. 한국은 현금유출이 없기 때문에 자금 출혈이 없고 중고 장비의 수출로 수익 실현과 동시에 투자 원가를 낮출 수 있다.

중국의 지방정부는 차세대 정보기술, 첨단 장비, 신소재, 신에너지, 바이오산업의 유치가 지방정부지도자의 업적과 승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정도로 급하기 때문에 커촹반에 상장 가능한 기술에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한 지방정부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고 건설회사를 보유하고 있어 공장건설원가를 최대로 낮출 수 있다. 그러면 최단시간 내에 손익분기점 달성이 가능하고, 지방정부의 힘을 빌려 중국 커촹반 시장에 상장하는 덤을 얻을 수 있다.

지방정부 산하의 기업과 단체에 합작회사 제품의 사용을 손쉽게 마케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지방정부는 기술 획득이 목적이 아니라 첨단산업의 유치와 고용이 목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술 유출의 위험도 낮다.

한국은 언젠가 중국에 추월할 기술이지만 먼저 중국 자본시장에 레버리지를 걸어 자금을 조달하고, 이 자금을 차세대 기술을 개발할 재원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투자 자금 100억을 투자해 매년 10억을 번다면 10년을 벌어야 원금을 회수한다. 하지만 중국과 첨단 기술 합작을 통해 PER이 90배인 커촹반에 상장한다면 900억 원대의 시가총액을 가진 기업을 만들 수 있고 상장 후 지분을 20%만 매각해도 원금을 회수하고 8년간 벌어야 하는 이익을 한 번에 회수할 수 있다. 이 자금으로 차세대 기술 개발을 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 전략, ‘박쥐와 고슴도치’ 전략이 필요하다

돈에는 애국심이 없다. 수익률만 높으면 어디든 가는 것이 돈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범처럼 나대는 데도 미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기업이자 세계 1위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최첨단 전기차 공장을 중국 상하이에 지었다.

기술은 시장을 못 이긴다. 미국이 반도체 첨단 기술의 대중 유출을 금지했지만 이미 전 세계 거의 모든 반도체 기업과 반도체 장비, 재료, 소재 업체들이 중국에 진출해 있다. 이유는 전 세계 반도체 소비의 60% 이상을 중국에서 소비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전 세계 노트북, 핸드폰, 디지털TV의 60-90%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생산지이자 노트북, 핸드폰, 디지털 TV의 세계 최대 소비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중, 대미전략은 박쥐와 고슴도치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에 있어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과 강요는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미중의 선택은 국익을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지 사람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안보를, 중국은 밥상을 주는 형국인데 안보를 포기하거나 밥상을 걷어찰 수 없는 노릇이다.

박쥐 전략은 일본과 필리핀이 좋은 참고서다. 미국과 중국에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국익을 챙긴다. 결국 외교능력이다. 박쥐가 나쁜 것이 아니라 강대국과 초강대국과의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들은 박쥐의 전략 외에는 선택이 없다. 중국말에 “원숭이를 길들이려고 닭을 잡아 피를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 미중 한 군데로 몰리면 닭이 된다.

그러나 초강대국이건 강대국이건 작은 나라라도 필살기를 가지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미국이 1950년 이후 수 많은 전쟁을 했지만 미국은 나라가 크건 작건 간에 핵을 보유한 나라는 건드린 적이 없다. 북한이 좋은 사례다.

숲의 왕자, 호랑이도 작은 고슴도치를 잡아먹지 못한다. 가시 달린 작은 고슴도치의 몸이 필살기다. 호랑이도 내리찍기가 두려운 날카로운 가시가 바로 대국들 사이에 낀 나라가 가져야 할 필살기이다. 상대를 떨게 할 필살기가 있으면 강대국과 초강대국 사이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사드 보복이 극성일 때 한국의 반도체를 중국이 제재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세계 시장의 75%를 점유한 기술을 가지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함부로 건드리기 어렵다.

한국의 기술, 중국 레버리지를 걸어야 한다

신기술은 사람과 돈 그리고 시간을 먹고 태어난다. 한국의 고슴도치 전략에는 돈이 필요하다. 인재를 키우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인재가 있어도 돈이 없으면 꽝이다. 한국, 미국과 중국도 함부로 하지 못할 필살기를 가지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적을 이기는데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수(下手)는 “백전백승(百戰百勝)”을 노리고 피 튀기면서 용감하게 싸우는 것이다. 관우, 장비 같은 용장들이 쓰는 방법이다. 그러나 적도 죽지만 나도 상처 입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중수(中手)는 남의 칼로 적을 죽이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다. 원한을 남기지 않고 상대를 제거하는 전략의 전쟁이다. 합종연횡의 수를 통해 상대를 자빠뜨리는 것이다. 바이든이 동맹을 통해 중국을 죽이겠다는 수가 바로 이것이다.

고수(高手)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바로 “부전승(不戰勝)”이다. 상대가 결코 범접하기 어려운 내공을 보이면 싸움은 끝난다. 장군이 칼을 뽑으면 진 전쟁이다. 장군도는 지휘하라는 칼이지 상대의 목을 직접 베라는 칼이 아니다. 적이 장군의 막사까지 들어와 장군이 칼로 적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면 상황 끝이다. 장군이 전략으로 이겨야지, 직접 칼 들고 선혈 낭자한 전쟁터에 칼 휘두르면 칼보다 빠른 화살에 맞아 죽는다.

한국은 미중 전쟁으로 중국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금융 개방의 호기를 노려야 한다. 커촹반과 같은 기술주 시장을 활용해 기술에 금융 레버리지를 걸어 자금을 조달하고 차세대 기술에 투자할 자금을 축적하는 “차도살인”의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차도살인”의 계를 이용해 차세대 초격차 기술을 개발해 부전승을 노려야 한다. 기술 유출은 최대한 방지하고 기술이전은 지연시키면서 미래 기술투자 자금을 중국을 통해 버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산업화의 선배, 금융화의 선배인 한국의 경험 중국에 활용할 때

우리가 보는 중국은 “3000년 역사의 중국”과 “70년 혁명의 중국”, “40년 자본주의 중국”이 혼재되어 있다. 우리가 중국을 가깝게 느끼는 것은 3000년 공자사상을 공유했던 공자 문화권 때문이고, 중국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은 6.25에 등장한, 한국전에 참전한 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이 우리보다 하수라고 느끼는 것은 78년 이후 뒤늦게 시작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지각생이고 철강, 조선, 기계, 가전, 자동차, LCD, 반도체로 이어지는 제조업의 국제 이전 과정에서 한국보다 20-30년의 시차를 가진 산업화의 후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주목할 것은 자본시장에 등장한 중국이다. 서방자본주의 250년 역사에 비해 겨우 30년이라는 짧은 자본시장 역사를 가진 중국이 자본시장을 통해 미국의 기술 봉쇄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한국은 1992년 수교 이후 지난 28년간 제조업에서 많이 벌었다. 지금도 한국 무역흑자의 79%를 중국에서 벌고 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고 한국이 지난 28년간 중국의 제조업에서 번 것보다 더 크게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국의 기술에 중국 자본시장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 한국은 기술만 넘기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할 수 있지만 역사를 보면 답이 있다.

제조기술은 영원한 것이 없다. 지금 한국이 세계 최강인 메모리 반도체를 예로 들어보자. 메모리반도체는 1970년에 미국이 개발했고 1985년에 일본이 패권을 잡았고 1992년에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메모리 기술은 개발지인 미국에 영원히 머문 게 아니라 일본과 한국과 대만을 거쳐 이제 중국에 도착했다. 첨단 기술은 시발지와 종착지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도 사랑도 움직인다는 말이 있지만 첨단 기술도 시장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일본과 한국으로 이전했다고 그리 애통해 하지 않는다. 이유는 “삼성전자 외국인 지분율”과 “세계 CPU 시장 점유율”에 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56%이고 이중 절반 이상이 미국이다. 삼성이 10조 원을 벌면 5조 6,000억 원은 외국인 몫이고 이중 절반 이상이 미국 몫이다. 반도체 생산과 개발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유유히 돈을 챙겨가는 것이 미국이다. 기술이 아니라 돈이 일하게 하는 것이다.

1968년 G. Moore와 R. Noyce는 컴퓨터의 두뇌인 CPU 칩의 대명사인 인텔(Intel: Integrated electronics) 사를 설립하게 되며, 인텔은 1971년 2,300개의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다. 인텔은 1970년 1K DRAM을 개발했지만 1985년 일본의 DRAM 생산원가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DRAM 생산을 포기하고 고부가 제품인 CPU에만 집중하면서 CPU에서 83%이상의 독보적 점유율로 지금까지 건재하고 있다. 인텔은 DRAM을 버리고 핵심경쟁력인 CPU를 선택해 집중 투자를 통해 자신만의 강한 기술경쟁력을 지켜낸 것이다.

그간 우리의 산업화 경험과 자본시장개방 경험을 중국에서 활용할 기회가 왔다. 미중의 기술전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만의 기술경쟁력도 지키고 돈도 버는 어부지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는 동네북 신세가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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