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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인사이트 / 에너지변동 4] 美의 ‘페트로-달러’에 도전하는 中의 ‘가스-위안화’ - 일·싱가포르도 가스 허브 구축 추진

여시재 에너지 연구팀

2019.12.05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위치한 헨리 허브(Henry Hub)
헨리 허브 도식 (사진 출처: RBN Energy LLC, CGEP)

석유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가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에너지의 수요-공급 체인에 근본적 변화가 생기는 지점에서 정치적 긴장과 갈등, 전쟁이 일어났다. 역사의 증언이다. 한-중-일 3국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에너지 수요 지역이다. 여기에 동남아까지 성장하고 있다. 에너지의 흐름에 대변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세계의 거대 에너지 공급자들이 아시아를 들여다보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 등으로부터 PNG(파이프라인천연가스) 도입을 늘릴 수 있다. 반면 북한에 의해 단절된 한국은 PNG 연결을 내다보면서도 당분간은 LNG(액화천연가스)로 갈 수밖에 없다. 일본은 더더욱 그렇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의 선택이 앞으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여시재는 ‘에너지 연구팀’을 구성, 이 변화에 담긴 의미를 추적해왔다. 그 내용을 다섯 번에 나눠 싣는다.

1. 가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2. 미-러와 한-중-일-동남아의 에너지 각축
3. 동북아 가스허브, 왜 필요한가
4. 동북아의 가스허브 구축 경쟁
5. 한국의 가스허브 가능할 것인가

(여시재 에너지 연구팀)
김연규 / 한양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개발전문위원회 위원
박희준 / 에너지 이노베이션 대표, 미 EQT 전 부사장
손지우 / SK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
이종헌 / S&P GLOBAL PLATTS 수석특파원
이대식 / 여시재 솔루션개발실장/솔루션2팀장

중국이 ‘위안화 허브’에 성공한다면?
한국에는 큰 리스크 될 것

동북아 국가들은 ‘독립적 가스 시장 미형성’으로 중동 카타르를 중심으로 한 공급자 중심의 불공정 계약에 매어 있으며, 그것이 ‘가격 핸디캡’ 등 다양한 불이익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1~3편에서 설명했다. 동북아 국가들이 도입하는 LNG 가격이 상황에 따라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도입하는 가스 가격의 5~6배에 이른다는 점도 설명했다.

미국이나 유럽은 채굴한 가스를 주로 파이프라인(PNG)을 통해 거래한다. 하지만 대륙과 단절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는 ‘가스→액화→운송→재기화’라는 과정을 거친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액화에, 수요국 입장에서는 운송과 재기화에 대규모 시설이 필요하다. 때문에 PNG 거래 중심의 미국이나 유럽 보다 LNG 중심인 아시아가 도입가가 비싼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런 ‘자연적 추가 비용’을 훨씬 웃도는 ‘인위적 추가 비용’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 인위적 작용이란 동아시아에 독자 시장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에 공급자에 매어 있는데서 발생한다.

동아시아 지역의 ‘가스 시장’은 이미 크다. 세계 LNG 수요의 60% 이상을 한·중·일 3국 중심의 이 지역이 차지하고 있고, 여기에 동남아의 경제성장으로 이 지역의 가스 수요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이미 충분히 큰 데도 가스가 거래되는 독립적 시장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공급자 요구에 따라 15~20년 단위의 장기 계약을 해야 했다. 또 이 계약 기간 동안 계약 물량을 들여오지 않더라도 돈은 내야 하며, 한번 들여오면 다른 국가에 팔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계약 관행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다른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셰일혁명에 성공한 미국이 LNG를 동아시아 지역에 팔기 시작하면서 카타르를 중심으로 한 중동 국가들의 독점 구조가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도 동아시아 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면서 ‘공급자 시장’이 ‘수요자 시장’으로 전환될 조짐도 시작되고 있다. LNG 의존도가 심한 한국과 일본, 점점 커가는 동남아 국가들 입장에서는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북한으로 인해 러시아산 PNG가 들어올 길이 막혀 있다는 점이다. 이것만 뚫리면 러시아-한국, 중국-한국, 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 가스 파이프라인이 등장하면서 ‘PNG+LNG 생태계’가 동아시아 지역에 형성될 수 있다. 이것이 최상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PNG 연결의 가능성을 내다보면서도 당장은 LNG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 독자의 ‘가스 허브’ 구축을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지역엔 이미 이런 움직임들이 있다. 특히 중국이 심상찮다. 중국이 만약 독자 허브를 구축하는데 성공하고 그 허브에서 위안화로 거래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움직임에 미국과 일본, 호주는 어떻게 대처할까? 어떻게 결말이 나든 한국에는 큰 리스크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의 천연가스 허브들>

미국에만 39개
유럽은 영국 네덜란드 등 생산국 외
동유럽 국가들까지 추진 중

천연가스의 생산과 소비, 공급과 수요가 많은 북미와 유럽은 이미 여러 개의 천연가스 허브를 가지고 있다. 먼저 북미의 상황은 미국과 캐나다가 핵심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며 멕시코는 미국산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과 LNG로 수입하고 있다. 풍부한 천연가스 생산과 국가 간-지역 간 촘촘히 연결된 파이프라인과 확충된 LNG 수출입 터미널로 충분한 물동량이 확보되어 있다.

1. 미국의 헨리허브 (Henry Hub)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인 미국은 39개의 허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역내의 수요와 공급 상황을 즉각적으로 반영한 gas-to-gas 방식으로 가격이 정해지고 있다. 이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이 루이지애나 주의 ‘헨리허브(Henry Hub)’이고 이곳에서 정해지는 가격이 북미 천연가스 트레이딩의 벤치마크로 기능하고 있다. 즉 다른 허브의 가격은 헨리허브 가격을 기준으로 수송비의 차이를 두고 수렴된다.

헨리허브는 16개 파이프라인을 연결하고 있으며, 수송능력은 1.8bcf/d(LNG 환산 연간 1400만 톤)에 달한다. 현물거래 규모는 일평균 5천만 입방미터로 8천여 생산자, 300여 개 파이프라인 사업자, 200여 개 마케터, 1,500여 개 도소매 사업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헨리허브 선물가격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 상장되어 있는데 헨리허브 선물가격이 LNG 현물 거래의 기준으로 활용된다. NYMEX에서 거래된 천연가스가 물리적으로 인도되는 지점이 헨리허브이다.

2. 유럽의 천연가스 허브와 가격지표

유럽은 영국의 북해와 네덜란드의 Groningen 등 가스전에서 천연가스가 생산되고 있지만, 러시아로부터 들어오는 PNG 수입 물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산 LNG와 미국 LNG도 유럽에 도달하고 있다. 러시아 PNG를 중심으로 하되 LNG 수입과 역내 생산이 보완하고 있고 국가 간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공급되는 방식이다. 유럽은 풍부한 천연가스의 유입으로 천연가스 거래 시장이 자연스럽게 발달했으며 영국의 NPB와 네덜란드의 TTF가 대표적이다.

북해 가스전 (사진 출처: The Telegraph)

1) 영국의 NBP (National Balancing Point)

오래전부터 북해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해온 영국은 유럽 천연가스 거래의 중심지역이다. 유럽 천연가스 선물거래는 영국에 소재한 유럽대륙거래소(ICE)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ICE는 2001년 국제석유거래소(IPE)를 인수한 이후 2007년 천연가스 선물을 거래소에 상장했다. 북미 천연가스 선물거래 규모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지만 거래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영국 천연가스 선물이 거래되는 가격 기준이 현물거래 가격지표인 NBP이다. NBP는 오랫동안 유럽에서 가장 크고 대표적인 가격지표로 다른 지표들도 NBP에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 NBP 가격은 미국 Henry Hub처럼 천연가스가 특정 지점에서 실제(physically) 인도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가상공간(virtual hub)에서의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결정되며 허브는 수급 밸런스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럽의 천연가스 장기계약 가격은 오랫동안 난방과 발전의 경쟁연료인 경유 및 중유에 연동되어 있었는데, 가스허브를 제일 먼저 개설한 영국에서는 천연가스 자체의 수급에 의한 시장가격의 비중이 다른 유럽 국가 보다 월등히 높다. 허브의 존재가 천연가스의 시장가격 설정에 결정적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다른 유럽 국가들도 앞다투어 천연가스 허브 개설을 추진하였으며 이제는 허브에서 결정되는 가격으로 대부분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2) 네덜란드의 TTF(Title Transfer Facility)

유럽 최대이자 세계적으로는 10번째로 큰 천연가스전인 Groningen을 보유한 네덜란드도 2000년 ‘TTF’라는 이름의 천연가스 허브를 발족시켰다. TTF는 영국의 NBP와 마찬가지로 가상 거래소(virtual trading point)이다. 유럽으로 공급되는 상당량의 가스가 거래되며 27개국이 이 지표를 사용하고 있다. 유동성이 계속 증가하면서 NBP와 함께 유럽의 양대 가스허브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3) 유럽의 기타 천연가스 허브

유럽에 천연가스가 들어오는 유입지점은 4곳이다. 2000년에 개설된 벨기에의 ZEE(Zeebrugge)가 물리적인 개념의 천연가스 거래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ZEE는 유럽 북서부 지역의 ‘연계 허브’(transit hub)인데 시장 참여자들이 거래할 가스를 선택할 수 있는 실제 연계 지역, 물리적 지점 역할을 한다. 따라서 ZEE는 유럽의 유일한 물리적 허브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독일의 천연가스 시장은 복수의 배관망 운영 회사가 분할하고 있으며, 각각의 배관망 운영자가 독립된 천연가스 허브를 발전시켰는데 GasPool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2008년 5개의 천연가스 거래 허브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GRTgaz에서 운영하던 3개의 허브를 통합했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의 PSV, 프랑스의 PEGs, 오스트리아의 Baumgarten 등의 천연가스 허브가 있으며,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도 가상 허브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의 허브 추진>

LNG 도입국
30년 전 8개국에서
지금은 40개국으로 급증

미국 발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경직적인 아시아 LNG 계약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LNG 수요와 공급이 크게 늘어나면서 수출국들은 장기계약 이외에 물량을 받아줄 곳을 찾고 있고, 수입국들은 유연한 수급관리를 위해 장기계약을 줄이는 대신 현물구매를 늘이려 하고 있다. 장기계약의 기간도 줄어들어 2000년대 중반부터 10~15년 계약과 5~8년의 중기 계약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최근 계약기간이 더욱 짧아지고 있다. 대신 부족한 물량은 그때그때 현물구매로 충당하면서 2018년에는 현물거래가 32%까지 늘어났다. 계약 기간이 단축되는 추세도 가파르다.

또한 동북아 LNG 허브가 형성되지 않은 큰 이유 중 하나인 참여자의 부족도 점차 해소되고 있다. 천연가스 생산국들이 LNG 수출을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액화 터미널을 지어야 하고 소비국들은 LNG 사용을 위해서 기화 터미널을 갖추어야 한다. LNG 수송은 특수선에 의존하기 때문에 선박 비용도 크다. 따라서 오랫동안 LNG를 사용하는 국가들은 제한적이었다. 1991년에 세계적으로 LNG를 수출하고 있는 국가들은 8개국이고 수입하는 나라도 8개국이었지만 현재는 40개국 정도가 LNG를 도입하고 있다.

천연가스 수요가 늘어나자 아시아에서도 가스허브 구축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파이프라인이 중심이 된 북미와 유럽과 달리 아시아는 LNG 중심의 가스허브 구축 시도인데 일본, 싱가포르, 중국과 함께 우리나라가 대표적이다.

일본 5년 전 선물거래소 설립
5년간 단 1건 거래 불과

1) 일본: JOE (Japan Over-the-Counter Exchange)

동북아에서 LNG를 처음 수입한 일본이 가스허브 구축 노력도 제일 앞섰다. 2014년 9월 도쿄상품거래소(TOCOM)와 싱가포르 기반의 오일 브로커인 긴자 에너지 (Ginza Energy) 간 합작으로 LNG 선물거래소인 JOE(Japan OTC Exchange)를 개설하고 LNG 선물계약 상품을 출시했다. 이를 통해 일본 중심의 LNG 거래가격 지표도 생성하고자 했지만 거래실적이 현재까지 1건에 그쳐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2) 싱가포르: SLlng

2016년 1월 싱가포르거래소(SGX)를 통해 LNG 선물 상품인 SGX FOB Singapore SLlng LNG Futures 출시했다. SGX에서 체결된 LNG 선물계약 가격과 계약 만기 시 LNG 현물가격과의 차액을 정산하는 형식의 거래이다. 거래는 현재까지 15건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지 않다.

<중국의 미국 에너지 패권 도전>

상하이 국제에너지거래소(INE)

세계 1위 수입국 된 中
위안화 결제 체제 구축 시도

중국은 2015년 1월 상하이 석유·가스거래소인 SHPGX(Shanghai Petroleum&Gas Exchange)를 설립한데 이어 2017년 9월 충칭 석유·가스거래소 CQPGX(Chongqing Oil & Gas Exchange)도 개설했다. CNPC, Sinopec, CNOOC 등 에너지 공기업뿐만 아니라 신화통신도 출자하였으며 거래 등록 업체 수도 1600여 개에 달한다. 2017년 9월 현물 LNG 및 PNG 거래를 시작했고, 2018년 4월 선물 거래도 개시했다. 거래실적은 2018년 기준으로 LNG 213만 7000톤, PNG 2만 3000톤 규모로 빠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이나 싱가포르보다는 움직임이 훨씬 빠르다.

중국의 움직임과 관련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 ‘달러-위안화 각축’이다.

2010년대 들어 미·중 무역분쟁이 불붙기 시작한 2018년 가을 이전까지 BRICS, 아프리카, 남미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고 중 달러 비중을 줄이고 위안화 비중을 늘려갔다. 또 베네수엘라, 러시아,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국에 원유를 대규모로 수출하고 있는 국가들이 차례로 수출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는 협약을 체결했거나 앞두고 있다. ‘위안화 표시 석유 결제 시스템’의 등장은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에너지 패권을 상징하는 ‘페트로-달러’ 체제에 ‘페트로·가스-위안’ 체제의 도전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세계 원유 시장 규모는 15조 달러에 이른다. 이 거래액의 대부분이 달러로 결제되어 왔다. 원유를 수입하기 위해 모든 국가들이 자국 화폐를 항상 달러로 교환해놓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미국이 엄청난 규모의 쌍둥이 적자에도 불구하고 달러화 기축통화를 유지해온 배경이다.

미국의 달러 석유 결제 체제는 공교롭게 1970년대 국제 에너지 위기 속에서 등장했다. 1974년 키신저와 사우디 정부 간 밀약 속에 달러 결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듬해 OPEC 회원국 전체가 여기에 동의했으며, 400여 명의 세계 금융권 핵심 인사들이 스웨덴에서 모여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 된 2016년을 전후한 시기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중국은 2018년 4월 상하이 자유무역지대에 위안화 결제 석유선물시장을 설립했다. 이미 세계 원유 거래의 상당 부분이 위안화로 거래되고 있으며 상하이가 동북아 지역의 원유 트레이딩 허브로 등장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위안화는 앞서 2016년 IMF의 특별인출권(SDR)에 포함됐다.

천연가스는 아직 원유만큼 거래되지는 않고 있지만 향후 글로벌 천연가스 거래의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이를 둘러싼 미·중 힘겨루기도 본격화될 것이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의 교체, 이란 제재 번복 등도 이 흐름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원유 거래에 위안화가 어느 정도 들어오는 것은 현재 수준에서 용인하되 앞으로 시장이 커갈 가스 시장은 달러화로 장악하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와 손잡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LNG 시장을 달러 블록화하려고 한다.

반면 중국은 상하이에 원유에 이어 가스 트레이딩 허브를 적극 추진하고 한국 등을 위안화 결제 체제에 편입시키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요즘 중국 내부의 에너지 안보 논의의 기조는 미국의 운송로나 직간접 제재를 통한 에너지 봉쇄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신 대장정(new Long March)’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중국 정부는 우선 국내 개발에 2019년 한 해에만 80조 원 규모를 탐사-채굴 관련 공기업 3사에 넣었다. 또한 파이프라인 전담 공기업도 신설했다. 중국은 ‘2편’에서 지적한 미-일-호 에너지 동맹에 맞서 러시아와 연합할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를 포함한 동아시아 가스 시장을 둘러싼 미-중 쟁패는 달러화-위안화 각축까지 엮이면서 앞으로 매우 위험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허브 구축 움직임은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천연가스 허브 가능성>

한국 허브 구축 추진 한발 늦어
그러나 에너지 지각변동으로
같은 출발선이나 마찬가지

우리나라의 천연가스 허브 노력은 초보단계로 싱가포르, 일본, 중국과의 경쟁에서 많이 밀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다른 경쟁국들이 시기적으로 한발 앞서기는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기회는 충분히 남아있다. 더욱이 에너지 시장의 지각변동으로 천연가스 시장의 판이 새롭게 짜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실상 같은 출발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존 경쟁국들이 성과를 내지 못한 약점이 역으로 한국에는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천연가스 허브와 가격지표 구축 경쟁에서 싱가포르는 정부 정책, 석유 시장 경험, 금융 시스템에서 경쟁력이 있고, 중국은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PNG뿐만 아니라 LNG 세계 2대 수입국으로서 성장잠재력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 일본은 세계 최대 LNG 수입국이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LNG를 도입한 선발주자로서 이점이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오일허브로서 석유의 거래와 공급물량은 풍부하지만 천연가스는 아직 크지 못하고 배후에도 확실한 공급자나 수요자가 없다. 중국은 정부 주도의 정치적 특징으로 공정성과 투명성, 글로벌 신뢰성이 떨어진다. 가스허브 구축을 위해서는 거대한 저장시설과 파이프라인 등 인프라가 잘 구비되어야 하는데 일본은 지진이라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또한 일본은 전력·도시가스 시스템이 지나치게 분산되어 있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이 지정학적 환경 가장 유리

한국은 이 경쟁국들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지정학적,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여건이 완비되어 있다. 한국은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는 러시아와 인접해 있고 미국도 태평양을 통해 많은 양의 LNG를 공급할 수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일본을 양옆에 두고 있다. 세계 다섯 번째 LNG 수입국인 대만도 인근에 두고 있고, 잠재적 시장인 북한도 접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 이점으로 주변 국가들과의 연계가 수월하다. 우리나라는 또한 서해 남해 동해에 대규모 LNG 저장설비 및 터미널을 갖추고 있어 동남아로 가는 물량의 물리적 인도 지점 역할도 가능하다.

마지막 제 5편에서는 한국의 허브 구축 가능성과 함께 동아시아 에너지 협력 가능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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